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음, 그냥 그랬습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21일 대구 롯데전을 앞두고 4번타자 박석민의 결장을 예고했다. 올 시즌 완치됐다던 왼손 중지손가락에 다시 통증을 느껴 20일 1박 2일 일정으로 일본에 주사를 맞으러 갔기 때문이다. 21일 오후 늦게 귀국하기에 경기 출장은 무리라는 설명이다. 이후 우천 취소된 22일 대구 롯데전을 앞두고 만난 그는 담백하게 소감을 풀었지만 표정에선 약간의 미소도 보였다.
▲ 못 말리는 야구열정, 대타로 출전하다
류 감독은 박석민이 일본으로 간 이유를 공개했다. 박석민이 맞은 주사는 국내에서도 충분히 맞을 수 있다. 그러나 박석민은 “이미 한번 맞았던 곳이고, 주사를 잘 놓더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좋았던 기억이 있으니 다시 한번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은 건 당연하다.
이후 상황이 기가 막혔다. 박석민은 21일 오후 4시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대구로 바로 올라온다고 해도 정상적인 경기 출장이 어려운 상황. 홈팀 선수들은 보통 4시 정도면 훈련을 마친 뒤 원정팀을 위해 그라운드를 비워준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한 뒤 7시께 대구구장에 도착한 그는 남몰래 경기에 나설 준비를 했다. 류 감독도 그를 외면할 수 없었고, 경기 후반 득점 찬스가 생기면 내보내겠다고 통보했다. 9회말 대기 타석에서 스윙을 붕붕 돌리던 그는 결국 대타로 출전했다.
시간적으로도 경기 출전이 쉽지 않았지만, 사실 손가락 상태를 봐도 무리하게 경기에 나설 수는 없었다. 2010년에 다친 박석민의 중지손가락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 나을 수 있다. 그러나 박석민은 직업야구선수이고, 투혼을 발휘하며 경기에 나섰다. 이번에 맞은 주사도 그렇다. 류 감독은 “원래 주사를 맞은 뒤 48시간은 쉬어야 한다”고 말했으나 결국 박석민의 의지에 두 손 두발 들었다. 실제 박석민도 굉장히 아프고 독한 주사를 맞았다고 인정했다.
▲ 9회말 2아웃의 환호성
이날 삼성은 8회말까지 단 2안타 빈공 속에 0-5로 뒤졌다. 더욱이 8회초 홍성흔에게 결정적인 만루포를 얻어맞아 흐름이 완벽히 롯데로 넘어간 상황.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9회말 최형우의 2점 홈런과 조동찬의 1타점 2루타로 3-5로 추격한 것. 8회까지 2안타에 그쳤던 타선이 9회에만 안타 3개를 몰아쳐 대구구장이 동점 혹은 역전 분위기로 휩싸였다.
2사 2루 상황. 한 방이 필요했다. 류 감독은 홈런 타자가 아닌 김상수보다는 4번타자 박석민이 타석에 들어서는 게 낫다고 봤다. 그렇게 박석민은 극적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한지 약 5시간 후였다.
이때 분위기가 장관이었다. 3점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대구구장은 들끓기 시작했지만, 안 나오는 줄 알았던 박석민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니 팬들이 열광한 것이다. 사실 관중들도 스마트폰이나 실시간 SNS를 통해 박석민이 왜 결장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9회말 2아웃. 한방이면 동점, 그 보다 더 극적인 상황에 못볼 줄 알았던 4번타자를 보게 됐으니 말이다. 결과는 헛스윙 삼진, 동시에 경기종료 차임벨이 울렸다. 이를 두고 그는 “그냥 그랬습니다”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 한방 쳐줄 것 같은 타자로 성장하다
그는 “대타 타율이 0일 것이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원래 대타로 나서서 안타를 치기가 쉽지 않고, 대타로 나설 일도 없으니 이해가 된다. “입단 초창기에 20타석 정도 나섰는데 대부분 크게 지고 있을 때였다”고 회상한 박석민의 과거와 지금 입지는 천지차다. 당시엔 평범한 백업 선수였지만, 올 시즌엔 타율 0.303(10위) 21홈런(2위) 81타점(1위)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리그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상위 클래스다. 2008년 본격적으로 중심타선에 자리한 그는 올 시즌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거듭났다.
갑자기 급변한 경기 상황, 그리고 경기 출전 자체가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박석민에게 보낸 대구 팬들의 환호는 분명 특별했다. 그 환호는 그가 진정한 스타로 발돋움했다는 상징과도 같았다.
“그냥 그랬습니다”는 말은 환호해준 관중들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장타를 터트리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엷은 미소였다. 그래도 대구 팬들과 류중일 감독이 박석민에게 또 다시 기대를 걸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언제 나와도 한방 쳐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스타로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석민.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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