사회종합
KBS, NHK 아나운서 대담, '지금의 말 그리고 미래'
일본인이 아는 한국어, 한국인이 아는 일본어는 무엇이 있을까?
지난 13일, 도쿄 한국 문화원에서는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아나운서가 출연해 서로의 '말'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토크쇼를 가졌다.
한국 측 대표는 KBS 20년차 임수민 아나운서, NHK에서는 1972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언어 아저씨'라는 닉네임으로 바른 일본어 전파역할을 맡고 있는 우매즈 마사키 아나운서가 등장했다.
두 사람은 각 방송국에서 받는 아나운서 트레이닝 내용부터, 방송 금지어, 방언, 북한어 문제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시선으로 뜨거운 토론을 했다.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가고 있는 언어를 아나운서로서, 방송을 통해 어떻게 처리해야할 것인가 진지한 논의도 있었다.
토크쇼 내용 중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양국 국민들이 양국의 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한 리서치였다.
도쿄 신오쿠보에서 만난 일본인에게 알고 있는 한국말을 물어보자,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맛있어요", "감사합니다"가 가장 많이 나왔고 몇 명이 "여보세요" "여기요" "어머니"라는 말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도쿄 신오쿠보는 도쿄 안에서도 가장 유명한 한인타운으로 한류에 관심있는 일본인들의 성지가 되어있기 때문에, 실제 일본인은 이것보다 훨씬 한국어를 잘 모른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일본인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로 알려진 서울 명동에서 리서치를 실시했다. 20대 젊은이부터 40~50대 중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에게 '알고 있는 일본어를 말해달라'고 하자 일본보다 훨씬 다양한 표현이 나왔다.
"하지메마시테(처음 뵙겠습니다)" "곤니치와, 곤방와(인사)" "아이시테루(사랑해)""오이시이(맛있어)" "아리가토(고마워요)" "스미마셍(미안해요)"등 기초회화가 가장 많이 나왔고, 그 중에서는 "나와바리" "다쿠앙" "덴푸라" "스시" "기모노" "벤토" "히조니(대단히)" "아카지(적자)" 등 음식명부터 경제용어까지 다양한 수준의 단어가 튀어나와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임수민 아나운서는 "방송에는 안 나왔지만, 한국인은 훨씬 더 많은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어인지도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세대간의 차이가 큰 것도 특징인데, 어른들은 일제시대 잔재가 남아 이빠이, 만땅, 오봉, 단스 같은 생활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젊은이들은 인기있는 일본 음식, 책, 영화, 게임을 통해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영화 '러브레터'가 흥행했을 때는 '오겡키데스카(잘 지내나요)'라는 말이 유행했고, 한국영화 '친구' 개봉당시에는 '내가 니 시다바리가'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젊은이들의 일본어는 이렇게 문화를 통해 영향을 받는 것이 특징이다"라고 분석했다.
관심있게 듣고 있던 우매즈 아나운서는 "시다바리라는 말은 일본에는 없고, '시탓파(막내라는 뜻)' 혹은 '시타지(안에 바르는 종이)'라는 일본어가 변형해서 쓰이고 있는 것 같다"고 조언, 임수민 아나운서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밖에도 젊은 층이 종종 사용하는 '쿠사리(면박, 구박)'라는 말도 일본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라고 밝혔다.
노래방 애창곡을 뜻하는 '18번'은 일본어가 그대로 전해진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 전통공연 가부키에서 크게 성공했던 18가지 기예를 '가부키 광언 십팔번'으로 부르면서 이것이 그대로 한국에 들어와 '단골 노래' 즉 애창곡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임수민 아나운서는 "방송에서는 일본어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18번이라는 말 대신 애창곡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워낙 널리 퍼져있는 말이라 친근감 유도를 위해 라디오 청취자와 대화할 때 자연스럽게 18번을 쓰기도 한다"고 말해 방송인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양국 아나운서가 대단히 관심있게 살펴본 말은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쓰는 '간지' '간지남'이라는 말이었다. 간지는 일본어로도 그대로 '간지(感じ)'라고 발음하며 수식어와 함께 좋은 느낌, 분위기라는 말로 쓰이는데, 이것이 한국으로 건너가 '감각있고 세련된'이라는 말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매즈 아나운서는 "그럼 멋있다는 말과 간지난다는 말은 어떻게 다른가"라는 소박한 질문을 했고, 임수민 아나운서는 "우매즈 상은 원래 '멋있는'데 오늘 특히 옷이 너무 세련되고 잘 어울린다고 하면 '간지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해 이해를 도왔다.
시청자들이 느끼는 일본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니나루고토바'라는 코너를 2003년부터 매일 진행하고 있는 우매즈 아나운서는 "말이라는 것은 세월과 함께 변하기 때문에 꼭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강하게 말할 수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임수민 아나운서는 "물론, 말은 변하는 것이지만 방송의 역할, 아나운서의 역할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바른말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다는 말은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으므로 방향 제시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아나운서로서의 확고한 신념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임아나운서는 "일본 TV를 보면서 외래어를 많이 쓰는 것에 놀랐다. 물론 정보 속도가 빠른만큼 말이 못 따라가는 것이 현실이지만, 외래어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이 주인이라는 주체성을 가지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을 말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한편, 이 날 토크쇼에는 약 200여 명의 관객이 참석, 메모를 해가며 열심히 듣는 모습이었고, 토크쇼 마지막으로 두 아나운서에 대한 질문시간에는 "한국어 억양이 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남북통일 후 언어문제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나" 등 심도있는 질문이 쏟아졌다.
임아나운서는 "동음이의어를 장단음으로 구별하고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장단음 구별을 어려워한다. 또한 '~했는데요'라는 식으로 말 끝을 올리는 경향도 있는데 이런 점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북한 언어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협의가 되고 있지 않다"며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가 존재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약 두 시간의 토크쇼를 마친 후, 관객들은 "일본어, 한국어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아나운서는 그저 전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고 고뇌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양국관계에 앞으로도 이런 행사가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고 평가했다.
안민정 기자
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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