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모멸감-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저자: 김찬호 |문학과지성사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정선영] 얼마 전 접촉 사고가 났다. 좌회전 신호를 받고 천천히 도는 중에 한 차가 차선을 침범해 내 차 사이드미러를 쳤고, 퍽! 소리에 채 다 놀라기도 전에 차 우측을 긁고 그대로 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수리를 마친 차를 받고 보니 도색에 문제가 있었다. 도색이 창틀 쪽으로 튀었는데, 해당 부분을 함께 보며 얘기하니 “그냥 쓰시면 안 돼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당혹스러웠다.
재차 이의를 제기하니, 공업사에서 차를 다시 가져갔다. 그런데 돌아온 공업사 관계자 태도가 처음과 달랐다. 그 부분이 원래 그랬다면서 큰소리를 치기 시작하더니 수리 전 사진을 들이댔다. 내 눈엔 아무리 봐도 수리 전엔 해당 부분이 멀쩡했다. 같은 사진을 보면서도 원래 이랬다, 안 그랬다, 서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니 내가 이것 때문에 공장 가자마자 ‘우리 직원한테 야! 이 새끼야, 내가 너 때문에!’ 이랬단 말이죠! 이거 보세요. 차가 원래 이랬다고요!”
그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튀어나오자 나는 얼어붙었다. “아무튼, 차 잘 쓰시고요!” 이렇게 갑자기 외마디를 남기고 그는 떠났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욕이었다. 간접적이긴 하다만 내게 한 욕으로 느껴졌다. 뒤늦게 모멸감이 찾아왔다. 다시 온 차 상태도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공업사에 다시 연락해 따져 묻고 싶지 않았다.
모멸감의 사전적 정의는 ‘모멸(업신여기고 얕잡아 봄)스러운 느낌’이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영화 <달콤한 인생>의 유명한 대사가 말해주듯, 모멸감은 인간 사회 여러 갈등을 설명하는 요소 중 하나다.
김찬호 책 <모멸감>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모멸감의 본질을 탐구한다. 우선 그는 모멸감을 “나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라 정의한다. “억울해 죽겠어, 무시하지 마, 지가 뭔데… 한국인에게 익숙한 이런 말들에서 모멸감의 짙은 흔적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그 감정은 객관화하기 힘든 속성을 지니고 있다.”(7쪽)
대충 걸치고 나온 내 옷차림이 문제였을까? 내가 본인보다 젊은 게 문제였을까? 나도 큰 소리를 냈어야 하나? 내가 만만해?! 분하고 억울했다. 쉽사리 담담해지지 않았다.
전화로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 아저씨가 여자라고 만만하게 본 거 아냐? 차도 잘 모르고…” 내 차에는 초보운전 스티커가 붙어 있다. 엄마 한마디에 갑자기 성이 났다. “엄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어떡해! 엄마가 뭘 알아!”
“모욕을 쉽게 주는 사회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 모멸감을 쉽게 느끼는 마음이다. 그것은 또 다른 모멸감을 확대 재생산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68쪽) “그 울분을 가슴에 억누르고 있다가 약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폭력으로 분출한다.”(127쪽)
만만한 게 엄마라고… 나는 그야말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사람’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쉽게 모욕과 모멸을 쉽게 주고받는 사회가 됐다. 나 역시 그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 반성한다.
이 책은 ‘모멸감’이라는 감정을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분석한다. 우리 사회 모멸감이 발현되는 다양한 양상을 보면서 나는 내 감정을 한 발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약간의 평정심을 얻었다. 실제로 저자는 모멸감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한 방법으로 개인의 평정심 유지를 이야기한다.
한 번쯤 모욕감이라는 감정에 휘둘린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웬만한 심리서보다 도움이 된다.
|북에디터 정선영. 책을 들면 고양이에게 방해받고, 기타를 들면 고양이가 도망가는 삶을 살고 있다. 기타와 고양이, 책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삶을 꿈꾼다.
북에디터 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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