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선수들을 믿으면 안 된다.”
롯데 양승호 감독은 준플레이오프 내내 선수들의 기 살리기에 집중했다. 가을 축제이니 그라운드에서 신나게 뛰어 노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180도 돌변했다. 웨이팅 사인, 한 템포 빠른 과감한 투수 교체, 승부처 대타 기용 등은 양 감독이 지난해 플레이오프서 보여줬던 모습과는 확실히 달랐다. 1년 전 경험을 교훈삼아 SK와의 플레이오프 리벤지 매치를 일궈내겠다는 각오다.
▲ 너무 맡겨버리면 타자들이 혼란스럽다
양 감독은 기본적으로 선수들을 믿는 스타일이다. 작년 SK와의 플레이오프 때도 그랬고, 올 정규시즌서도 그랬다. 하지만, “너무 맡겨버리면 오히려 타자들이 혼란스럽다”는 게 양 감독의 깨달음이다. “상황에 따라 이것저것 지시를 하는 게 선수들의 마음이 편할 수 있다”라고 했다. 작전수행능력이나 플레이의 세밀함에서 아직은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은 롯데 타자들에게 상황에 따라 지시를 하면 오히려 맡겨뒀을 때보다 부담이 덜 간다는 뜻이다.
양 감독은 준플레이오프서 큰 타구 생산이 가능한 홍성흔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타자에게 볼카운트 2B와 3B 1S에서 웨이팅 사인을 냈다. 공을 하나 더 보면 선발투수의 투구를 하나라도 늘릴 수 있고, 그게 쌓이고 쌓여 선발 투수의 조기 강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양 감독의 이런 생각엔 불펜싸움에서 앞선다는 확신이 숨어 있었다. 실제 볼카운트 별 웨이팅 이후 롯데 타선이 두산에 주는 압박감은 대단했다.
롯데가 4차전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단연 구원으로 나온 니퍼트 공략 덕분이었다. 양 감독은 “용병들은 그런 상황에서 자존심을 앞세워서 직구로만 승부하는 경향이 있다. 니퍼트가 나왔을 때 타격 코치를 통해 직구에 포커스를 맞추라고 주문했다”라고 털어놨다. 직구에 초점을 맞춘 롯데 타선은 갑작스럽게 폭발하며 동점을 만들었다. 양 감독의 적극적인 주문이 뒷받침 된 결과다.
▲ 알아서 하는 야구의 중간 과정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현대는 야구를 ‘알아서 한다’라는 평가를 들었다. 당시 김재박 감독의 적극적인 작전 지시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특별한 작전 지시 없이도 선수들이 상황에 따라 알아서 번트와 작전 타이밍을 간파하는 데 도가 텄다. 투수 교체만 벤치에서 하면 별 다른 작전이 필요가 없었고, 심지어 작전이 없는 게 오히려 상대에 혼란을 주는 작전이 됐다.
롯데는 준플레이오프를 계기로 세밀한 야구에 눈을 떴다고는 하지만, 아직 동물적인 상황 판단 능력이나 작전수행능력에선 보완해야 게 많다. 양 감독이 “안 믿는다”라고 말을 하는 건 정말 선수들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큰 경기서 필요한 세밀한 야구로 가는 중간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당장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큰 경기서 흐름을 잡아오기가 쉽지 않다. 기다리다 타이밍을 놓쳐버린 뒤 흐름을 넘겨주면 어느새 단기전 패배가 다가올 뿐이다.
▲ 세밀함의 선두주자 SK에 어느정도 통할까
롯데의 플레이오프 상대 SK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세밀한 야구를 잘 한다고 알려져 있다. 작전수행능력에 상황에 따른 외야 시프트 수비, 선행주자의 진루나 득점을 막기 위한 50% 혹은 100% 내야수비 모두 국내에서 SK를 따라갈 팀은 아직 없다. 롯데로선 SK에 맞서기 위해 좀 더 세밀함의 깊이를 더할 필요가 있다. 양 감독도 “특히 수비를 보완해야 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준플레이오프 종료 후 단 3일간의 시간만 주어진 롯데로선 현실적으로 준플레이오프서 보여준 것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3일 휴식을 통해 체력과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다만, 마운드가 탄탄한 SK를 상대로 한 박자 더 빠른 교체로 상대 작전의 예봉을 꺾을 수 있다. 롯데의 플레이오프는 양 감독의 “안 믿는다”에 대한 벤치와 선수 호흡의 가능성과 한계를 또 한번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예리한 용병술을 선보인 양승호 감독(위). 플레이오프행에 즐거워하는 롯데 선수들(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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