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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18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서태지 9집 컴백콘서트를 스탠딩석에서 관객들과 함께 헤드뱅잉 하며 느낀 솔직, 생생 리뷰.
1. '남탕'이었다
남성 팬들이 엄청나게 몰렸다. 서태지가 솔로 전향 후 록 음악에 집중하며 더불어 남성 팬들도 꽤 늘었는데, 이들의 '팬심'이 변함없단 사실을 입증한 셈. 혼자 온 남성 팬들도 많았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진 험상궂은 얼굴로 기다리다가 서태지가 등장하자 눈을 반짝이며 "형! 태지 형!"이라고 절규하는 굵직한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관객들을 둘러본 서태지는 "왜 남탕이야"라고 장난스럽게 일갈, 남성팬들이 "껄껄껄" 하고 웃기도 했다.
몇몇 남성팬들은 아이유와 서태지의 '소격동' 듀엣 무대 후 아이유가 무대에서 사라지자 잠시 본연의 자세를 잊고 "아이유! 아이유! 아이유!"라고 연호, 여성팬들이 이에 맞서 "서태지! 서태지! 서태지!"라고 맞불을 놓기도 함. 이 외에 "태지 오빠" 좋아하는 여자친구나 부인 따라온 남성 관객들도 곳곳에 눈에 띔.
2. 다음에는 실내 공연으로
콘서트의 음향을 최우선으로 하는 서태지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하지만 아무리 서태지라도 넓은 스타디움 공연에서 세밀하게 음향을 전달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기타와 드럼 소리가 경기장에 울리면서 상대적으로 서태지의 보컬이 묻혔다. 음향의 균형도 다소 아쉬움이 드는 부분. '소격동' 등 초반에는 서태지의 보컬이 뚜렷하게 들리지 않았던 건 5년 동안 라이브 공연이 없었기에, 또 '서태지도 긴장하는구나' 싶어 오히려 이해할 수 있던 점.
그래도 전국투어는 실내 공연장에서 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던 야외 공연. 다만 밤 하늘을 달리던 루돌프가 끄는 썰매와 어둠을 밝히는 화려한 폭죽의 규모는 야외 공연에서만 가능한 이벤트였고, 팬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기려는 서태지의 배려가 돋보인 부분.
3. 5년의 기다림, 1시간 40분으로는 부족해
당초 오후 6시로 알려졌던 공연 시간은 30분 정도 딜레이. 서태지뿐 아니라 많은 콘서트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 또 모든 관객들이 입장을 완료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셈이기도 했기에 관객들도 충분히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이윽고 오후 6시 30분이 되자 엠넷 '댄싱9' 우승팀이 무대에 등장해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여 공연을 기다린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제 서태지 차례인가?' 싶었을 때, 이게 웬걸. 화면에는 7시부터 공연을 시작한다는 공지. 결국 20여분 관객들은 더 기다려야 했고, 결과적으로 6시로 알려졌던 공연은 7시가 되어서야 시작했다. 5년을 기다린 관객들에게 그 정도 기다림이야 일도 아니었는데, 정작 아쉬웠던 건 1시간 40분 만에 끝났다는 사실. 서태지는 9집 활동이 이제부터 시작이니 공연 많이 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그래도 5년의 기다림으로 갈증이 컸던 탓에 1시간 40분 공연은 서운할 수밖에. 그러나 1시간 40분간 18곡을 내리 불렀으니 노래가 부족했던 공연은 아니었다.
4. 9집 앨범은 지금 서태지의 마음인 걸까
서태지는 이날 9집 앨범 수록곡 중 이미 공개된 '소격동', 'Christmalo.win' 외에 '숲 속의 파이터', '잃어버린', 'Prison Break', '90s Icon' 등을 열창. 재미있는 건 노래들을 계속 큰 목소리로 전부 따라 부르던 관객들이 신곡이 나올 때만은 당연히 노래를 몰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신곡들의 리듬과 변주도 워낙 종잡을 수 없던 탓에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던 관객들을 향해 서태지가 "생소해?"라고 물었을 정도.
인상적인 건 신곡들은 솔로 전향 후 내놓은 이번 9집 포함 다섯 장의 앨범들 중 가장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멜로디였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는 '숲 속의 파이터'는 서태지가 동요라고 소개할 만큼 실제로 상큼하고 순수한 감성으로 채워진 분위기인 데다가 가사도 이번 앨범의 테마인 '동화'에 가장 어울렸다.
다만 다른 신곡들의 가사를 살펴보면 서태지의 현재 심경을 전하는 듯해 서글픈 감정마저 느껴졌다. 이날 관객들에게만 새 앨범을 미리 판매했는데, 무대에서 부르지 않은 곡들까지 포함해 가사들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팬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과 지난 세월의 회한마저 전해진다. 멜로디는 전작들보다 친숙하고 가벼운데 담긴 정서가 이와 달리 슬픔이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 역설적.
5. 미안함이 느껴지던 서태지
팬들이 기다리던 5년을 언급하던 서태지의 얼굴에는 미안한 눈빛이 역력. 5년 공백기 동안 서태지와 팬들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던 터라 오랜만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본 서태지와 팬들 사이에는 남다른 감정의 교류가 있었다. 아무 말 없이 팬들의 얼굴을 지긋이 둘러보던 서태지의 눈에는 눈물이 차오른 듯했고 팬들은 "울지마! 울지마!"를 외쳤다.
선곡에서도 서태지의 마음이 엿보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수록곡 '내 모든 것'을 20여 년 만에 팬들에게 들려준 건 마치 1집 때부터 변치 않은 팬들의 사랑에 고마움을 표현하려는 서태지다운 고백 같았다. '너에게'나 '널 지우려 해' 등이 오리지날 버전에 가깝게 불려진 것 역시 오랜 팬들을 향한 서태지의 애틋한 마음이었다. 신곡 '90s Icon'을 부르기 전 스스로를 '한 물 간 가수'라고 말했을 때는 서태지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진지해 팬들이 함께 슬퍼하기도 했다.
6. 그래도 서태지
42살 서태지도, 20여 년 전에 서태지를 보고 자란 30, 40대의 팬들도 여전했다. 정확히 20년 전 1994년에 발표한 '교실이데아'를 부르며 붉은 깃발을 흔드는 2014년의 서태지와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고 외치던 같은 공간의 팬들도 마치 90년대로 돌아간 듯 열정적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팬들도 여럿 있었지만, "오빠!"라고 부르짖는 팬들의 표정은 아이돌그룹 콘서트에서 볼 수 있던 10대 소녀들의 표정과 다르지 않았다.
모든 부분이 완벽했던 공연은 아니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그래도 서태지'라고 할 수 있는 건, 이날 공연이 '서태지가 돌아왔다'고 세상에 선언하는 순간 같았기 때문이다. 서태지가 몰고 올 새 바람이 이제 막 시작된 느낌이었다. 5년 만에 돌아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보여줄 테니 "긴장해 다들"이라고 외치는 것처럼.
[사진 = 서태지컴퍼니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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