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열정이 사라지는 것 같아 겁난다"
오랜 시간 연기만을 위해 살아온 배우 김혜자는 여전히 열정이 사라질까 두렵다. 대중에게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열정을 가진 배우이지만 정작 본인은 항상 배움의 자세로 연기에 집중하고 있고, 관객들에게는 매번 미안하다.
12일 오후 서울 이화여고 백주년 기념관 화암홀에서 진행된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 제작발표회에서 김혜자는 연기에 대한 열정, 또 작품을 대하는 그녀만의 진심을 드러냈다. 대중에게는 TV 속 김혜자가 익숙하지만 무대 위 그녀를 꼭 봐야 하는 이유가 그녀의 진심을 통해 드러났다.
이날 김혜자는 '길 떠나기 좋은 날'을 한 번 고사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작품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꼼꼼한 그녀이기에 작품, 캐릭터 등 디테일한 모든 부분을 하나하나 생각했다. 당시 김혜자는 소녀 이미지가 더욱 부각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길 떠나기 좋은 날'을 고사했다.
그러나 하상길 연출은 포기하지 않았다. 작품을 수정했고, 점점 완성도 높아지는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다. 이에 김혜자에게 한 번 더 작품을 제안했고, 김혜자는 달라진 작품에 흥미를 느끼며 다시 무대에 섰다. 앞서 1인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 무대를 떠날까도 생각했던 그녀지만 연극의 매력은 쉽게 끊을 수 없이 강했다.
김혜자는 "하상길 연출이 이걸 여러번 고쳐서 주시는데 읽어보니까 그 전에 읽어봤던 것과는 달랐다"며 "우리 나라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아름다운 말을 느낄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힘든 점도 있다. 현재 연습중인 김혜자는 "한가지 조심할 점은 아름다운걸 자꾸 하면 운을 따라하다 보면 실생활 대사 같지가 않다. 그러면 인물이 땅바닥을 짚고 있는 사람 같지 않고 허공에 뜬 사람 같다. 그러면 안 된다"고 설명하며 작품 및 인물 분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대단히 아름다운 말이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대사로 해야 한다. 그게 제일 힘들다. 시적인 대사를 시같이 표현하면 안돼서 힘들다"면서도 "연극의 매력은 공연 끝나는 날까지 어제 몰랐던걸 오늘 알게 되는 게 공부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교과서 공부는 하기 싫은데 이건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하고 있으면 '관객에게 미안하다. 오늘 이거 알았는데'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게 매력이라 (연극을) 한다"고 고백하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김혜자는 연기에 대한 고민도 많지만 그게 바로 연기를 하는 이유다. 때문에 연습하고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무거운 지금도 그 자체로 즐기고 있다.
그는 "연습 기간이 훅 가기 때문에 그 생각 하면 '큰일났다'고 한다. 그래도 연극은 오래 연습해서 하는 거니까 괜찮다"며 "잘 안돼서 운다는건 TV 쪽이었다. 후다닥 해버리니까 내가 잘 안 됐다고 다시 하자고 할 수도 없다. 그럴 때 집에 가서 내가 꼭 바보 같아서 (운다)"고 털어놨다.
이어 "요즘은 그 열정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좀 겁난다"며 "안 되면 울고 펄펄 뛰고 그런 게 살아 있어야 되는데 '할 수 없지 뭐' 이렇게 될까봐 그걸 굉장히 조심한다. 죽는 날까지 연기를 안 하면 몰라도 하려면 그래야 한다"고 설명했다.
열정을 갖고 연습에 임하고 있는 현재 김혜자는 오로지 '길 떠나기 좋은 날'에 집중하고 있다. "굉장히 집중한다. 그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자신 없으니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김혜자의 눈이 여전히 열정으로 불타 올랐다. 무대 위 그녀의 열정을 온몸으로 느껴야함이 분명해졌다.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은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 모여 펼치는 아름다운 가족 이야기. 낙원이 없어도 낙원으로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조용하고 따뜻한 시어(詩語)들로 이어지며 감동을 전달한다.
배우 김혜자, 송용태, 임예원, 류동민, 신혜옥이 출연하며 오는 11월 4일부터 12월 20일까지 서울 이화여고100주년기념관 화암홀에서 공연된다.
[김혜자.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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