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고동현 기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KIA' 김상현보다 '두산' 김상현이 유명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프로야구에는 'KIA' 김상현만 있고 '두산' 김상현은 없었다.
두산 우완투수 김상현은 상무 제대 이후 점차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다. 2006년을 시작으로 점차 그의 출장 경기수는 늘어났다. 2008년에는 팀내 핵심 중간계투로 활약하며 6승 2패 평균자책점 2.40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2009시즌에는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팀에 보탬이 됐다.
이러한 상승세가 끊긴 것은 작년. 그에게 2010년은 잊고 싶은 한 해다. 그 해 3월 연습경기 도중 타구에 왼쪽 정강이를 맞았고 결국 골지방종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수술도 피할 수 없었다. 여기에 장성호와의 트레이드 루머로 마음 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1년 4월 12일. 김상현은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마운드로 돌아왔다. 9일 1군 엔트리에 등록에 이어 이날 복귀전을 치른 것. 2009년 10월 14일 SK와의 플레이오프 등판 이후 첫 1군 무대였다.
복귀전이었음에도 등판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김상현은 팀이 4-4로 맞선 11회말 마운드에 올랐다. 주자를 한 명이라도 내보낼 경우 순식간에 패전의 멍에를 쓸 위험이 있었다.
출발은 좋았다. 첫 타자 강민호를 3루수 앞 땅볼로 처리했다. 운도 따랐다. 평상시였다면 좌익선상 2루타가 될 수 있었지만 연장으로 접어들었기에 3루수가 선상수비를 하고 있었고 아웃카운트가 늘어났다.
그에게 '김지토'란 별명을 붙여준 커브도 빛을 발했다. 다음타자 전준우에게는 낙차 큰 커브로 평범한 2루 땅볼을 만들었다. 문규현에게는 커브 뒤 141km 직구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팀 타선이 마지막 12회 공격에서 득점에 실패했고 김상현은 팀의 무승부를 위해 12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황재균에게 안타를 맞기는 했지만 이승화와 김주찬은 범타 처리해 2사 1루. 여기에 조성환을 상대로도 볼카운트 2-0로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잡았다.
그대로 무승부로 끝나는 분위기였지만 방심하는 순간 위기는 찾아왔다. 볼카운트 2-0에서 던진 4구째 공이 몰렸고 조성환이 때린 타구는 우중간을 향했다.
그 순간 김상현을 구한 건 정수빈과 김재호였다. 정수빈은 자칫 펜스까지 구를 수 있는 타구를 빠른 발을 이용해 중간에서 커트했다. 김재호에게 연결된 공은 또 다시 포수 양의지에게 정확하고, 빠르게 향했다. 1루에서 홈까지 파고들던 황재균이 횡사했고 경기는 그대로 끝.
정수빈과 김재호의 중계 플레이에서 조금이라도 실수가 나왔다면 두산으로서는 패배와 직결되는 상황이었다. 올해부터 규정이 바뀌었기에 값진 무승부였다. 그리고 정수빈과 김재호는 팀 뿐만 아니라 김상현까지 살렸다.
SK 김성근 감독은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 "넥센과의 개막전에서 승리하며 그 이후에 잘 풀렸다"고 말한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출발이 안 좋은 상황에서 자신의 실력이 100% 발휘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멘탈 스포츠인 야구에서 심리적 영향은 매우 크다.
김상현에게 이날 경기는 1경기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만약 이 상황에서 김상현이 만약 끝내기 패배를 당한 후 쓸쓸히 마운드에서 내려왔다면 어땠을까. 1년이란 시간을 훌쩍 넘어 복귀한 그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복귀전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정수빈과 김재호는 이를 '가정'으로 만들었고 김상현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웃으면서 복귀전을 마칠 수 있었다.
[사진=김상현(첫 번째 사진), 김재호와 정수빈(두 번째 사진 왼쪽부터)]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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