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메일맨]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한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주장인 안양 한국인삼공사 베테랑 포워드 김성철이 울산 모비스 피버스 감독이자 광저우에서 한국을 이끈 유재학 감독에게 보내는 편지
TO. 유재학 감독님
감독님 안녕하세요. 성철입니다.
평소 인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을 묻는 질문에 가장 먼저 감독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2010년은 대표팀으로 시작해서 대표팀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 해였죠. 더구나 대표팀의 감독과 주장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잖아요.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신 감독님께 꼭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번 아시안게임이 마지막 국제대회 아니겠습니까. 저도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혹시 기억하시나요? 제가 국가대표 처음 발탁됐을 당시 감독님이 대표팀 코치로 계셨던 것이요. 감독님은 제 농구인생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해주신 겁니다. 하하
호랑이같은 감독님의 성격 탓에 처음에는 선수들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어요. 감독님 특유의 '정색 레이저'를 발사하실 때면 움찔할 정도였다니까요. 그거 한 번 쏘이면 장난 아닌거 혹시 아시나요? ^^
강도 높은 훈련이 이어질 때면 '다 포기하고 소속팀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연습 경기 3, 4쿼터에서 풀어진 모습이 보이면 훈련을 다시 시작하시는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이것 봐라.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냐. 경기가 끝날 때까지 집중해라"라고 다그치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그 때 모비스 소속인 양동근과 함지훈이 한 말이 생각나네요.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네요. 소속팀이었으면 어림도 없었을걸요."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대표팀 분위기는 무척 좋았어요. 2002년을 제외하고 매년 대표팀에 뽑혀 국제대회에 나가봤지만 이런 대표팀은 처음이었어요. 모든 선수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슴에 담고 똘똘 뭉쳐 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대표팀 분위기가 이렇게 좋기 힘들잖아요.
그래서인지 이번 대표팀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 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마찬가지일 겁니다. 모든 선수들을 이끌고 가는 감독님 특유의 뚝심 카리스마 덕분이겠죠. 감독님이 대표팀에서 가끔 농담하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 (?동근이나 (함)지훈이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소속팀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만큼 마음쓰고 계셨던 것이겠죠? 감독님 본인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경기장에서 뛴 시간보다 뛸 시간이 더 적은 저에게 감독님의 모습은 좋은 교과서였습니다. 특히 모든 선수를 편견없이 대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고참 선수라고 혜택을 주는것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는 모습을 보며 더 열심히 뛰더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어요.
선수로서는 차별없이 대해 주셨지만 주장으로서의 김성철은 어느 정도 인정해주신 것 같아 감사합니다. "너만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뽑은 이유는 전력을 끌어올리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했기 때문이다"라는 감독님이 말씀이 생각나네요. 덕분에 힘내서 아이들을 다독일 수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팀워크에 감독님이 흡족해 하신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너희들 지내는 모습을 보니 자신이 생겼다. 우리 한 번 해보자!"는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제가 나이가 있다보니 크고 작은 부상들이 많았는데요. 그럴 때마다 보여주신 특유의 무관심도 기억납니다. 부상당한 선수에게 무관심으로 대응해 하루 빨리 코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셨잖아요. 감독님 지금 '이 놈 봐라.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있었네?' 하고 계시죠? 하하. 부상 선수들이 빨리 정상 전력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하는 감독님만의 전략인 것,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한 수 높으신,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도 느꼈습니다.
2010년 한 해는 대표팀에서 생활한 기억이 전부네요. 덕분에 소속팀인 인삼공사와 모비스가 하위권에 머물고 있지만 대의를 위해 희생한 우리의 마음은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감독님과 저, 모두 최선을 다해 잘 마무리 했으면 좋겠어요.
유재학 감독님, 2010년 대표팀 주장으로서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FROM. 김성철
<편집자 주>'메일맨'은 프로농구 스타들이 평소 고맙거나 미안했던 선수, 감독, 관계자들에게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는 릴레이 코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림 안에 볼을 집어넣었던 '메일맨' 칼 말론처럼 올 시즌 내내 농구스타들 마음의 가교 역할에 충실할 예정이다.
[사진 = KBL 제공]
한상숙 기자 sk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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