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지 말해봐."
KIA 김기태 감독이 최대한 많은 선수에게 1군에서 뛸 기회를 주는 건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중요한 건 그의 세부적인 기용법이다. 대부분 감독은 1군 경험이 처음인 신인, 저연차 야수들을 대수비, 대주자로 기용하다 싹이 보이면 조금씩 활용폭을 넓힌다. 그러나 김 감독은 정 반대다. 일단 주전으로 뛸 기회를 최소 1~2경기는 제공한다. 그 후 구체적인 쓰임새를 결정한다. 적어도 김 감독 밑에서 1군 벤치만 덥히다 다시 2군에 내려가는 야수는 없다.
김 감독은 이번주를 시작하면서 1군 엔트리를 대거 교체했다. 올 시즌 외야 주요 멤버로 활용한 오준혁과 노수광을 2군에 보냈다. 대신 신인 이진영과 최원준을 1군에 올렸다. 3연패로 위기에 몰린 상황. 뉴 페이스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계산이었다. 이진영과 최원준에겐 동기부여를, 나머지 선수들에겐 긴장감을 안기는 효과가 있었다. 김 감독은 "이진영과 최원준은 발도 빠르고 어깨도 좋다. 2군에서 성적도 좋았다"라고 기대했다.
▲강하게 키운다
KIA에 LG와의 주중 3연전은 중요했다. 3연패에 빠진 상황. 게다가 본격적인 시즌 중반 일정에 돌입하는 3연전. 반드시 위닝시리즈가 필요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3연전 내내 이진영을 9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시켰다. 최원준은 1일 김호령이 부상으로 선발라인업에서 제외되자 1번 중견수로 중용됐다.
실제 한 야구관계자는 "김기태 감독이 참 대단하다. 팀이 중위권으로 가느냐 하위권으로 추락하느냐가 결정될지도 모르는 시점에서, 그것도 국내에서 외야수의 수비 부담이 가장 큰 잠실에서 신인 외야수를 선발 출전시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큰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김 감독도 "신인이 관중이 많은 잠실에서 떨릴 것이다. 감안하고 지켜보겠다"라고 했다.
이진영은 3연전 내내 안타를 단 1개도 치지 못했다. 수비에서도 때때로 위태로웠다. 그러나 김 감독은 그를 절대 교체하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도 겪어보고 실전서 직접 해결해보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또 다른 신예 최원준도 1일 경기 막판 교체 투입한 뒤 2일 경기서는 톱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전시켜 9회까지 풀타임으로 뛰게 했다. 최원준은 청소년대표를 경험했지만, 내야수였다. KIA 입단 후 전문적으로 외야수비훈련을 받았다. 김 감독은 전날 손등에 공을 맞은 김호령을 보호하면서 최원준에게 1군경험을 쌓게 했다. 그는 데뷔 첫 안타와 득점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김 감독의 강한 육성법 실체다.
▲움츠러들지 마라
김 감독은 지난달 31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덕아웃을 지나가던 이진영을 불렀다. 그런데 이진영의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김 감독은 이진영이 움츠러드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갑작스럽게 김 감독 옆에서 기자들을 마주본 이진영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1군 데뷔 첫 선발출전 경기였다. 그것도 국내에서 가장 크고 넓으며, 많은 관중이 몰리는 잠실구장에서의 데뷔전을 앞둔 신인이 평소보다 긴장하는 건 당연했다.
이진영은 김 감독의 지시로 기자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이어 김 감독은 "자기소개 해봐.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지 크게 말해봐"라고 했다. 그러자 이진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김 감독이 분명 신인을 몰아세우는 것 같았지만, 주먹 하이파이브를 하고 그라운드로 뛰어나가는 이진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표정에 미소가 가득했다. 긴장감을 풀어주면서, 담력을 테스트하는 의미도 있었다.
이진영이 긴장했다는 증거. 1일 경기서 명확히 드러났다. 3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 볼카운트 1B1S서 LG 선발투수 스캇 코프랜드의 3구에 헛스윙했다. 그러나 이진영은 볼카운트를 착각, 자신이 삼진 처리된 것으로 알고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KIA 벤치로부터 1B2S라는 걸 깨닫고 타석에 복귀했다. 그는 그 타석에서 상대 실책으로 출루한 뒤 데뷔 첫 득점을 올렸다. 그만큼 공 1개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을 것이다.
김 감독은 당장의 성과물에 일희일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만, 경기를 준비하고 치르는 자세와 태도를 유심히 살핀다. 진중하고 예의 바른 스타일을 선호하되, 신인이라고 해도 움츠러드는 모습을 원하지 않는다. 비록 해프닝도 있었지만, 이진영과 최원준은 3연전서 큰 실수를 범하지 않고 무사히 데뷔전을 마쳤다. 김 감독이 이진영과 최원준에게서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모습을 발견했다면, KIA의 주중 3연전은 성공적이었다.
[이진영(위), 최원준(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KIA 타이거즈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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