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연예
낯선 사람이 겁났던 소녀, 이제는 그 낯선 사람들 속에서 사는 법을 깨달았다 [박금주, 방송 제작 PD]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나는 낯선 이에 대한 거부감이 남달리 좀 큰 아이였다. 낯선 사람이 쳐다나 볼까 두려워 지치도록 어머니 곁에만 꼭 붙어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던 내가 23살 대학생이라는 이름을 채 떨쳐내기도 전에 방송국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됐다. 편집기로 편집하는 게 재밌었고 촬영하는 걸 신기했던 나는 방송이라는 것, PD라는 것이 단순히 촬영만 편집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조연출로 1, 2년을 활동하다 서서히 혼자 촬영을 나가는 횟수가 늘기 시작했다. 촬영을 도맡아야하는 가슴 벅찬 책임감도 생겼지만 남에게 다가가기 껄끄러워하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일도 동시에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맛집 촬영. 그저 음식만 맛있게 찍으면 될 것 같았지만 손님에게 인터뷰를 해야 했다. 낯선 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나에게는 트라우마였다. 엉성해보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똑부러진 말투로 손님에게 음식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면 '넌 뭐야'라는 시선이 돌아오기 일수였으며 거절, 무서운 눈빛으로 욕까지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상식적으로 밥 먹고 있는데 와서 귀찮게 굴면 나 같아도 화가 나겠지만 욕까지 퍼붓다니 마음의 상처가 컸다. 때로는 같이 촬영을 다니는 동기끼리 울분 넘치는 목소리로 '우리가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까지 비굴해 져야하는 거냐'며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렇듯 카메라를 손에 쥐고 처음 보는 사람들을 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어렸을때부터 낯선 이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나에게는 더더욱 버거웠다.
이쪽 눈치 보랴 저쪽 눈치 보랴 하루종일 주방을 살피고 홀을 누비니 자연스럽게 몸 구석구석은 음식냄새로 진동했다. 제 시간에 밥 챙겨먹는건 하늘의 별따기.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한 손님은 나를 불러내 음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이 나눠줌에 별 다른 의미는 없을 것이다. 내가 밥도 챙겨먹지 못하고 일하고 있으니 딱해서 나의 허기를 달래주고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받은 건 그 이상의 가치인 마음의 울림이였다. 거기다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네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볼일 만무한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은 이내 곧 정으로 고마움으로 탈바꿈했다.
어떤 선배들은 여자가 촬영을 하려면 성격이 드세야한다고, 무르게 대하면 만만하게 보기 십상이라고 귀띔해준다.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후배를 아끼는 선배의 마음도 이해가 되지만 강하게 어필하고 지시하는 것 보다 취재하는 사람들에게 더 편하게 그리고 좀 더 만만하게 다가가서 얼마나 더 귀를 기울이고 소통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이대로 사람들을 어머니 대하듯 친구 대하듯 촬영하고 일하고 싶다. 사람의 시선을 끌 수 있는 구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든 것이 단순히 찍고 편집하는 과정 내에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했고 마음으로 더 다가가야했다.
지금 막 걸음마를 뗀 4년차 PD의 건방진 시각으로는 그렇다.
한번은 학교 교육에 관한 방송물을 만들 기회가 있었다. 아이도 없는 미혼PD가 초등학교에 갈일이 어디 있겠고 교육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뭐 있겠냐만 PD라는 게 그런 풍부한 경험을 가져다주는 매력적인 직업이지 싶다. 또 선배의 말을 빌자면 어느 직업이 노숙자부터 대통령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냐고...
하지만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긴장의 연속이기에 짜증날 때도 많고 이 일이 나의 일인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수십 번 수백 번 질문을 던져가며, 편집실에서 그리고 촬영장에서 치열하게 나와 싸우고 있다. 아직은 성숙하지 못한 스물일곱 겨울 촬영 현장이라는 이름의 긴장된 전장에서 나는 아직도 뛰고 있다. 2011년 나에게 다가올 풍부한 경험과 즐거운 만남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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