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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패스는 일본 여자농구 최고다."
16~18일 아산에서 열렸던 한일 여자프로농구 클럽챔피언십. 가장 눈에 띈 일본 선수는 JX 에노스 가드 후지오카 마나미(23, 170cm)였다. 간판가드 요시다 아사미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오사키 유카와 함께 원투펀치 노릇을 했다.
입단 2년차인데 경기장악능력이 엄청났다. 가장 눈에 띈 건 감각적인 패스 센스였다. 한 템포 빠르고, 정확했다. 우리은행전서 16분45초간 4어시스트, 도요타전서 32분7초간 13어시스트, 삼성생명전서 10분23초간 7점 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우리은행 박혜진이 후지오카를 꽁꽁 묶었다. 후지오카도 "박혜진이 신장이 커서(178cm) 공격에 어려움을 겪었다"라고 했다. 끝내 무득점에 그쳤다. 그러나 박혜진이 쉴 때, 스위치를 통해 다른 수비수와 매치업 될 때 최대한 팀에 공헌했다.
가장 인상적인 건 도요타전 경기종료 2초전 어시스트였다. 64-63으로 불안한 리드. 탑에서 수비수 1명을 침착하게 따돌린 뒤 우중간으로 이동한 하야시 사키에게 공을 정확하게 연결했다. 하야시가 3점포를 성공하면서 JX가 67-63으로 이겼다.
동료가 자신을 위해 스크린을 하고 빠져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정확하게 공을 연결하는 능력, 빠른 트랜지션과 돌파력도 일품이었다. 그나마 슈팅이 정교하지 못한 편이라는 평가. 어쨌든 패스센스만큼은 일본 여자농구 탑클래스라는 WKBL 지도자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더 놀라운 건 후지오카가 JX의 확실한 주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요시다 아사미가 주전 1번이다. 아사미가 부상에서 회복하면 자신은 다시 백업으로 뛰거나 2번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게 후지오카의 설명.
성인대표팀도 지난 7월 FIBA 방갈로르 아시아컵이 처음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중국와의 준결승서 19점 8리바운드 14어시스트를 뽑아냈다. 호주와의 결승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일본의 아시아컵 3연패를 이끌었다. 대회 베스트5에 선정됐다.
소속팀에서 확실한 주전도 아닌 선수가 일본이 아닌 아시아를 놀라게 했다. 스타일의 차이를 감안해야 하지만, 한국에는 몇 년씩 주전으로 뛰면서도 후지오카만큼의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가드가 수두룩하다. 그만큼 일본 여자농구의 저변이 두껍다.
뿌리부터 다르다. 엘리트 농구를 하는 중, 고등학교 선수들의 숫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은 전국에서 활동하는 여고 농구부가 3~40개 수준이다. 그러나 일본은 약 3000개다. 이들이 체계적으로 기본기술을 쌓고 대학과 WJBL로 올라온다.
한국 여중, 여고는 선수 숫자가 부족하고 대회는 많이 소화해야 한다. 기본기보다 이기는 농구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선수 5~6명인 학교에서 선수는 5반칙 퇴장을 당하면 안 된다. 자연스럽게 1대1 수비에 대한 기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은행 이환우 감독은 "우리나라와 일본 프로 1~2년차들의 몸 상태를 비교해보면 된다. 근육량부터가 다르다"라고 했다. WKBL에 유독 부상자가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농구관계자들 설명이다. 중, 고등학교의 몸 관리 시스템은 여전히 매끄럽지 않다. 재활 과정에서 기존의 장점을 잃는 선수들도 있다.
소속팀에서 확실한 주전도 아닌데 아시아 베스트 5에 선정된 후지오카의 발견은 우연이 아니다. 두꺼운 인프라와 탄탄한 기본기 연마, 체계적인 몸 관리 속에서 재능을 갖춘 유망주가 나온다. 일본 여자농구에 정통한 KB 안덕수 감독은 "지금 일본 중, 고등학교에 후지오카 정도의 잠재력을 갖춘 여자농구선수가 수두룩하다"라고 했다.
패스센스 역시 하루아침에 저절로 갖춘 게 아니다. 후지오카는 "초등학교 때부터 드리블 연습을 엄청나게 했다. 드리블이 되니 패스도 저절로 된다"라고 했다. 실제 후지오카는 정확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수비수 1명을 손쉽게 제쳤다.
궁금했다. 왜 드리블이 좋은데 패스를 잘 하는 것일까. 안 감독은 "드리블이 자신 있으니까 드리블을 치면서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동료들의 움직임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그러니까 패스도 한 타이밍 빠르게 할 수 있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후지오카는 기본적으로 볼 핸들링이 좋고 시야가 넓다. 패스 하나만큼은 일본 탑클래스"라고 평가했다.
반대로 농구선수가 볼 핸들링이 불안하면 스스로 눈 앞의 수비수를 크게 의식하게 된다. 공을 빼앗길 위험성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동료를 보는 시야가 좁아진다. 즉, 후지오카의 감각적인 패스센스는 철저한 기본기술 연마에 의한 것이다.
지금 WKBL서 후지오카만큼 패스를 잘 하는 가드는 없다. 이 감독은 "프로에서 기본기를 연마하면 이미 늦다. 중~고등학교 때 완성이 돼야 하는데, 한국은 그게 쉽지 않다. 결국 한국과 일본은 선수들이 프로에 입단할 때부터 기량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후지오카의 피 나는 노력도 한 몫 했다. 최근에는 부족한 슈팅 기술을 향상시키려고 한다. 그는 "오전, 오후에 팀 연습을 하고 새벽과 저녁에 개인연습을 한다. 만족할 때까지 슛을 던진다"라고 했다. 만족을 모르니 기량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후지오카는 "롤모델은 크리스 폴이다. 픽&롤을 잘 하고 슈팅력도 좋다"라고 했다. 소속팀에서도 확실한 주전이 아니지만,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바라본다. 물론 WKBL에도 이 정도의 목적의식을 갖고 개인연습을 하는 선수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인프라, 환경의 제약과 한계로 어려움이 있다.
후지오카가 단순히 1~2경기 컨디션이 좋아서 폭풍 어시스트를 한 게 아니었다. 그 속에는 한일 여자농구의 근본적인 차이, 뼈 아픈 현실이 투영됐다. 대회가 끝난지 약 1주일. 아직도 머리 속에 후지오카의 날카로운 어시스트가 선명하게 박혀있다.
[후지오카. 사진 =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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