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 소리에 정신을 번뜩 차렸다. 병원 검사자가 내게 말했다. “아이가 열어서는 안 되는 문을 열잖아요. 못 열게 하세요.”
병원에서 아이가 검사를 받던 중이었다. 검사가 길어지자 아이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자리에서 이탈해 검사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아이는 검사실 중간에 문이 있는 걸 기막히게 알고 순식간에 열어젖혔다.
이때 나는 부모용 검사지에 답하고 있었다. 이날은 검사 시간에 30분 가량 지각마저 해서 급하게 시작하느라 유독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비협조적인 태도로 산만하게 구는 아이가 신경 쓰여서 자주 응답을 멈추고 아이를 쳐다봤다.
‘문을 못 열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검사자가 아이에게 “문 닫아” 하고 말했다. 나는 아이를 제지하려다가 말고 검사자 눈치를 보며 가만히 있었다. ADOS(Autism Diagnostic Observation Schedule) 검사 중에는 보호자가 아무런 개입도 해선 안 된다는 지침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돌발 행동도 평가 기회로 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검사자 지시에 따라 문을 닫았지만, 곧바로 다시 열었다. 그러자 검사자가 내게 아이를 제지하라고 말했다. 나는 “죄송합니다. 아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시는 줄 알았어요”하고 아이를 제 자리에 앉혔다. 검사를 다 마친 뒤 나가며 다시 한번 “오늘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날은 무엇을 해도 기운이 없었다. 아이에게 소아정신과 검사를 받게 하는 속상함, 지각으로 불편했던 마음, 내가 수없이 내뱉은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한 데 뒤엉켜 나를 괴롭혔다. “엄마는 뭐 하는 거냐”는 말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혀 며칠이 지나도 무안한 감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간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겪은 여러 나무람,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부모라는 이유로 세상 사람들 아무나 나를 함부로 혼내는 기분이었다.
아이가 놀다가 뜬금없이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며칠 전부터 지연 반향어로 종종 이 말을 했다. 반향어(Echolalia)란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일컫는다. 예전에 들은 말을 한참 뒤 맥락에 상관없이 따라 하는 것을 지연 반향어라 한다.
아이에게 “안 할게요” “미안해” “잘못했어요”는 가르쳤어도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가르치지 않았다. 내가 한 말을 기억했다가 따라 한 듯했다. 내가 평소에 그 말을 자주 했고, 아이가 그걸 인상 깊게 느꼈나 보다. 우리는 이토록 죄송할 일이 많았나.
이 일을 시어머니께 하소연처럼 말하니 그런 나를 위로하셨다. “그럴 때도 있지. 그런데 자식이 잘 자라면 사람들이 자식을 어찌 그리 잘 키웠냐고 칭찬 일색이란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듣는 날이 올 거야.”
나는 낙관적 성격이 아니라서 칭찬받을 날을 기대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저 나 역시 아이 부모를 흉보거나 칭찬했던 과거를 반성했다.
그러나 그날 밤 잠든 아이가 고단한 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면서, 자식 때문에 비난받기도 칭찬받기도 하는 게 부모의 삶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아이가 앞으로 살면서 혼날 일이 많을 텐데, 지금은 내가 아이 대신 혼난다고 생각하니 이를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의기도 생겼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냥 혼나. 죄송하다고 해. 그러고 그만이야. 훌훌 털어버려.”
종종 학생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이번엔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이 아이가 잘못을 인정하고 행동에 책임지되 훌훌 털어내며 다시 일어서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나부터 마음을 담금질한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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