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쿨가이다.
국내야구 역대 최강의 외국인타자였던 펠릭스 호세가 25일 롯데 선수단을 찾아 회포를 풀었다. 호세는 21일 방한했다. 이미 부산지역 아마추어 선수들과 만남을 가졌다. 부산에 대한 남다른 추억이 있는 그는 한국 음식도 맛보고, 롯데 구단의 챔피언스데이 행사에 참가해 시구도 하고 해설도 할 계획이다.
호세는 1999년 36홈런 122타점으로 국내 무대를 평정하며 롯데를 한국시리즈에 올려놓았다. 2001년에도 36홈런 102타점으로 제 몫을 해냈다. 2006년과 2007년엔 롯데의 기대치를 100%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화끈한 한 방과 시원스러운 성격이 부산 팬들과 잘 맞았다. 성적도 좋았지만, 잊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지금도 호세를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치면 연관 검색어에 뜨는 ‘호세-배영수 사건’이다.
▲ 쿨가이 호세·배영수, 이젠 12년전 추억
2001년 9월 18일 마산 롯데-삼성전. 호세는 삼성 선발투수 배영수가 위협구를 던진다고 느꼈다. 호세는 예민했다. 1루에 출루한 상황. 배영수가 후속타자 훌리오 얀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지자 1루에서 그대로 마운드에 돌진해 배영수의 얼굴을 때렸다. 이후 두 팀 선수단은 즉각 벤치클리어링을 벌였다. 선수들은 화난 호세와 배영수를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호세는 2006년 신승현(당시 SK)과의 신경전도 인상 깊었으나 배영수와의 사건은 1루에서 마운드로 돌진한 특수한 케이스라는 점에서 두고두고 야구팬들에게 회자가 될 것 같다.
호세는 25일 “어떻게 배영수를 잊을 수 있겠나. 배영수가 잘 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라고 웃었다. 배영수도 이미 반응을 내놓았다. 지난 20일 인천 SK전을 앞두고 “얀에게 던진 공은 공이 손에서 빠진 것이었다. 생생하게 다 기억난다. 김한수 코치님과 김재걸 코치님이 나를 적극적으로 막아줬다. 그런데 호세가 힘이 정말 세서 다 뿌리쳤다”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재미있는 건 두 사람 모두 이젠 그날 일을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 호세는 “투수는 좋은 타자에게 어렵게 승부할 수밖에 없다. 나도 그에 따른 행동을 취했을 뿐”이라며 “특별한 감정은 없다”고 웃었다. 배영수도 “호세하고 악수 한번 해야겠네”라고 웃으면서 “다 지난 일이다. 사직에 있으니 볼 수 없어 아쉽다”라고 했다. 호세가 방한하는 기간 롯데와 삼성의 대결은 없다. 롯데 구단은 삼성전에 맞춰 호세를 초청하려고 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으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무산됐다.
▲ 열 받았다? 사실은 팀 위한 비즈니스
벤치클리어링은 빈볼로 야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는 빈볼을 주고 받다 벤치클리어링을 일으킬 경우 그 여파가 다음 맞대결까지 넘어간다는 말이 있다. 메이저리그에선 다음 시즌까지 보복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지난 12일 LA 다저스와 애리조나가 빈볼 신경전에 이어 격렬한 벤치클리어링을 벌였다. 양팀 감독과 코치까지 몸싸움에 얽혀 화제를 모았다. 두 팀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 함께 묶여있어 맞대결이 많이 남아있다. 벌써부터 보복에 이은 추가 신경전이 우려된다는 말도 나온다.
벤치클리어링을 통해 몸싸움을 벌인 당사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개인적으로 화가 나고 서운해서 그 이후에도 감정이 좋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일전에 국내 몇몇 선수에게 물어보니 꼭 그렇지도 않다고 했다. 모 지방구단 선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나. 나중에 다시 만나도 기분이 안 좋은 선수나 상대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라면서도 “벤치클리어링은 그냥 벤치클리어링이다. 팀의 일원이기 때문에 액션을 보여줘야 했다”라고 했다.
중요한 코멘트다. 벤치클리어링이 감정이 격해져서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팀과 팀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호세가 “그에 따른 행동을 취했을 뿐”이라고 말한 걸 비슷한 뉘앙스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위협구를 주고 받는 와중에 꼬리를 내리면 승부 흐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단 몸싸움이 생기면 밀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 프로 대 프로로서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 벤치클리어링은 벤치클리어링, 오해하지 말자
벤치클리어링에 이은 신경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말리는 사람이 더 많다. 또 일단 사건이 종료되고 그날 경기가 끝나면 해당 선수, 팀끼리 쌓인 좋지 않은 감정을 곧바로 털어내는 경우가 많다. 국내엔 대부분 야구선수가 학연, 지연으로 얽혀있다. 경기 후 전화를 통해 서로 미안함을 표시하고 사과를 받아주는 편이다. 넥센과 삼성의 6일 벤치클리어링 이후 두 팀이 특별히 앙숙이 됐다는 정황은 없다. 때문에 메이저리그처럼 빈볼 신경전이 길어지지 않는다는 해석도 있다.
메이저리그는 선수들끼리 연줄에 얽힐 일이 없다. 선수들은 모두 개인주의 사고다. 1년에 몇 차례 만나지도 않는 상대와는 몇 년간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국내야구처럼 사건 이후 당연히 당사자들끼리 사과하지도 않는다. 그 조차도 개인, 혹은 팀간의 신경전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다저스와 애리조나 몸싸움 이후 두 팀이 징계 수위에 불만을 품었다는 소식은 있어도 화해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벤치클리어링을 대하는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배영수와 호세는 사건 이후 따로 유감을 표하진 않았다고 한다. 서로 의사소통도 안 되고 외국인선수 호세는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도 않다. 호세와 배영수도 당시 사건을 일종의 비즈니스로 기억하고 있었다. 12년 전 그날. 이젠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일이 됐다. 그러고 보면 호세와 배영수는 쿨가이다.
[호세·배영수 난투극(위), 다저스-애리조나 난투극(중간), 삼성-넥센 벤치클리어링(아래), 사진 = 삼성 라이온즈 제공, gettyimages/멀티비츠,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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