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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성호 기자]노조원이 회사를 속이고 외부 민주노총 조합원을 자사 보안 시설에 접근하도록 한 데 대해 회사가 경징계를 내렸는데, 이를 무효로 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와 산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앞으로는 아무나 막 들어와도 가만 보고만 있으란 것이냐”는 항변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한국남부발전 직원으로 민노총 발전노조 조합원인 박모씨는 2018년 11월 국가 중요 시설인 발전소가 있는 강원 삼척본부에, 이 회사 해직 조합원 1명과 발전노조 상급 단체인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3명 등 4명을 인솔해 들어갔다.
회사에는 ‘노조 사무실 방문’이 목적이라고 밝혔고, 사 측은 노조 사무실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출입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 4명은 노조 사무실에 잠시 들렀다가 회사 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본관 건물로 이동해 시위를 벌였다.
사 측은 박씨에게 ‘인솔 책임 소홀’을 이유로 가장 낮은 수위의 ‘견책’ 징계를 했고, 박씨는 이 징계가 부당하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다.
강원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모두 “삼척본부는 국가 보안 시설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임에도 박씨가 당초 약속과는 달리 출입 승인을 받지 않은 곳에 외부인이 출입·활동하도록 했다”며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불복해 박씨가 낸 행정소송 1심도 노동위 손을 들어줬다.
법원 판단은 2021년 2심에서 뒤집혔다.
서울고등법원은 “출입자들의 행위는 (이 사업장) 종사 근로자가 아닌 노조 본부 또는 상급 단체 조합원에게도 허용되는 조합 활동”이라며 “중요 시설 보호를 이유로 ‘(이 사업장) 종사 근로자가 아닌 노조원’ 출입을 전면 배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박씨가 사측을 속인 건 “남부발전의 과도한 출입 제한에 대응해 한 행위”라며 문제 삼지 않았다. 2심은 박씨에 대한 징계를 취소하라고 판결했고,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달 3일 중앙노동위는 법원 판결에 따라 앞서 판정을 뒤집어 남부발전에 박씨 징계를 취소하고 징계로 인해 박씨가 덜 받은 임금도 박씨에게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과거 법원은 산별노조나 산별연맹 등 상급 단체의 조합원이 사업장에 출입하면서 벌어진 분쟁에서 사 측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근래에는 상급 단체 조합원의 출입도 노조 활동의 일부분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쪽으로 판결이 바뀌고 있다. 이런 추세는 2020년 노동조합법이 개정되면서 더 강해졌다는 게 재계 분석이다.
당시 법 개정으로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아닌 노조 조합원은 사용자의 효율적인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사업장 내에서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이 조항을 근거로 법원이 상급 단체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1월 법원은 2020년 민노총 금속노조 간부들이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 사 측 제지를 무시하고 진입, 집회를 열어 주거 침입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대법원도 금속노조 간부들이 사측 허락 없이 유성기업 공장에 들어간 것을 “정당한 조합 활동”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고용노동부는 “개정 노조법의 취지는 상급 단체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을 무제한 허용하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해당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조합원들 출입이 아무런 제한 없이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안에 따라 (주거 침입·퇴거 불응 등) 형법 규정을 적용받을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부는 미국·독일·영국·호주·뉴질랜드 등도 외부인의 사업장 출입을 사 측이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출입 거부권이 사 측의 권리로 인정되고, 독일에서는 사 측에 사업장 내에서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사전 통보해야 하며, 사 측의 의사에 반해 사업장에 들어가면 주거침입·기물 손괴 등으로 간주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측은 “법원이 상급 단체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가능 여부를 지나치게 폭넓게 해석하면서 기업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할 방법이 없어진 상황”이라고 했다. ‘외부 노조 간부의 출입을 막을 방법이 없느냐’는 기업들의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고 했다.
김성호 기자 shk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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