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선명탐정', 시나리오 받는 순간 운명이라 느껴"
"평소 책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하고 연기 배워"
[마이데일리 = 함태수 기자] '철두철미'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배우 김명민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영화 '내사랑 내곁에',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하얀거탑', '불멸의 이순신' 등 다양한 연기의 스펙트럼을 보여줬던 그가 오랜만에 힘을 뺐다.
김명민은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하 조선명탐정)'에서 허당천재 명탐정 역을 맡았다. 명탐정은 천재적인 두뇌와 번득이는 추리,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를 갖고 있지만 말 그대로 허당인 캐릭터다. 또한 조선 최대의 음모를 파헤치는 가운데서도 특유의 재치있는 입담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조선명탐정'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동안 무겁고 진중한 역할들로 그만의 독보적인 아우라를 갖고 있는 김명민이 코믹한 캐릭터를 선택했다?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간단, 명료했다.
"시나리오가 좋았습니다. 운명 같은 느낌이었죠.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첫눈에 반하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스토리가 매끄러웠고 역사적인 배경이 참신했습니다. 또 허구와 사실을 반반씩 섞어놓은 구성이 좋았습니다."
그랬다. 김명민 연기의 첫 번째 기준은 시나리오였다. 상대 배우, 감독 보다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를 만나는 그 순간, 그 느낌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김명민은 시나리오를 보는 안목이 탁월하다고. 또 그가 선택한 시나리오는 김명민 외에는 감히 엄두도 내기 힘든 캐릭터라고.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제 주위 사람들은 오히려 시나리오 보는 안목 좀 키우라고 하는걸요. 절대 저는 탁월한 재능이 있지 않습니다."
김명민은 극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재차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하지만 왠지 성에 차지 않았다. 단순히 운이라고 하기엔 그가 선택한 시나리오들이 너무 좋았다. 물론 김명민표 연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시나리오가 가지고 있는 힘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평소 책을 많이 읽는 편입니다. 결혼 전에는 배낭 하나만 짊어지고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어요. 배낭 안에는 책들로 가득 찼는데, 여행지 방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책을 통해 참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 같아요. 무엇이든 꿈꿀 수 있고 무엇이든 해볼 수 있고. 배우가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직, 간접 경험 중에 가장 많은 경험을 책으로부터 얻는 것 같아요. 평소 책을 통해 연기를 배우고 책을 통해 작품을 읽는 눈을 기릅니다."
"오달수 형과는 다음에 꼭 다시 한번 작품하고 파"
"섹시 카리스마 한지민, 크게 될 가능성 보여"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조선명탐정'은 첫 주말인 30일까지 73만 4020명의 관객을 동원, 이 기간 흥행 1위에 올랐다. 설을 맞아 쟁쟁한 작품들이 앞다퉈 개봉 릴레이를 펼쳤지만 김명민의 코믹 사극 '조선명탐정'을 꺾지는 못했다.
"배우들과의 호흡이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달수 형 같은 경우는 연기의 달인이잖아요? 셜록홈즈-왓슨 박사를 뛰어넘는, 그런 연기 호흡이었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꼭 더하자'는 얘기를 매일 했죠."
한지민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김명민은 영화 시사회에서 '한지민의 섹시함에 넋을 잃었다'고 말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청순 단아함의 한지민은 이번 영화를 통해 섹시 카리스마를 뽐내며, 연기 변신에 도전했다.
"아쉽게도 영화에서 한지민 씨와 부딪히는 신이 많이 없었어요. 제 옆에는 항상 오달수 형님이 계시죠(웃음). 지민 씨는 정말 예쁜 배우고 태도가 바른 배우예요. '참 대하는 태도가 바르구나' 몇 번이고 느꼈습니다. 그런 자세로 계속 한다면 정말 좋은 배우가 될 겁니다. 아, 섹시한 연기도 놀랄 정도로 잘했고요."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김석윤 감독은 KBS 예능 간판 PD 출신이다. 2006년 극장판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영화 도전인 그를 항간에서는 '충무로의 아웃사이더'라고 부른다. '연기 본좌' 김명민과 '아웃사이더'와의 만남이라, 흥미로웠다.
"성격상 비슷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출연 결정 단계에서 부터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게 생겼죠. 한번은 전체적인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문제점을 말씀드렸더니 반영할 건 반영하고 고집대로 가시는 부분은 가시더군요. '뚝심이 있으시면서도 항상 귀를 열어두시는 분이구나' 했습니다. 서로 마음이 잘 통했고 너무 만족스러웠던 영화 작업이었어요."
코믹 연기 얘기를 안할 수 없었다.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어색하지 않은 김명민의 코믹 연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참 능청스럽게도 김명민이 만들어낸 명탐정은 얄밉지만 밉지 않았고, 유머러스했지만 가볍지 않았다.
"전작 '파괴된 사나이'나 '내 사랑 내 곁에', 그리고 '조선 명탐정'은 사실 똑같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편하게 바라봐주는 것 말고는, 연기하는 부분이 똑같죠. 항상 긴장해야 하고 행여나 연기 하면서 놓치는 부분이 없게 정신 바짝 차리는 건 똑같아요. 단, 끝나고 나서 후유증이 덜 하는 것 같은 느낌은 들더군요. 어쨌든 주위에서 많이 웃어주니 그건 기분 좋은 일이죠."
"아들이 배우한다면 절대 반대…나를 이기면 말리지 않아"
"묵묵히 내조해 주는 아내, 항상 고마워"
"연기 만족 못해, 만족은 본인이 하는 게 아냐"
김명민은 외아들의 아빠다. 자식 얘기를 하니 갑자기 눈빛이 더 또렷해지는, 배우이기 전 한 아이의 아빠다. 어떤 아빠인지 궁금했다. 쉼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온 김명민이기에, 평소 아이에게 잘 해주는 지 물었다.
"제 아버지는 무섭고 교육에 철저했지만 친구 같지는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거리감이 있었죠. 배우를 한다고 했을 때도 부모님이 심하게 반대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이가 내 머리를 만지고 서슴없이 다가올 정도로 친구 같습니다."
친구같은 아빠라…혹시 아들의 꿈이 배우가 아닌지 궁금했다. 친구는 서로 닮는 법.
"맞아요. 아들이 배우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힘든 길, 전 절대 반대입니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게 배우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아이가 그걸 뚫고 자력으로 일어서면 그 때는 찬성해줄 겁니다. 사막 한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진다면, 그 때는 찬성이란 말이죠."
아내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참 바쁘게 지낸 김명민이었고, 다양한 작품을 통해 김명민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다.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가장 큰 내조를 해주는 와이프죠. 특히 '파과된사나이', '내사랑 내곁에'는 좀 암울한 캐릭터여서 저 역시 암울하게 살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아내가 남편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내가 날카로움을 보이든 말든 신경 안쓰고 다 받아주니 고마울 수밖에 없습니다. 연기에 빠져, 캐릭터에 빠져, 정신병에 걸려있는 데도 말이죠."
끝으로 '조선명탐정'에서의 본인 연기에 만족하느냐 물었다. 아니, 좀 더 포괄적으로 '연기 본좌'라는 말을 듣는데, 그만큼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 속에는 철학이 있었다.
"만족이요? 전 항상 만족하지 않습니다. 아니, 만족 못하죠. 그 만족이란 건, 관객이 만족하고 인정하는 것이지 제가 하는 게 아닙니다. 본인이 인정하는 순간 배우로서, 한 사람으로서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누군가의 실력과 능력을 인정해주는 것이지 본인이 인정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김명민의 코믹 사극 '조선명탐정'은 김탁환 작가의 원작소설 '열녀문의 비밀'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정조 16년(18세기) 관료들의 공납비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을 다룬다. 조선 제일의 명탐정이 허당과 천재 사이를 넘나들며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재치를 무기로 조선을 뒤흔들 거대한 스캔들을 파헤치는 조선 최초의 탐정극이다.
[김명민.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함태수 기자 ht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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