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윤세호 인턴기자] 한국 프로야구는 ‘감독의 리그’다. 적어도 2000년대 이후부터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2009년 조범현 감독의 KIA가 우승한 것을 제외하면 우승을 달성한 감독들은 모두 2번 이상 우승 맛을 봤다. 2000년대 초반 김재박 감독은 현대 왕조를 이끌었고 2000년대 중반 선동렬 감독의 삼성이 2연패를 달성했으며 이후 김성근 감독의 SK 시대가 열렸다.
미국에선 야구 감독을 ‘매니저’라고 부른다. 선수들이 자기 기량을 마음껏 펼치고 팀이 경기에서 승리하도록 하는 게 감독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다. “천재 선수가 천재 감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물론 승리를 위해 끝없이 고뇌해야하는 자리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감독은 선수 육성이나 선수 관리까지 맡아서 하진 않는다. 큰 틀을 짜는 것은 감독이 아닌 단장 몫이다.
한국 프로야구 감독은 단장 역할까지 한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감독이고 그라운드 밖에서는 단장이다. 항상 팀과 선수들의 모든 것을 신경써야한다. 한 경기의 승패뿐이 아닌 팀의 미래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감독이 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 프로야구 감독을 단순히 ‘매니저’라 부를 수 없다. 실력 있는 감독이 곧 실력 있는 팀을 만든다.
김성근 감독은 그야말로 한국 프로야구 ‘맞춤형’ 감독이다. 팀의 미래를 생각하면서도 한 경기 한 경기를 결코 놓치려 하지 않는다. 매 경기 새로운 라인업을 짜고 경기 중에는 귀신처럼 흐름을 잡아내 팀을 승리로 이끈다. 팀 내 모든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항상 팀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린다. 지금보다 프로야구 인프라가 미미했던 90년대에는 전력분석, 2군 선수 관리까지 도맡아서 했다. 1984년 OB부터 2002년 LG를 맡기까지 많은 경험을 하면서 김성근 감독은 ‘맞춤형’으로, 그리고 ‘완성형’감독으로 진화했다.
결국 김성근 감독은 SK에서 최고 감독이 됐다. 부임 첫 해인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SK의 4회 한국시리즈 진출과 3회 우승을 이끌었다. 김성근 감독의 지도하에 SK는 현재와 미래를 모두 갖춘 팀이 됐다. 외부 FA 영입 없이도, 매해 출중한 신인을 지명하지 않아도, 항상 SK는 정상에 자리했다.
김성근 감독은 아직 여물지 않은 유망주를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로 키워냈고 2군 선수들과 타 팀에서 방출된 선수들을 팀의 주역으로 바꿔놓았다. 기존의 틀을 깨부수는 경기운영 속에서도 자신만의 노하우로 SK 고유의 색을 입혔다. 인천 SK는 명문팀으로 자리했고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승리보다는 패배가 익숙했던, 그리고 결국 배신을 맛봐야 했던 인천 팬들에게 환희와 희망을 선사했다.
SK 구단은 김성근 감독 부임 이전부터 스포테인먼트를 주장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야구장을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테마파크로 만들어 관중들이 야구 이상을 것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왔다. 2007년부터 관중들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인천 문학구장은 마침내 한 시즌 백만에 가까운 팬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하지만 아무리 야구장을 화려하고 예쁘게 꾸며도 야구장이 놀이공원이나 영화관이 될 수는 없다. 팬들이 응시하는 곳은 그라운드다. 연출이나 각본이 아무리 좋아도 승리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부대시설이 경기장을 찾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는 있지만 승리보다 팬들에게 달콤한 것은 없다.
어쨌든 김성근 감독 부임 후 모든 게 잘 되고 있었다. 김성근 감독은 SK에서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SK를 최강팀으로 만들었다. SK는 인기구단이 됐고 이제는 많은 팀들이 SK를 따라하고 있는 상황까지 왔다. 이대로라면 김성근 감독과 SK는 함께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큰 자리를 차지할 일만 남았다.
그런데 17일 김성근 감독이 시즌 후 사퇴를 표명했다.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실천한 감독이 재계약이 불발된 채 팀을 나가게 됐다. 선수 개인을 열과 성을 다해 지도하고 팀 전체의 청사진을 그려온 사람을 구단이 붙잡지 않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SK 구단은 “코치진이 너무 많고 전지훈련비가 부담 된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이 부분이 김성근 감독과의 마찰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곧 SK의 야구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다. 김성근 감독이 구상한 코칭스태프와 강한 전지훈련을 기반으로 SK는 정상에 올랐다. 결국 김성근 감독의 퇴진은 정상에 위치한 팀을 무너뜨리고 새 판을 짜려는 의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팬들은 승리를 원한다. 승리가 없다면 미래의 승리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는다. 구단의 목표도 마찬가지다. 승리를 위해서, 팀의 미래를 위해서 좋은 선수들과 감독, 코칭스태프를 구성한다. 그런데 지금 SK 구단의 행보는 팀의 승리도, 미래와도 동떨어진 다른 무언가를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SK의 차기 감독이 누가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차기 감독이 ‘감독의 리그’인 한국 프로야구에서 김성근 감독이 SK에서 쌓아놓은 금자탑을 이어갈 수 있을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SK 김성근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DB]
윤세호 기자 drjose7@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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