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땀 흘리는 소설 |저자: 김혜진·김세희·김애란·서유미·구병모·김재영·윤고은·장강명 |창비교육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이미연] 2025년 최저 시급은 1만30원이다. 올까 싶던 1만 원 시대가 오긴 왔다.
자영업자로서 나에겐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동네책방에서 1시간 동안 벌 수 있는 액수로 1만원은 턱없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1만원 시대에 반가운 마음도 든다. 그동안 지나온 (앞으로 갈 수도 있는) ‘을’ 입장에서다.
내가 지나온 ‘을’ 공간은 그리 많지 않으나 땀 흘린 공간도 때때로 있다. 세차장이 함께 있는 주유소라든가 의자 하나 겨우 놓인 주차 정산소라든가. 출판사에서도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오래 책을 만들게 될 줄은 몰랐지만.
세상은 넓고 일은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일은 사라지고 어떤 일은 생겨난다. 한때 내 일이 되어준 주유원도, 주차요금정산원도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누구나 각양각색 노동 현장에 놓이게 되는데 우리 사회에서 노동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까. 학교에서 ‘노동’을 가르치지 않아도 될까.
<땀 흘리는 소설>은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 책을 엮은이는 학교 현장에서 장학사, 문학 교사로 일하는 4인이다. “우리는 왜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문학 수업을 통해 노동을 공부할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해 소설 8편을 엄선했다.
각 소설은 하루가 다르게 직업이 생기고 사라지는 시대에 일다운 일은 무엇인가 고민하게 하고(김혜진, <어비>), 감정 노동자(구병모 <어디까지를 묻다>)나 이주 노동자(김재영 <코끼리>)뿐 아니라 산업 재해 피해자(윤고은 <P>)의 실태를 생생히 보여 준다.
짧게는 7년 전, 길게는 거의 20년 전 발표된 작품인데도 오늘날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안타깝기도 했다.
말이 취업 준비지 사실상 청년 실업자인 ‘인영’의 이야기(김애란 <기도>)가 그랬고, 일과 가사 모두에서 슈퍼우먼이 되길 바라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직장인 여성 ‘나’의 이야기(서유미 <저건 사람도 아니다>)가 그랬다.
지난 2024년에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담은 소설을 부러 찾아 읽었다. <한국, 소설을 말하다>나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소설집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등을 살폈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같은 질문이 계속 쌓였다. 정치는 혼란스럽고 경제는 엉망인데 왜 소설을 읽고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결국 그 질문은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향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으나 ‘오늘’을 떼고는 말할 수 없음은 알겠다.
2025년을 배경으로 땀 흘리는 소설이 집필된다면 어떤 이야기가 담길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인플루언서나 디지털 크리에이터 이야기도, 택배나 배달 플랫폼 종사자 이야기도 빠지지 않겠다. 별점, 댓글 테러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 이야기도 담길 만하다. 키오스크, 셀프 계산대, 서빙 로봇 등으로 사라진 일자리 이야기도 있겠다. ‘온라인 눈알 붙이기’라는 속칭의 데이터 라벨링 작업 이야기도 있을 법하다. AI 기술 발전으로 사라지는 직업 중에 책 편집자도 있다 하니 나 역시 소설 주인공이 될지도.
<땀 흘리는 소설>은 창비교육 테마소설 시리즈 첫 책이다. 이후로도 주제 하나를 정한 테마소설집이 꾸준히 출간됐다. 주제별로 ‘오늘’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에게 이 시리즈를 권한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본래 이번 칼럼에서 쓰려던 책은 창비교육 시리즈 가운데 2021년에 출간한 <기억하는 소설>이었다. 이 책 부제는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다.
하지만 칼럼을 준비하는 시기에 또 다른 재난이 발생했고, 결국 글을 쓰지 못했다. 현재 진행형인 재난에 말을 이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24년 12월 29일 안타까운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이미연. 출판업계를 뜰 거라고 해 놓고 책방까지 열었다. 수원에 있지만 홍대로 자주 소환된다.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한다.
북에디터 이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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