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1904년 8월 17일, 사비나 슈필라인이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부르코 횔츨리 정신병원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데인저러스 메소드(A Dangerous Method'는 세상 모든 문제의 근원은 성(性)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1875-1961), 그리고 성(性)도착증 정신질환을 앓았으나 훗날 아동정신과 전문의가 된 실존인물 사비나 슈필라인의 비밀스런 관계를 조명한 작품이다.
1975년, 인간의 신체에 기생하는 기생충과 통제되지 않는 성적 욕망에 관한 기괴한 영화인 '파편들'로 캐나다 영화 역사상 최단시간 내에 흥행 수익을 벌어들이면서 화제를 모은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은 호러 장르인 '열외인간'과 호러와 SF 테크놀러지의 접합을 보여준 걸작 '스캐너스'와 '비디오드롬'으로 명성을 얻었고 '데드 링거'와 '네이키드 런치', '크래쉬'와 '스파이더', '엑시스텐즈'로 '호러 영화의 반동'으로 불리며 섬뜩하면서도 새로운 영상을 보여주었다. 또한 '폭력의 역사'와 '이스턴 프라미스'로 폭력이란 새로운 주제를 탐미하기 시작한 그가 4년만에 연출한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그동안 폭력과 기괴함, 성욕 등으로 대변되는 본능적인 소재들을 독특하게 풀어낸 것을 감안할 때 실존인물을 다룬다는 것만으로도 궁굼증을 자아낸다.
존 커의 원작소설 '가장 위험한 방법 (A Most Dangerous Method)'을 각색한 크리스토퍼 햄튼의 희곡 '토킹 큐어 (Talking cure; 대화치료)'를 영화화한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융이 프로이트가 고안해낸 대화 치료법으로 사비나 슈필라인을 치료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각인시킨다.
정신질환으로 스위스 취리히 정신병원에 오게 된 사비나 슈필라인(키이라 나이틀리)은 당대 획기적인 치료법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대화 치료법을 응용하는 정신과 의사 융(마이클 패스벤더)에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육체적인 학대를 통해 성적 만족을 느끼게 된 병적인 심리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융은 그녀와 가까워지면서 묘한 욕망에 사로잡히지만 이성으로 본능을 억제한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건 오아시스를 만나면 가던 길을 멈추고 물을 마셔요"라는 자유연애주의 정신분석학자 오토 그로스 박사(뱅상 카셀)의 조언으로 인해 융은 본능에 따르게 되고 슈필라인과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슈필라인의 성적 만족을 위해 그녀를 때리던 융 역시 그녀를 학대하면서 성적인 쾌감을 느끼게 되고 은밀하면서도 거침없는 그들의 관계는 환자와의 부적절한 소문을 염려한 프로이트(비고 모텐슨)의 질책으로 인해 금이 가기 시작한다. 슈필라인은 의사가 되고 싶은 자신의 꿈과 융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고 집착으로 괴로워하지만 융은 자신의 후원자인 부인 엠마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녀에게 작별을 고한다.
칼 구스타프 융은 취리히대학교 부설 정신병원에서 일하면서 단어연상검사를 연구하여 콤플렉스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정신분열증의 심리적 이해와 정신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당대 획기적인 치료법인 정신분석학적 대화 치료법을 제안한 프로이트는 융에게 있어 존경의 대상이었다. 융은 이때 프로이트 이론을 접하면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파의 핵심인물로 활동하기도 했고 프로이트 역시 융을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고 이를 정립시켜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론적인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되고, 오해와 질투로 인해 결별을 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인 이 이야기는 프로이트가 융이 자신의 권위를 인정해 주길 바라는 과정에서 문제가 야기되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히스테리 환자와 일반인들에게 심리적 원인이 어린 시절의 충격적 경험인 성(性)이라고 주장하는 프로이트의 주장을 융이 받아들이지 않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유일한 의미를 부여할 수 없으며, 성(性)이 심리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융은 자신의 학설을 분석심리학으로 명명하며 프로이트와 다른 길을 가는 것을 선택했다. 반면 프로이트는 심리학이 과학이 아닌 미신으로 빠지는 것을 자제하기 위해 심령현상이나 종교적인 것을 믿는 슈필라인과 융의 학설을 인정하지 않고 과학으로서의 정신분석학 확립을 지향한다.
이 영화에서 프로이트는 융과 지속적인 교류와 서신을 통해 학설을 나누고 슈필라인과의 사적인 관계를 반대하며 모든 일에 감정을 배제한 채 냉철한 이성의 잣대를 유지한다.
존경과 우정으로 출발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1912년 융이 프로이트의 의견과 크게 다른 내용의 '무의식의 심리학 Wandlungen und Symbole der Libido'을 출판하면서 갈등이 깊어지고 결국 융은 독자적으로 무의식세계를 탐구하여 분석심리학설을 제창한다.
그런 만큼 이 영화에서 프로이트와 융의 팽팽한 심리대결을 기대하는 건 당연하지만 두 사람이 1906년 첫 번째 만남을 갖고 의기투합했다가 1912년 서로 단절하기까지의 과정은 연극처럼 두 사람의 대화로만 전개되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물론 성도착증을 앓았으나 프로이트와 융과의 만남을 통해 아동정신분석의가 된 슈필라인은 몸을 사리지 않는 키이라 나이틀리의 열연으로 각인된다. 나이틀리는 미모를 감추고 시종일관 신경증에 시달리는 불안하면서도 초췌한 모습과 과감한 노출연기로 슈필라인의 내면을 부각시켜 연민을 안겨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영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여배우 키이라 나이틀리와 독일을 대표하는 마이클 패스벤더, 프랑스를 대표하는 뱅상 카셀과 덴마크계 미국인 비고 모텐슨의 출연과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조합에 있지만 기대한 만큼 실망할 여지가 많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분석심리학의 대가 칼 구스타프 융 역을 맡아 어쩔 수 없는 본능과 이성에 대한 갈등을 냉정한 케릭터 속에 부각시킨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로 인해 억눌린 욕망을 여성들에게 표출하는 정신분석학자 오토 역의 뱅상 카셀은 "짧은 생을 살면서 배운 것은 아무 것도 참지 말라는 것"이라는 극중 대사처럼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등장이 너무 짧다. 특히 프로이트 역의 비고 모텐슨은 프로이트와 흡사한 분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융과 슈필라인의 사랑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평면적인 캐릭터로 축소되어 인명사전에서 읽은 만큼 만 그려진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비엔나와 스위스의 툰 호수 등과 어우러진 1900년대의 격조 있는 유럽의 배경은 수채화같은 영상과 격조 있는 음악으로 각인되지만 결정적으로 팽팽한 극적 긴장과 가슴 적시는 감동이 없는 것이 흠이다. 융과 슈필라인의 사랑 역시 절절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극적 재미와 감동보다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학술적인 정신분석학자들의 전기영화라는 선입견 탓일까?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독특한 연출을 기대했다면 더더욱 심심하게 느껴진다.
1913년 의사와 결혼한 슈필라인이 러시아로 떠나기 전 융이 마지막으로 남긴 대사처럼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당신을 향한 사랑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어. 좋든 싫든 내가 누군지 알게 해 줬어. 그 사랑은 내 것이 되어야 해."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 중 키이나 나이틀리, 그와 마이클 패스벤더, 뱅상 카셀 스틸컷(위부터). 사진 = 영화사폴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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