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트레이드 시장 풍토가 확실히 바뀌었다.
남의 팀에서 필요한 전력을 얻고 싶다면 제 살 깎아먹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트레이드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남의 자식이 탐이 났지만, 내줘야 할 자기 자식이 아까워서 사인 직전에 무산된 트레이드가 많았다. 단일리그의 특수성 속 부메랑 효과가 두려워서였다. 스토브리그에서도 극도로 트레이드를 꺼리는 통에 겨울이 더욱 차갑게 느껴졌었다.
▲ 잔잔한 트레이드에서 메가톤급 트레이드까지
이런 흐름은 지난해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시즌 도중 SK와 넥센이 최경철과 전유수를 바꿨다. 이어 KIA와 삼성이 김희걸과 조영훈을 맞트레이드 했고, 롯데와 두산도 김명성과 용덕한을 바꿨다. 넥센과 두산도 오재일과 이성열을 바꿨다. 스토브리그에도 트레이드가 줄을 이었다. 롯데와 한화가 송창현과 장성호를 바꿨고 넥센과 NC도 차화준, 임창민, 김태형을 서로 바꿨다.
삼성과 LG가 단행한 3대3 트레이드는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삼성이 현재윤, 김효남, 손주인을 LG에 보냈고 LG는 김태완, 정병곤, 노진용을 보냈다. 전자 라이벌 의식이 있는 두 구단은 1990년 LG 창단 후 최초로 맞트레이드를 성사했다. 삼성과 한화가 성사한 길태곤-이상훈 트레이드는 놀랄 일도 아니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트레이드에 포함된 선수의 급이 점점 높아졌다. 시즌 초반 넥센과 NC가 스토브리그에 이어 또 한번 대형 트레이드를 했다. 송신영이 친정 넥센으로 복귀했다. 신재영도 넥센으로 갔다. NC는 박정준, 이창섭, 지석훈을 데려왔다. 이어 곧바로 LG와 넥센이 서동욱과 최경철을 바꿨다. 그리고 6일 KIA와 SK의 김상현, 진해수, 송은범, 신승현 2대2 빅딜이 터졌다. 개막 1달 조금 지난 시점에서 무려 트레이드 3건이 터진 것. MVP 출신 김상현, SK 6년 연속 한국시리즈 행의 일등공신 송은범의 맞트레이드는 프로야구 32년 역사를 통틀어 톱5에 들만한 대형 거래로 남을 전망이다.
▲ 트레이드 시장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2011년 시즌 도중 성사된 트레이드는 단 2건이었다. 2010년에도 5건. 2009년엔 12월 30일 넥센발 메가 트레이드가 있었으나 특수한 트레이드였다는 걸 감안하면 시즌 중 통상적인 거래는 단 3건이었다. 지난해부터 서서히 트레이드 흐름이 바뀌더니 결국 김상현과 송은범의 맞트레이드라는 엄청난 거래로 이어졌다.
한 야구관계자는 “지난해 한, 두 팀씩 트레이드 물꼬를 트면서 요즘은 대부분 팀이 눈치보지 않고 과감하게 승부수를 띄운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박수를 보냈다. 트레이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바뀌었다는 의미다. 김상현과 송은범은 당장 두 팀의 분위기와 순위다툼 지형도를 바꿀 수 있는 선수들. 1군 기회가 최대한 보장될 것이고, 어떻게든 손익계산이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이젠 이런 계산기 두드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설령 팀 입장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선수 개개인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새 팀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으면서 성적도 더 잘 나오고 기량이 향상되면 프로야구 시장 전체적으로는 당연히 이득이다. 더 많은 선수가 스타로 도약할 기회를 얻고 팀내 경쟁이 심해진다. 리그의 건강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감독들과 구단 실무자들이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선 올 시즌 중으로 추가 빅딜이 나오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 프로야구는 트레이드 스토리텔링이 반갑다
프로야구는 스토리를 먹고 산다. 이야깃거리가 많아야 팬들에게 입소문을 탈 수 있다. 팬들에게 입소문을 타야 관심을 끌 수 있다. 프로야구는 트레이드가 뜸했던 지난 몇 년간 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창구 한 가지를 잃어버린 채 살아갔다. 예를 들어 기록 시스템이 발달된 메이저리그는 트레이드가 된 선수들간의 친정팀 상대 통산기록도 빠지지 않고 홍보한다. 팬들은 다시 한번 트레이드 사실과 역사를 자각한다. 그러면서 더욱 빠져든다. 이는 그동안 국내 프로야구 산업 자체가 좀 더 풍요로워질 기회를 놓쳤었다는 의미다.
스토리텔링엔 꼭 모두 웃을 수 있는 내용만 있는 건 아니다. 유니폼을 바꿔 입은 선수들의 친정팀에 대한 서운함. 이적 과정 속에서의 트레이드 당사자, 팀들간의 진통까지도 훗날 추억거리가 될 수 있다.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프로야구 산업의 주체는 결국 팬들이다. 이런 스토리텔링을 인위적으로 없앨 이유는 없다. 그 자체로 역사가 된다. 역사가 모여 전통이 된다. 전통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동력이 된다. 이런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할 때, 프로야구 산업 발전의 토양 한 축이 만들어진다.
이미 팬들은 스토리텔링의 강렬함을 잘 안다. 2009년 4월 무명 김상현이 LG에서 KIA로 이적했을 때 KIA가 친정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팬도 많았다. 그가 한을 품고 홈런, 타점왕에 이어 정규시즌 MVP까지 거머쥔 신데렐라 스토리에 팬들이 열광했다. 이는 야구를 더욱 매력적인 스포츠로 만들어준 극적인 요소였다. 말 한 마디보다 이야기가 팬들 뇌리에 더욱 또렷하게 남는 법이다.
이번엔 어떨까. 김상현과 송은범의 일거수일투족은 올 시즌 내내 취재진의 레이더망에 잡힐 전망이다. 굳이 두 사람에게만 기대할 이유도 없다. 위에 언급한 트레이드 이적생들이 펄펄 날고, 팀들의 희비가 엇갈린다면 그 자체로 프로야구를 흥미있게 하고, 살찌우는 요소가 될 것이다. 트레이드는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라도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스토리텔링은 프로야구의 살아숨쉬는 생명체다.
[2009년 KIA 시절의 김상현(위), SK 시절의 송은범(가운데), 왼쪽부터 넥센에서 NC로 이적한 이창섭, 지석훈, 박정준(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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