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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이건 챔피언 결정전이었다.”
17일 부천체육관에서 만난 한 농구인이 기자에게 건넨 말이었다. 춘천 우리은행과 부천 하나외환전. 선두 우리은행은 이날 승리할 경우 2006년 겨울리그 이후 7년만의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기는 이미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하나외환이 승리했다. 그들은 우리은행만큼 승리가 간절했다.
계열사 농구대회 결승전을 마친 사원 대부분 응원에 나섰고, 김정태 회장이 직접 경기장을 찾아 응원을 한 상황. 선수들은 자신들의 안방에서 남의 팀이 우승 세레모니를 하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는 오기가 서려있었다. 계열사 직원들의 성원에도 보답해야 했다. 루즈볼에 잇달아 몸을 날리는 투지에서 챔피언결정전의 향기가 느껴졌다. 두 팀은 40분간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최선을 다했고, 하나외환이 웃었다.
조동기 감독은 “우리은행에 고춧가루를 뿌린 것 같아 위성우 감독에게 미안하다”라면서도 “홈에서 우리은행이 축배를 들게 할 수는 없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조 감독은 “우리도 이겨야 했다”라며 승리의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김 회장이 경기장에 뜨면 유독 승부욕이 고취됐던 하나외환. 이미 포스트시즌 좌절이 확정된 상황에서도 설렁설렁 경기에 임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조 감독은 “최하위는 안 된다. 반드시 5위로 끝내겠다”라고 했다. 하나외환과 동시에 경기를 했던 구리 KDB생명도 승리했다. 두 팀은 12승 21패로 공동 5위다. 잔여 경기서 모두 승리한 뒤 KDB생명의 결과에 따라 순위가 결정된다. 사실 큰 의미는 없다. 5위를 하든, 6위를 하든, 차기 시즌 신인드래프트 우선권은 5~6위팀이 추첨을 해서 결정한다. 그럼에도 기를 써서 최하위만큼은 면하겠다는 투지가 살아있었다.
그들의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프로라면 익히 당연한 모습이다. 결과에 관계없이 그들을 응원해준 팬들과 계열사 직원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 속엔 “팬과 관중이 곧 주인이다”라는 의식이 깔려있다. 김정은은 “동기부여도 안 되고,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라고 했으나 코트에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그게 바로 프로페셔널이다.
요즘 남자프로농구가 일부 팀들의 져주기 논란으로 시끌시끌하다. 일부러 6강 플레이오프를 탈락한 뒤 차기 시즌 대어급 신인을 얻고 싶은 마음에 질 낮은 경기가 속출하고 있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투자의 대가로 너무나도 소중한 오늘 1경기를 소홀히 했다. 그들은 팬들의 응원을 외면했다. 몇몇 의심이 되는 팀들이 최근 나란히 연패를 끊긴 했으나 여전히 팬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이건 챔피언결정전”이라던 농구인은 “남자농구팀들이 이 경기를 봤으면 좋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승리한다고 아무것도 얻는 것도 없고, 돌아온 건 포스트시즌 탈락이다. 그래도 하나외환은 프로의 자존심을 걸고 우리은행의 우승을 저지시켰다. KDB생명 역시 하나외환과 같은 처지인 상황에서 총력전에 나섰고 KB를 잡았다. 스스로 ‘프로의 품격’을 유지한, 당연하고 깨끗한 플레이였다.
최근 치열한 순위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여자프로농구는 남자프로농구보다 더 재미있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남자 팀들은 최근 여자 팀들의 순위 다툼을 보고 느껴볼 필요가 있다.
[하나외환 선수들. 사진 =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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