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이석희 기자]그 분과의 인연은 참 오래됐다. 30년쯤 된 듯하다. 개인적으로 서로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그의 구수한 입담에 앙금도 금세 풀어지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직후 있었던 한국식당에서의 회식때 그분은 중국의 유명한 술인 수정방을 갖고 와서 한잔 따라주며 원샷을 권했다.
올림픽전 기사문제로 충돌한 부분도 있어서 그분은 나에게 화해의 잔을, 나는 올림픽에서 마음고생을 한 위로의 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렇게 술잔이 오고가면서 서로 많은 부분의 오해도 풀게 됐고. 말 많았던 역삼동 빌딩을 소유하게 된 이유도 알게 됐다.
그렇게 얼굴 표정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던 그분이 세상을 등졌다는 뉴스를 접한 것이 벌써 5년전이다. 퇴근하자마자 빈소가 차려진 서울중앙보훈병원으로 향했다.
선하게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이상일 KBO사무총장을 비롯해서 관계자들, 이용철 KBS 해설위원등이 고인을 대신해서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오늘, 9월8일은 바로 하일성 전 KBO사무총장 겸 KBS 해설위원이 타계한 지 5년째 되는 날이다.
올 해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40년째 되는 해이다. KBO가 이렇게 발전한 데는 하위원의 구수한 입담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위원은 성동고-경희대학교에서 야구 선수 생활을 했다. 부상으로 인해 일찍 야구선수 생활을 접고 대학 졸업 후 양곡종합고등학교에서 첫 교편을 잡았다. 이후 환일 고등학교로 전근을 갔고 거기서 야구해설위원의 인연을 맺었다. 당시 같은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중이던 배구해설가 오관영씨의 추천으로 1979 년 TBC 야구 해설을 시작했다.
이후 KBS로 자리를 옮긴 하일성씨는 '야구해설하면 하일성' 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실력을 발휘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듬해인 1983년에는 교사생할을 그만두고 전업 해설가로 활동했다. 그가 경기 중 예언한 상황이 자주 맞아 떨어져 ‘하스트라다무스’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 위원은 말년에 불미스러운 일에 엮이면서 결국 세상을 등졌다.
"야구 몰라요." 유명한 야구 명언을 남긴 하일성씨가 벌써 세상을 떠난 지 5년째가 됐다. 그의 구수한 입담이 생각나는 9월8일이다.
[사진=마이데일리 DB]
이석희 기자 goodluc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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