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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강산 기자] '관중 앞에서 선수는 을이다?'
정석은 아니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다. 종목을 막론하고 경기장에서 선수에게 욕설을 내뱉은 관중에겐 큰 피해가 가지 않지만 만약 선수가 이에 격분해 달려들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소 징계위원회 회부다. 만약 주먹이라도 휘두른다면 징계수위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래서 관중 앞에서 선수는 을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전날(1일) 벌어진 이른바 '하승진(전주 KCC 이지스) 사태'가 아주 좋은 예다.
하승진은 종아리 부상을 털고 전날 서울 삼성 썬더스전서 복귀전을 치렀다. 반전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책임감뿐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하승진은 경기 종료 6분 59초를 남기고 삼성 라이온스가 휘두른 왼 팔꿈치에 코를 정통으로 맞았다. 얼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물론 고의는 아니었다. 라이온스도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하승진은 결국 코뼈 부상으로 경기장을 떠나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한 여성 관중이 라커룸으로 향하는 하승진에게 해선 안 될 말을 했다.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엄살 피우지 말라"며 비꼬았단다. 불난 집 앞에서 부채질을 넘어 선풍기를 가동한 셈이다. 하승진은 잠시 이성을 잃고, 팬에게 달려드는 제스처를 취했으나 관계자들의 만류로 큰 사고로 번지진 않았다. 어찌 됐든 하승진은 몸이 아픈 상황에서 생각 없는 관중의 발언으로 가슴에 큰 생채기가 났다.
그런데 이걸 가볍게 넘길 게 아니다. 관중 앞에서 선수는 절대 을이라는 것을 보여준 예이기 때문.
NBA 대표 악동으로 꼽히는 론 아테스트(당시 인디애나 페이서스)도 2004년 11월 20일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의 원정경기 도중 팬이 던진 종이 맥주컵을 맞고 관중석에 뛰어들어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경기장을 찾은 어린이 팬이 겁에 질려 울 정도였다. 누가 봐도 아테스트가 화날 만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 아테스트는 관중석에 뛰어든 죄로 잔여 73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관중이 원인 제공을 했지만 아테스트가 모든 피해를 짊어졌다.
전날도 마찬가지. 관계자들이 만류했기에 망정이지 하승진이 주먹이라도 휘둘렀다면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질 뻔했다.
경기장을 찾는 팬들은 그야말로 '왕'이라 봐도 무방하다. 팬이 없는 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프로스포츠 구단이 끊임없이 팬서비스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팬들은 돈을 내고 경기장에 입장하는 순간 많은 권리를 얻는다. 그야말로 하지 말라는 것 빼고 다 하면 된다. 그런데, 선수를 자극하는 행동은 하면 안 된다. 특히 실내스포츠인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의 1층 좌석은 코트와 무척 가까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크게 얘기해도 선수들이 들을 수 있다. 코트와 가까운 자리에 앉는 것도 팬들의 권리다.
권리가 있으면 의무도 따른다. 선수들의 플레이에 박수를 보내고, 응원하고, 잘못된 플레이에 야유한다고 제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선수를 자극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발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만약 선수가 아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그런 식의 발언을 한다면 큰 다툼으로 번질 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선수는 관중 앞에서 절대 '을'의 존재이기 때문에 큰 일이 터지지 않은 것뿐이다.
정답은 관중들이 스스로 매너를 지키는 것뿐. 이런 일이 또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 때마다 선수들이 상처를 받는다면 선수와 팬의 사이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관중의 권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유나 권리를 누리려면 책임도 따른다. 권리를 누리려고만 하면 결국 횡포가 된다. 이번 사태 또한 '관중 앞에서 선수는 을'이라는 씁쓸한 교훈만 남긴 셈이다.
[하승진. 사진 = 마이데일리 DB]
강산 기자 posterbo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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