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선과 악, 반항과 순응이 묘하게 교차된 얼굴"
봉준호 감독은 영화 '들개'의 변요한에 대해 이와 같이 평했다. 연기력에 대한 칭찬도 따라 붙었다.
영화 '들개'를 본 사람이라면 봉준호 감독의 평에 이견을 달지 않을 듯 하다. '들개'에서 정구 역을 맡은 변요한은 반짝반짝 빛난다. 선과 악 모두를 완벽히 표현해 내지만 그 경계가 모호하지 않다. 선한 얼굴, 악한 얼굴 극단적 양면을 지닌 배우다. 그 중간을 버무려내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 그 결과 '발견의 기쁨'을 안기며 변요한이라는 배우를 주목하게끔 만든다.
사실 변요한은 독립영화계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출연작들의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2011년 '토요근무'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 2013년 '목격자의 밤'이 세계 3대 단편영화제 중 '단편영화제의 깐느'라 불리는 끌레르몽 페랑 단편 영화제에 초청됐으며 '들개' 역시 제26회 도쿄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여러 조건들이 충족돼야 하지만 배우의 연기력이 뒷받침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배우로서 필모그래피에 남을 만한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는 변요한은 자신에 대한 칭찬에는 인색했다. 많은 사람들이 변요한을 보며 '충무로의 발견', '충무로의 보물'이라 이야기하지만 세간의 평가와 달리 그 스스로는 자신을 아직 꿈틀대고 있는 벌레, 탈피하지 않은 벌레에 비유했다.
변요한은 "아직 배우가 되고 싶어서 방황하는 것 같다. 어제 친구들과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는데, 사회의 입시생이고 배우로서는 아직 벌레라는 이야기들을 나눴다"며 "아직까지 꿈틀거리고 있다. 번데기의 껍데기를 버리려면 아직 멀었다"고 겸손한 말을 남겼다.
이러한 배우의 자세를 갖게 된 데는 중학교 때 시작한 연극반 생활, 냉정한 평가와 마주할 수 있었던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생활 등이 큰 밑바탕이 됐다.
변요한은 "중학교 때부터 연극을 했다. 하지만 제대로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시간이었다. 꿈에 대해 뜬구름을 잡고 방황했던 그런 것들이 지금 연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한예종에 입학했는데 연기를 잘 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다. 이가 갈리고 잠을 못 잤다. 발표 때 (신랄한 평가로) 무너질 걸 생각하면 연기를 하기 싫은 시간들도 있었다. 그 때부터 배우 생활을 하며 휴학을 했을 때 상업영화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매니지먼트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던 것 같다"며 "아버지가 완강히 반대하셔서 연기를 어렵게 했는데 아버지 말씀을 듣고 어느 순간 비웠다. 아버지께서 '연기 쉽게 하지 마', '꿈을 쉽게 이루려고 하지마'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나를 너무 많이 믿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 때 연극을 할까 독립영화를 할까 고민했는데, 내 꿈이 영화배우라 독립영화를 하게 됐다. 그러면서 많이 무너지고 깨지기도 했다. 한 번 잘한 건 필요 없다는 걸 느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변요한은 카메라 앞에서는 자신을 믿는 천상 배우였다. 카메라 밖의 그는 자신이 한 없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인물이지만 카메라 앞에서 만큼은 자신을 믿고 연기하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변요한은 "연기할 때는 내가 최고라고 믿고 한다. 선배님들이 내 나이대일 때보다 더 잘해야 선배님들보다 더 잘할 수 있어 등의 생각을 하며 연기한다"며 연기자다운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래서인지 '들개'의 변요한이 발산하는 존재감을 폭발적이다. 사회 부적응자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 그는 고작 촬영 2주 전에야 정구 역을 맡게 됐지만 딱 맞는 자신의 옷을 입은 것처럼 연기해 냈다. 미세한 감정들로 가득 찬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면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을 안길 정도다.
변요한은 "추위 빼고는 그렇게 힘든 건 없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며 준비를 많이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현장에서는 디테일한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눴다. 선배님들과 (박)정민이가 정구를 많이 만들어줬다. 연기를 하다보면 서로 느껴지는 게 있다. 그런 것들로 정구를 채워 나갔다"고 설명했다.
변요한과 호흡을 맞춘 박정민은 쉴 때도 서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절친한 친구 사이. 한예종 연극원 동기로, 학교에 다닐 때도 여러 작품을 통해 호흡을 맞췄다.
변요한은 "정민이를 믿고 한 부분도 있다. 다른 배우에게 어떻게 해보자고 요구하는 게 조심스러울 수도 있는데 정민이는 동기고 서로 작품 이야기를 많이 하던 친구라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다른 배우와 호흡을 맞췄더라면 '들개' 현장에서처럼 활동하지 못했을 것 같다"면서도 "태도만큼은 서로 배우로 보려 했다"고 회상했다.
또 박정민에 대해 "굉장히 훌륭한 배우"라며 "놀란 적도 많다. 노력도 많이 하고 열정도 있다. 특별한 부분들도 많다. 시나리오를 볼 때도 내가 먼저 본 뒤 정민이에게 보낸 적이 많이 있다. 그리고 영화를 할 때 다각적인 눈이 필요할 것 같아 정민이에게 많이 물어봤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서 감독과 배우로 만난 김정훈 감독도 그가 꼽는 귀인 중 한 명이다. 배우로서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감독이라는 것.
변요한은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김정훈 감독님을 정훈 형이라고 부르는데, 형과 만나 작품 이야기도 많이 한다. 형은 감독이라 듣는 것도 좋아한다. 나 같은 경우 같이 일했던 배우였으니 부족한 부분을 많이 물어보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고 애정이 생긴 것 같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작업자로서 평생 같이 가고 싶은 감독인 건 확실한 것 같다. 솔직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줄 뿐 아니라 수용도 잘 해준다. 체력적으로 힘들거나 여러 가지가 꼬여 배우로서 갇힐 순간들이 생겼을 때 형에게 용기내 말하면 해소가 된다. 그런 부분들이 쉽지 않은데, 훌륭한 것 같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변요한이 출연한 '들개'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사제폭탄을 만들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생산자 정구(변요한)와 폭탄을 대신 터뜨려 주는 집행자 효민(박정민)의 위험한 만남을 통해 억눌린 청춘에 대해 그린 영화다. 3일 개봉된다.
[배우 변요한. 사진 =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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