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조인식 기자] 프로야구 드래프트는 축제의 장인 동시에 초중고, 길게는 대학(혹은 상무, 경찰청 등)까지 야구만 보고 살아온 선수들과 그들을 뒷바라지 해온 가족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드라마다.
최근 진행된 드래프트는 씁쓸한 마음보다 뿌듯한 기분이 앞설 수 있는 행사였다. 2013 시즌부터 1군에 입성하는 NC 다이노스를 포함한 9개 구단이 한 번도 지명권을 포기하지 않고 10명(NC는 15명)을 모두 지명했기 때문.
물론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들과 그 선수의 가족들은 비통함을 숨길 수 없었지만 지명할 수 있는 최대 인원(우선지명 포함 95명)을 채운 이번 드래프트에서는 그런 모습보다 지명을 받은 선수 가족들의 기뻐하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번 드래프트는 10라운드로 한정된 드래프트가 실시된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선발된 드래프트였다.
하지만 과연 모두가 행복했을까? 많은 선수가 프로 유니폼을 입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일까? 야구에 인생을 건 고교와 대학의 졸업 대상자 가운데 한 명이라도 많은 선수가 프로의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은 반길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미소 속에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눈물이 녹아 있다.
프로 구단은 매년 일정한 선수단 규모를 유지한다. 다시 말해 드래프트에서 10명을 선발했다면, 기존 선수 가운데 10명은 이번 시즌이 끝나고 방출되어야 한다. 마치 최민식과 류승범이 열연한 영화 '주먹이 운다'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2005년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주먹이 운다'에서는 두 명의 복서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 강태식(최민식)은 도박 빚과 아내의 이혼 요구로 삶의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놓인다. 생활고에 시달린 강태식은 결국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맞아주는 일을 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유상환(류승범)은 친구들을 괴롭히고 패싸움을 하는 것이 생활의 전부인 비행청소년이었다. 어느날 패싸움 합의금이 필요했던 유상환은 강도 사건에 휘말려 소년원에 수감된다. 그러나 유상환의 가능성을 본 교도주임은 권투의 길을 제안하고, 그러던 중 아버지의 사고사와 할머니의 와병으로 유상환은 권투에 전념해야만 하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강태식과 유상환은 하나의 목표를 두고 정진했다. 그 목표는 '복싱 신인왕전'이었다. 사연 많은 두 복서는 신인왕전 결승까지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온다. 하지만 결국 신인왕의 자리는 하나. 두 복서는 하나의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고, 관객들은 둘 중 누구도 마음 놓고 응원할 수 없는 입장이 되는 이야기다.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프로야구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패스'(지명권 포기)를 자주 외치는 팀에게는 비난의 화살이 돌아간다. 프로 구단에 지명되지 못하면 일자리를 잡기 힘든 아마추어 선수들을 붙들지 않았다는 이유다. 하지만 한 명을 데려오면 한 명을 내보내야만 하는 구단의 입장에서 지명권을 모두 사용하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다.
때로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선수 하나를 구제하기 위해 아이의 하루 분유 값이 절실한 한 가정의 가장이 정든 옷을 벗어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구단의 스카우트들도 이러한 사정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패스'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젊은 선수 한 명과 새로운 인연을 맺으려면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명과는 시즌이 끝나고 이별을 해야만 한다.
물론 붙박이 1군 선수들은 이러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드래프트가 두려운 선수들은 퓨처스리그(2군)에 있다. 퓨처스리그 안에서도 경기에 자주 나가는 선수보다는 드문드문 경기에 나서거나 그 적은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선수들이 가장 두려움에 휩싸일 것이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이번 시즌이 자신의 야구 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직감에 따라 다음 시즌이 아닌, 야구를 떠난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선수도 있을 것이다.
(1군에 비해 비교적)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퓨처스리그. 그곳에서는 지금 누군가의 마지막 시즌이 진행되고 있다. 드래프트가 있는 8월이 지나가면, 프로야구 시즌도 막바지를 향해 달린다. 이제 누구일지 모를 그들의 마지막 시즌도 저물어가고 있다. 자신의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있는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지금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조용히 자신의 마지막 시즌을 마무리하고 있다.
[퓨처스리그 상무의 홈 구장인 성남. 지금 이곳에서 누군가의 마지막 경기가 펼쳐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조인식 기자 조인식 기자 nic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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