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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정세랑 작가 손에서 출발한 '보건교사 안은영', 이경미 감독이 그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세계를 확장시켰다. 신(新) 유니버스의 탄생이다.
이경미 감독은 5일 오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관련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진행해 취재진과 만났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평범한 이름과 달리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건교사 안은영(정유미)이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남주혁)와 함께 이를 해결해가는 명랑 판타지 시리즈. 영화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등을 연출한 이경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원작 소설을 집필한 정세랑 작가가 의기투합해 소설과는 또 다른 신선한 콘텐츠를 완성했다.
제작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연일 화제를 모았다. 소설이 지닌 기묘한 판타지 세계관, '젤리'라는 본 적 없는 욕망의 잔여물, 거대한 사건과 장소가 아닌 일상적인 배경에서 일어나는 안은영의 고군분투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해낼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매 작품 혁신적인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 이경미 감독을 만난 '보건교사 안은영'은 가장 컬러풀한 색채로 회색빛 세계를 하고 대중을 찾아왔다. 새로운 비주얼,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의 향연은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난달 25일 공개된 이후 연일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장악했고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OST, '젤리' 등이 큰 화제를 모으며 '안은영 열풍'이 불었다. 활자 속 캐릭터를 색다르게 살려낸 정유미와 남주혁의 호연은 물론 배우 박혜은, 심달기, 현우석, 권영찬, 박세진, 송희준, 이석형, 오경화 등의 신예 배우들도 주목받고 있다.
이경미 감독은 열린 결말로 6회를 마무리한 것과 관련해 이날 "시즌1을 프리퀄 개념으로 작업한 게 맞다. 이미 여자 히어로물로서의 재료들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넷플릭스 시리즈물로 가려면 프리퀄로 접근하면 어떨지 제안을 드렸다. 넷플릭스 측에서 좋아하셔서 그렇게 진행했다. 앞으로 시리즈물로 갈 수 있게 열어놓고, 다음 시리즈를 열어놓는 게 제 미션 중 하나였다"라고 밝히며 시즌2에 대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열어두었다.
원작에 없던 단체 '안전한 행복', '일광소독' 등이 드라마에 새로 삽입된 것 역시 드라마를 장기적으로 이끌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 감독은 "이번 시즌이 여자 히어로물 프리퀄이라고 접근했을 때, 안은영이 물리칠 대상이 젤리로만 설정돼있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장차 히어로가 될 인물에 대한 고민, 그의 성장을 생각할 때 '작은 은영'에서 '큰 은영'으로 만들어내는 주변 사람들의 스토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은영이가 받아들이려면, 그를 대변할 수 있는 실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싸워야할 상대를 크게 조직적으로 가져갔다"고 밝혔다.
"정말 믿기 어렵지만 리서치를 하다 보니 실제로 이런 초자연적인 존재로부터 인류를 지키고자 하는 민간 조직 단체가 있었어요. 회원이 몇 명이 되는지도 몰라요. 그 단체의 이름이 SCP였던 것 같아요. 인간을 위협하는 초현실적인 존재들을 넘버링해서 캐릭터의 움직임까지 묘사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안전한 행복'을 떠올렸어요. 이런 조직이 있어야 은영이가 시즌2로 갔을 때 미션도 더 커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또 그래야 거기서 싸워야 할 군상들이 여러 가지가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전작의 요소들을 '보건교사 안은영'에 조금씩 가미했다는 이 감독은 "'미쓰 홍당무'의 아침 체조와 '보건교사 안은영'의 웃음 체조가 맞닿아있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학교에선 별 걸 다하지 않느냐. 또 '안전한 행복' 등의 설정은 단편 '아랫집'과 닿아있다. '안전한 행복'의 공간 등도 사실 다 작업한 게 있었는데 촬영 일정상 할 수 없어서 빠졌다. 오컬트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있었다"라고 비화를 전했다.
안은영 캐릭터 형성 과정도 밝혔다. 그는 "처음엔 안은영을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로 생각해 그에 맞는 옷차림을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은영은 전사다. 이 사람이 싸울 때 가장 편안한 차림은 무엇일지 생각했다. 롱스커트는 달리기 편하니까, 액션을 하기 편하니까 설정했다. 은영이의 움직임을 옷이 살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선을 만들고 싶었다. 머리는 처음에 숏컷을 원했는데 유미 씨와 상의를 하면서 단발머리로 바꿨다. 저희는 지금도 '다행이다'라고 한다. 덕분에 조금 더 만화적인 느낌이 나온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드라마의 핵심인 '젤리' 묘사에 가장 애를 먹기도 했다고. 이 감독은 "굉장히 어려웠다. 그냥 촬영은 현장에서 테이크를 여러 번 가면 된다. 하지만 CG는 여러 번 갈 수가 없다. 그 말을 뱉은 순간 모두가 불행해진다. 그래서 굉장히 예민해지더라"라고 말했다.
정세랑 작가와의 협업에 대해선 "작가님이 각본을 쓰신 것은 아니다. 작가님이 작업하신 각본과 제가 소설을 보면서 살리고 싶었던 점들을 정리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건 옴니버스 구성이었다. 이걸 여성 히어로의 성장물로 가져가자고 제안을 드렸고 줄기에 맞춰서 에피소드를 재구성했다. '젤리'들을 좀 더 캐릭터화시켜서 세계를 만들었다. 은영이를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고 전하며 "시리즈물의 세상이 조금 더 잔인하고 어둡다. 은영이와 학생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알록달록 만화 세상임과 동시에 잔인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정글의 세계다. 그건 제가 늘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만 많은 내용들이 생략돼 '불친절하다'는 일부 반응을 놓고서 "저는 영화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영상으로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사람이다. 한 컷에 정보를 많이 넣는 편이다. 드라마 화법에 익숙하신 분들은 정보들을 한번에 캐치하기 어려우실 것 같다. 그 점에서 불친절하다고 느끼실 듯 하다. '도장깨기 미션' 이야기식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매회 안은영이 크리처를 물리치고 포상으로 하트비가 내리면 어떨지에 대한 생각으로 접근했다"라고 말했다.
"저는 늘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이라 이번에도 그건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그래도 다른 포맷으로 새롭게 접근하게 됐으니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랐고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있어요. 좋아하시는 분들은 늘 좋아해주셨지만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경계선을 타왔거든요. 이번엔 좋아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폭발적이라는 걸 느끼고 있어요. 주변에서 일단 축하 전화가 많이 오고 있고 자랑스러워 해주시고 계세요."
이 감독은 기존과 달리 원작이 있는 작품을 리메이크한단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원작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나. 저는 원작을 재현하는 사람이 아니고, 창작을 하는 사람이다. 영감을 받은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다. 제 창작 작업이 원작을 좋아하시는 분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이 컸다"면서도 "하지만 정말 재밌었던 건, '장난감 칼과 총으로 젤리를 무찌르는 보건 선생님 이야기를 써 봐'라고 하면 저는 못 했을 거다. 이런 협업이 재밌다는 걸 처음 경험했다"라고 전했다.
"전작인 '비밀은 없다'가 흥행에 실패했어요. 만약 흥행에 성공했다면 시리즈물에 도전하지 않았을 거예요. 영화를 또 만들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흥행 실패가 맨땅에 헤딩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영화를 개봉하고 많이 보여주고 싶은데, 보여줄 기회조차 박탈당한 기분이 들었을 때 다른 플랫폼을 찾고 싶었고, 그래서 넷플릭스에 일찍이 관심을 가졌어요. 그러던 찰나에 '보건교사 안은영'을 제안 받았고 한 번도 안 해본 요소들이었어요. 손에 쥔 게 없는데 못할 게 무엇이 있겠느냐는 생각이었죠."
배우 정유미, 남주혁을 향한 신뢰는 대단했다. 이 감독은 "두 분은 여러 후보 중 고른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정유미, 남주혁이었다. 정유미 씨는 소설이 나왔을 때부터 많은 분들이 열망하고 있었다. 제가 오래 전에 시나리오를 줬다가 까인 인연이 있다. 하지만 결국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고 저희끼리 이야기했다. 또 유미 씨에게 예측 불가능한 리액션들이 있다. 만화적인 순간들이다. 그런 일상적인 모습들이 안은영이랑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며 "남주혁 씨는 제가 좋아했다. '안시성'을 보고 너무 좋아서 친구한테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소설의 인표와는 조금 다르지만 유미 씨와 만화적인 그림이 잘 나올 것 같았다"고 전했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게 아닌, 새로운 세계를 떠다니는 듯한 이경미 감독의 기묘하고 독특한 연출이 가장 유쾌한 방식으로 담긴 '보건교사 안은영'. 사랑스럽지만 특유의 섬뜩함도 여전히 공존했다. 학생들의 과장된 몸짓과 웃음소리 등이 그렇다. 이 감독은 학생들이 계단을 내려가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언급하며 "후시녹음에서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재밌었다. 이상한 젤리에 홀려서 그렇게 됐으니, 그걸 확실하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하며 "저는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저는 조금이라도 지루한 것을 견디지 못하고 정보가 중독되는 것을 견디지 못해요. 숨겨서 사람들이 뭔가를 찾아내줄 때 '통한다'는 느낌을 좋아해요. 그래서 컷마다 힌트와 의미를 많이 넣어요. 쉽게 가는 스타일은 아니죠. 하지만 제가 넣은 요소들이 이 작품에 중요한 것이라 그것들이 계속 분석되고 회자가 되면 좋겠어요. 작품이 싫어도, 왜 싫은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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