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똑..똑..똑.. 물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묘한 칼질 소리에 서서히 눈을 뜬 여고생.
그녀의 입은 강력 테이프가 부착되어 소리를 지를 수 없고 손발은 묶여있어 도망 칠 수 없다.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이내 자신이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를 납치한 남자는 언어장애를 가진 연쇄 살인마이며 피가 거꾸로 솟아야만 잠이 오는 독특한 습성이 있다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해 주면 죽이지 않겠다고 그녀를 협박한다.
"살고 싶어? 그럼 이야기해봐……"
살인마(유연석)에게 납치되어 생사의 기로에 놓인 여고생(김지원)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는 내용의 공포괴담 '무서운 이야기'는 동명의 전래동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인 '해와 달'과 '콩쥐, 팥쥐', 그리고 고공 스릴러인 '공포 비행기'와 언데드 호러인 '앰뷸런스'를 묶은 옴니버스 형태의 공포영화이다.
총 네 편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무서운 이야기'는 각각의 이야기를 연쇄 살인마에게 납치된 여고생이 들려주는 액자식 구조로 네 편의 에피소드를 연결한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년)와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연출력과 흥행성을 검증받은 민규동 감독이 각 편의 연결고리인 액자장면을 연출하고 네 명의 실력파 감독들이 '호러'라는 큰 틀 안에서 의기투합해 자신의 장기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그런 만큼 각양각색의 공포가 구비된 종합선물로 일단 호기심을 자아낸다.
1942년 경성의 안생 병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괴이한 이야기 '기담'(2007년)을 통해 인간 내면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섬세한 표현력으로 공포감을 극대화 시켜 '감성공포'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정범식 감독은 이 영화의 첫 번째 이야기인 오누이 괴담 '해와 달'에서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늦은 밤, 어린 남매 둘만 남겨진 집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
엄마가 오기 전까진 절대 문을 열어선 안돼!
가장 안전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집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단 둘이 남겨진 어린 남매가 겪는 공포의 순간을 담아낸 정범식 감독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상황과 숨통을 죄는 극적 긴장감으로 공포의 정점을 느끼게 한다.
가장 익숙하고 안전하다고 믿었던 장소를 배경으로 삼은 이 영화는 세상 어느 곳보다도 편안한 내 집, 그것도 한적한 산장이나 단독주택이 아니라 공동주택인 아파트라는 일상적인 공간을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장소로 탈바꿈시켜 악몽을 극대화시킨다.
그런 만큼 '무서운 이야기' 중 가장 무서운 에피소드로 각인되는 '해와 달'은 궁극적으로 진실이 밝혀지는 결말을 통해 사회적 함의를 담은 메시지를 부각시켜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라 사회성 짙은 드라마로 긴 여운을 남긴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공포 비행기'는 피칠갑 호러인 '스승의 은혜'의 임대웅 감독의 작품으로 도망칠 수도, 뛰어내릴 수도 없는 3만 피트 상공의 비행기 안에서 연쇄 살인마가 벌이는 피칠갑 호러를 보여준다.
전형적인 살인마 영화의 살육극을 보여주는 '공포 비행기'는 고공 스릴러라기 보단 익숙한 살인마 설정으로 급작스런 음향효과와 눈살 찌푸리는 잔인함을 통해 공포감을 조성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키친'으로 섬세한 디테일을 보여줬던 홍지영 감독의 자매 잔혹사 '콩쥐, 팥쥐'로 의붓 자매의 질투와 탐욕이 만들어낸 2012년판 잔혹동화이다.
재력가 민회장(배수빈)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공지(정은채)는 계모(나영희)의 손을 벗어나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는 민회장의 대저택으로 들어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의붓 동생 박지(남보라)는 예쁘고 사랑스런 외모에도 불구하고 언니 공지와 조금이라도 더 닮기 위해 성형 수술을 감행하는 등, 언니의 것이라면 뭐든지 빼앗고 싶어한다.
공지의 결혼식 드레스를 훔쳐 입고 민회장에게 꼬리치는 박지와 계모의 음모로 공지는 결국 결혼식 당일, 자신의 방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방에서 탈출한 공지는 민회장의 끔찍한 본성을 알게 되고 두 자매의 잔혹사가 드러난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자매의 일그러진 욕망과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섬뜩하게 그린 이 에피소드는 착한 인물로 부각되었던 전래동화 속 콩쥐 역시 욕망과 질투에 사로잡힌 공지로 해석하여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한 각 인물들의 내면에 자리잡은 탐욕과 본능을 각인시킨다.
특히 '매혹적인 공포'를 내건 만큼 역겨울 수 있는 슬래셔 공포를 몽환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비주얼로 대치시킨 것이 인상적이다.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의 김곡, 김선 감독의 네 번째 에피소드인 '앰뷸런스'는 치명적 좀비 바이러스를 피해 질주하는 구급차에 탑승한 유일한 생존자 5명의 숨막히는 심리전과 갈등을 그린 작품으로 '무서운 이야기' 중 가장 완성도가 뛰어나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오염된 도시,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시내 한복판을 질주하던 구급차안의 군의관과 간호사는 위험에 처한 모녀를 발견한다. 하지만 구급차에 타고 난 후, 아이의 팔에 난 열상을 발견한 군의관은 모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만약 아이가 감염됐다면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지만 간호사는 환자를 살려야 한다며 모녀의 편을 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의심스러운 엄마의 행동에 그녀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아이를 지키기 위한 엄마의 사투가 시작된다.
김곡, 김선 감독은 폐쇄적이고 제한된 장소인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오직 자식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절대적인 모성애와 생존자들 간의 갈등을 급템포의 편집과 속도감을 가속시키는 연출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각인시키면서 극적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고퀄리티의 사실적인 특수분장이 뛰어난 '무서운 이야기'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관객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웰메이드 공포영화로 한 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해 주는 두근두근 시네마이다.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영화 '무서운 이야기' 스틸컷. 사진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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