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닥터K 경쟁에 맥이 빠졌다.
야구에서 타자가 선보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기술이 홈런이라면, 투수가 선보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기술은 삼진이다. 삼진은 온전히 투수가 지닌 기량만으로 아웃카운트를 늘리는 것이다. 투수가 던진 회심의 1구에 타자의 방망이가 헛돌 때. 타자가 전혀 예상치 못한 코스 혹은 구질로 서서 삼진 판정을 받을 때. 구심이 개성을 살려 삼진을 외친다. 팬들은 열광한다. 그 순간 투수는 숨을 고르기 위해 잠깐 뒤로 돌아선다. 타자는 느낄 수 없는 투수만의 희열을 느낀다. 국적을 막론하고 역대 최고 투수들의 하이하이트 필름엔 항상 삼진 장면이 들어가있다.
▲ 리즈, 바티스타 공백기 틈타 탈삼진 독주 분위기
올 시즌 탈삼진 경쟁에 어딘가 모르게 맥이 빠져있다. 10일 현재 탈삼진 1위는 레다메스 리즈(LG)의 130개다. 2위는 대니 바티스타(한화)의 111개. 리즈의 독주 분위기다. 바티스타는 지난 7일 청주 SK전을 앞두고 “리즈의 탈삼진을 따라잡겠다”라고 했지만, “리즈가 탈삼진왕을 할 것 같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바티스타가 7월 16일 부산 롯데전 이후 어깨 통증으로 1달 가까이 선발로테이션을 거르면서 경쟁 구도가 무너졌다.
바티스타가 9일 대구 삼성전서 복귀전을 치렀다. 그러나 삼진은 2개에 그쳤다. 복귀전이라 무리하게 전력 피칭을 하기보단 수비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날 잠실 롯데전서 바티스타와 동시에 선발 등판한 리즈도 7이닝 3피안타 2실점으로 승리를 따냈으나 삼진은 3개였다. 둘 다 올 시즌을 대표하는 외국인 닥터K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진 못했다. 리즈는 지금 페이스라면 약 180개 전후의 탈삼진을 기록할 것 같다. 역대 12차례 배출된 한 시즌 200탈삼진 투수는 올 시즌엔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무래도 시즌 막판엔 투수들도 체력적으로 힘이 든다. 또 최근엔 전국이 더위로 푹푹 찐다. 투수 입장에선 스트라이크 3개를 던져 삼진을 잡는 것보다 볼 1개를 잘 던져서 범타를 유도해 투구수를 줄이는 게 이득이다. 때문에 시즌 초반처럼 탈삼진 상위권 주자들이 삼진에 열을 올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더구나 바티스타는 부상에서 회복된지 얼마 되지 않아 탈삼진을 의식한 피칭을 할 상황이 아니다. 바티스타의 뒤를 이어 크리스 세든(SK)이 108개, 노경은(두산)과 크리스 옥스프링(롯데)이 106개로 추격하고 있다. 리즈를 따라잡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 메이저리그에서 들려오는 다르빗슈의 탈삼진 행진
메이저리그에선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텍사스)의 탈삼진 행진이 관심거리다. 다르빗슈는 지난 7일 LA 에인절스와의 원정경기서 삼진 6개를 뽑아냈다. 올 시즌 192개로 2위 맷 하비(뉴욕 메츠)의 172개를 따돌리고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질주하고 있다. 경기당 8.7개, 9이닝당 12.1개의 탈삼진. 지금 페이스라면 올 시즌 약 270~280개의 탈삼진 페이스다. 미국 현지에선 2009년 저스틴 벌렌더의 269개를 뛰어넘어 2004년 랜디 존슨의 290개를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한다. 참고로 존슨은 2002년에 324개의 탈삼진을 뽑아냈다.
일본 언론도 다르빗슈의 탈삼진 소식에 연일 흥분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2007년, 2010년, 2011년에 연이어 탈삼진왕을 차지했던 닥터K가 메이저리그서도 통하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 만 하다. 다르빗슈가 탈삼진왕에 오른다면 2001년 노모 히데오 이후 아시아 투수로는 역대 두번째 메이저리그 탈삼진왕으로 기록된다. 일본 야구계로선 자랑스러운 일이다.
▲ 류현진 떠난 이후, 진정한 토종 닥터K는 누구?
그동안 국내야구의 대표적 닥터K는 단연 류현진(LA 다저스)이었다. 류현진 역시 다르빗슈보단 덜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탈삼진 능력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올 시즌 22경기서 118개를 기록했다. 경기당 5.4개, 9이닝당 7.5개를 기록했다. 류현진은 한화에서 7시즌 통산 1238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7시즌 통산 9이닝당 8.8개. 올 시즌은 약 1.3개 줄었다. 하지만, 국내와 미국의 타자들 수준 차이를 감안하면 메이저리그서도 닥터K 본능을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류현진은 국내에서 2008년, 2011년을 제외하고 5차례나 탈삼진왕을 차지했다. 류현진하면 삼진이다.
류현진이 떠난 국내야구. 닥터K 본능을 선보이는 토종 투수는 몇몇 있다. 현재 토종 투수들 중 탈삼진 1위를 달리는 노경은의 탈삼진은 106개. 9이닝당 7.8개다. 104개의 김진우(KIA)도 9이닝당 탈삼진은 9.2개로 수준급이다 90개의 이재학(NC)도 9이닝당 8.4개의 탈삼진을 기록 중이다. 참고로 올 시즌 탈삼진 1위 리즈의 9이닝당 탈삼진은 8.1개. 2위 바티스타는 9이닝당 9.7개의 탈삼진을 잡아내고 있다. 토종투수들이 외국인투수를 확실하게 누르지 못하는 형국이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떠난 뒤 리그를 압도하는 토종 닥터K가 안 보인다. 류현진은 월등한 탈삼진 능력으로 외국인투수들을 눌렀었다. 윤석민, 김광현이 살아나고 있지만, 여전히 예전 구위와는 거리가 있다. 노경은, 김진우 등이 향후 몇 년간 꾸준히 탈삼진을 많이 잡아내야 진정한 토종 닥터K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물론 오승환(삼성)이 현재 9이닝당 10.3개의 탈삼진을 잡아내고 있지만, 마무리투수의 특성상 탈삼진왕이 되긴 어렵다.
삼진을 잘 잡아내려면 투수의 구위가 뛰어나야 하고, 타자를 속일 수 있는 확실한 구종이 필요하다. 결국 구위로 타자를 압도해야 삼진을 많이 잡을 수 있다. 외국인투수들의 탈삼진 잔치. 류현진이 떠난 뒤 국내야구를 쥐락펴락하는 압도적인 토종선발투수가 실종됐다는 방증이다. 아무리 맞춰 잡는 피칭이 좋다고 하지만, 투수의 로망은 삼진이다.
[류현진(위), 리즈(가운데), 다르빗슈(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gettyimages/멀티비츠]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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