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화씨 451 | 저자: 레이 브래드버리 | 역자: 박상준 | 황금가지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번역가 조민영] “불태우는 일은 즐겁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쓴 SF 소설 〈화씨 451〉 첫 문장이다. 무엇을 불태우길래 즐겁다는 걸까. 놀랍게도 광기어린 화염이 집어삼키는 건 바로 ‘책’이다.
제목 <화씨 451도>는 섭씨 233도로, 종이의 발화점 즉 책이 불타는 온도다. 1953년에 쓰인 이 작품은 책을 금지하고 불태우는 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병들어가는지 보여준다.
주인공 가이 몬태그는 파이어맨이다. 원래 파이어맨은 ‘소방수’이지만, 미래 세계에서는 모든 건물이 불에 타지 않는 소재로 지어져 소방수란 직업이 사라진다. 대신 이들은 ‘방화수’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불행에 빠뜨리는 책을 태운다.
책이 인간을 불행에 빠뜨린다고? 몬태그의 상관인 방화서장 비티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은 책을 읽으면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은 ‘왜?’라는 질문을 낳는다. 이 질문은 비판적 사고로 이어지고, 인간은 결국 불행해진다.
불행한 인간은 통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100만 권이 넘는 금서목록을 지정하고, 불행을 일깨우는 독서를 불법으로 규정한다.
대신 사람들에게 말초적인 자극과 쾌락을 손쉽게 제공해 언제나 행복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행복에 취한 인간은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몬태그의 아내 밀드레드는 이 거짓 행복에 마비된 인물이다. 낮에는 세 벽면에 달려 있는 TV 속 가짜 ‘친척’들과 하루 종일 대본에 따라 연극을 한다. 밤에는 귀마개 라디오로 귓구멍을 틀어막고, 전기적으로 합성된 파도소리, 음악소리, 이야기소리를 들으며 가수면 상태로 여행을 떠난다.
거짓 행복은 부작용을 낳는다. 바로 우울증이다. 어느 날 밀드레드는 자신도 모르게 수면제 한 통을 야금야금 삼킨다. 그러나 위세척으로 이 우울증 찌꺼기를 긁어낸 다음 날,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오히려 거실 나머지 한 벽면에도 TV를 달고 싶다며 더 많은 자극을 요구할 뿐이다.
정부는 이렇게 TV 같은 매체를 이용해 사람들이 전부 똑같은 인간이 되도록 길들인다.
하지만 몬태그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와 질문을 쏟아내는 호기심 많은 소녀 클라리세와 진정한 인간적 교감을 나눈다. 또한 행복하냐는 클라리세의 질문에, 마침내 자신이 행복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클라리세는 몬태그 내면에 이런 작은 균열을 일으킨다. 이 균열은, 몬태그가 책과 함께 불타기를 택한 한 노부인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마침내 터져버린다.
“책 속에는 뭔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게 있어. 그 여자가 불타는 집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남아 있게 한 뭔가가 분명히 있어. (…) 그리고 처음으로 깨달았지. 불에 타 없어진 하나하나의 책들마다 제각기 한 사람씩의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그게 누구든 한 권의 책을 채우기 위해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해낸 거야.”
이제 몬태그는 방화수로 책을 불태울 때 몰래 빼돌린 성경, 시집 같은 금서를 읽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문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있는데,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가. 돌이켜보니 지난 10년간 사라진 것은 단 하나, 불태워 없앤 책뿐이다. 그렇다면 답은 책에 있을지 모른다.
몬태그는 답을 찾았을까. 안타깝게도 그가 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 직후, 도시는 원자폭탄의 화염에 휩싸인다. 책은 모조리 불타버렸다.
그래도 희망의 불씨는 살아 있다. 도시 밖에서 몬태그와 함께 살아남은 이 사람들 머릿속엔 저마다 책 한 권이 통째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책은 곧 사람이다. 이 책사람들(book people)은 겉보기에 도시 주변을 배회하는 부랑자 집단처럼 보이지만, 안에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인 셈이다.
정부로 대표되는 지배 세력은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책을 불태우고 의미를 파괴했지만, 그래도 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명은, 언제나 책사람들 기억을 통해 재건될 것이므로.
|번역가 조민영. 세 아이가 잠든 밤 홀로 고요히 일하는 시간을 즐긴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번역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번역가 조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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