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고동현 기자] 퀵 후크(Quick hook). 6이닝을 마치지 않은 상황에서 3실점 이하 선발투수를 내리는 것을 뜻한다. 일단 1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단 한 번의 퀵 후크도 이뤄지지 않았다. 불펜 평균자책점이 2.06으로 1위임에도 선발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면 불펜보다는 선발투수를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22일 현재 퀵 후크 1위는 어느 팀일까. 정답은 팀 순위(11승 6패) 2위이자 불펜 평균자책점(3.48) 2위팀인 SK 와이번스다.
'김용희 감독'하면 떠오르는 인상과는 다소 다른 결과다. 실제로 김 감독은 순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는 야구를 한다. 그럼에도 퀵 후크는 8차례로 10개 구단 중 1위다. 잘 던지는 투수를 일찍 바꿨다고 생각할 수 있는 퀵 후크. '퀵 후크 1위'가 이뤄진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본다.
▲ 다른 팀 선발보다 늦은 SK 선발들의 페이스
구단마다 시즌을 시작하는 방식은 다르다. 몇 몇 팀은 선발투수들의 몸 상태를 한계 투구수 근처까지 올려놓은 뒤 시즌을 접어드는 경우가 있다. 반면 투구수를 서서히 올려 놓은 뒤 100%를 만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김용희 감독의 경우 후자다. SK 선발투수들의 경우 시즌 초반 많은 투구수를 던지지 않았다. 이는 시범경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개막전 선발로 나선 트래비스 밴와트는 90개를 던진 뒤 내려 갔으며 이튿날 나선 윤희상은 81개, 김광현 95개를 던졌다. SK 선발투수 중 처음으로 투구수 100개를 넘긴 투수는 김광현으로 팀의 7번째 경기에서 나왔다.
또 윤희상의 경우 부상으로 인해 지난해를 정상적으로 뛰지 못해 투구수가 많지 않음에도 급격히 구위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선발투수들의 투구수가 많지 않다보니 자연스레 많지 않은 실점 속에서도 조금 일찍 선발교체가 이뤄지는 모습이 나왔다.
시즌 시작 후 한 달여가 지나갔다. 선발투수들 역시 몇 차례 등판을 거치며 자신의 한계 투구수를 던질 수 있는 몸 상태가 됐다. 때문에 시즌을 거듭할 수록 다른 팀과 비교해 퀵 후크가 줄어들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일지를 보더라도 퀵 후크 간격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 일단 선발투수들이 '3실점 이하'로 막는 등 무너지지 않았기에 '퀵 후크' 요건에도 여러차례 들어갈 수 있었다. 퀵 후크 8번 중 6번이 6회 이뤄졌다.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에는 못 미쳤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선발 역할을 해냈다는 뜻이다. 다른 두 번 중 한 번은 밴와트가 1회 수비 도중 부상을 입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 '호인' 김용희 감독, 승부에서는 냉정하다
김용희 감독은 야구계에서 대표적인 '좋은 사람'으로 꼽힌다. 김용희 감독을 뒤에서 욕하는 사람이야 말로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사람 좋은 미소 속에 승부욕이 없을 리 없다. 또한 예전 몇 차례 실패를 맛봤기에 '이번만은 실패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때문에 그라운드 안에서는 승부사 기질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3월 29일 대구 삼성전. 4회까지 삼성 타선을 1실점으로 막은 윤희상이 5회에도 나왔다. 6-1로 앞선 상황. 1이닝만 더 던지면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는 상황이다. 지난해 1승도 올리지 못한 윤희상에게도 너무나 간절한 승리.
하지만 윤희상은 5회들어 급격히 구위가 떨어졌고 잘 맞은 타구들을 연이어 내줬다. 김용희 감독은 윤희상이 안타 4개를 맞고 1실점하자 6-2로 앞선 5회말 1사 만루에서 윤희상을 교체했다.
당시 윤희상의 투구수가 81개로 많지 않았으며 팀이 4점차로 앞섰기에 더 기회를 줄 수도 있었지만 김용희 감독의 선택은 교체였다. 윤희상 개인보다는 '원 팀'을 생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SK는 5회에 한 점만 더 허용했고 시즌 첫 승을 거둘 수 있었다.
흔히 투수교체는 빠를 수록 좋다고 한다. SK의 퀵 후크 8번 중 6번은 팀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판단이 서면 곧바로 필승조를 투입한 것이다.
김용희 감독은 승부처라고 판단하면 한 템포 빠른 투수교체를 가져가는 등 감독으로서는 냉철한 판단을 보여주고 있다.
▲ 채병용-고효준-박종훈 등 롱릴리프 존재
한 템포 빠른 투수교체가 좋다고 하지만 이러한 양상이 계속될 경우 불펜진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다. 김용희 감독도 이를 모를리 없다. 또 체력에 관해 누구보다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선발투수를 빠른 타이밍에 교체할 수 있는 이유에는 롱 릴리프들이 있다. 흔히 SK 불펜을 생각하면 정우람, 윤길현, 전유수, 문광은 등이 생각나지만 채병용, 고효준, 박종훈 등이 없으면 빠른 선발투수 교체도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채병용, 고효준, 박종훈은 롱 릴리프다. 실제로 채병용은 지난 시즌까지 선발투수로 뛰었으며 고효준과 박종훈은 올시즌을 앞두고 5선발 후보였다. 때문에 언제든지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 있다.
SK는 선발이 88이닝, 불펜이 62이닝을 책임졌다. 불펜 비중이 다른 팀에 비해 높은 듯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62이닝 중 채병용이 12⅓이닝, 고효준이 10⅓이닝, 박종훈이 5⅔이닝 등 총 28⅓이닝을 책임진 것. 불펜 전체 이닝 중 45%다.
필승조는 정우람이 7⅔이닝, 전유수가 7⅓이닝, 윤길현이 7⅓이닝, 문광은 6⅔이닝, 진해수 4이닝로 투구 이닝이 많지 않다. 연투 역시 3일 연속은 단 한 차례도 없으며 2일 연투도 전유수만 2번 있을 뿐 정우람과 문광은, 진해수는 1번씩에 불과하다.
이들이 점수차가 클 때 많은 이닝을 소화해주다보니 김용희 감독으로서는 '승부를 걸 수 있을 때' 등판 일자 관리가 이뤄진 정우람, 전유수, 문광은, 진해수 등을 모두 투입할 수 있다. 승부를 걸 타이밍에 '3일 연투' 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못 나오는 경우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구위가 떨어진 선발 대신 필승조를 일찍 투입하는 승부수를 건다면 선발의 이닝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 SK 퀵 후크 일지
3월 29일 삼성전-윤희상(6-2로 앞선 5회 1사 만루에서 교체, 4⅓이닝 6피안타 3실점)
4월 1일 KIA전-김광현(0-2로 뒤진 6회 2사 1, 3루에서 교체, 5⅔이닝 3실점)
4월 5일 넥센전-백인식(9-2로 앞선 6회부터 교체, 5이닝 2실점)
4월 7일 KT전-김광현(3-1로 앞선 6회 주자없는 상황 교체, 5이닝 1실점)
4월 9일 KT전-밴와트(6-1로 앞선 6회부터 교체, 5이닝 1실점)
4월 11일 NC전-백인식(1-3으로 뒤진 6회부터 교체, 5이닝 3실점)
4월 16일 넥센전-밴와트(4-0으로 앞선 2회부터 교체, 부상. 1이닝 무실점)
4월 21일 KT전-켈리(8-2로 앞선 6회 2사 1, 3루 교체. 5⅔이닝 2실점)
[김광현이 4월 7일 KT전 6회 도중 교체되는 모습(첫 번째 사진), SK 김용희 감독과 마무리 윤길현(두 번째 사진), 롱릴리프 혹은 점수차가 클 때 나서는 채병용(세 번째 사진). 사진=마이데일리DB]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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