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애버리지가 있으니까요.”
야구에서 애버리지(average)는 타율을 의미한다. 타격순위를 쭉 살펴보면, 그 타자의 올 시즌이 오롯이 묻어있다. 알고보면 애버리지의 기본적인 의미가 평균, 보통이다. 야구는 고도의 테크닉을 수반하는 스포츠. 애버리지를 보면 선수, 팀이 갖고 있는 원래의 실력 혹은 수준을 알 수 있다. 긴 페넌트레이스 128경기를 치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변곡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결국 ‘평균’으로 수렴한다. 현장에선 애버리지를 꼭 타자의 타율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 애버리지의 다양한 의미
야구를 보면 그날 유독 타격감이 좋지 않은 타자에게 경기 막판 결정적 찬스가 걸릴 때가 있다. 이때 경기를 중계하는 해설위원이 흥미로운 말을 한다. “오늘 안타를 하나도 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쯤 나올 때가 됐죠.” 해설위원의 말대로 그 선수가 안타를 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애버리지가 높은 선수일수록 그 상황에서 안타를 치는 케이스를 자주 볼 수 있다.
아무리 강한 타선이라도 특정투수에게 꼭 맥을 추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타자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희한하게 타이밍이 안 맞는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 투수를 지도하는 코치에게 물어보면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이제까지 잘 막았기 때문에 오늘 한번쯤은 공략 당할 때도 됐다.” 실제 애버리지가 높은 팀 타선일수록 천적으로 군림한 투수를 시즌이 끝나기 전 최소 한번은 너끈하게 공략한다.
이런 케이스에선 천적 투수가 지닌 애버리지도 중요하다. 야구인들이 보는 그 투수의 애버리지가 높다면 천적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애버리지가 높지 않은 투수가 애버리지가 높은 타선에 천적 관계를 오래 끌고 가는 건 생각보다 쉽진 않다. 지도자들은 이를 두고 “결국 애버리지를 따라서 가는 것”이라고 한다.
마찬가지 의미. 시즌 초반 특정 팀을 상대로 부진했던 팀이 후반기엔 상대전적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경우가 생긴다. 삼성이 시즌 초반 크게 눌렸던 넥센에 후반기 선전으로 7승1무8패로 맞대결을 마쳤다. 넥센은 시즌 초반 눌렸던 SK에 6승1무8패로 많이 따라갔다. 올 시즌 삼성이 넥센보다, 넥센이 SK보다 애버리지가 떨어지는 팀이 결코 아니다.
128경기는 긴 여정이다. 모든 선수는 크고 작은 그래프를 그린다. 흐름이 좋을 때가 있고, 좋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 시즌을 마친 뒤엔 결국 통상적인 애버리지가 높은 선수가 각종 지표 상위권을 점령하는 경우가 많다. 흐름이 파도를 치면서 애버리지를 찾아간다. 팀들도 연패 뒤 연승, 연승 뒤 연패를 거치면서 애버리지를 찾아간다. 애버리지가 낮은 팀이 순위표 상단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 애버리지를 찾아간 베테랑들과 2012년 삼성 사례
애버리지를 찾아간 사례. 삼성 배영수를 꼽을 수 있다. 배영수는 올 시즌 14승4패를 기록 중이다. 그는 3월 30일 두산과의 개막전서 만루홈런만 2개를 맞으며 무너졌다. 하지만, 이후 점점 성적을 끌어올리더니 14승으로 다승 부문 단독 선두다. MVP에 선정됐던 2004년에 이어 9년만의 다승왕 복귀를 바라본다. 평균자책점도 4.53이다. 개막전 직후 그의 평균자책점은 19.64였다.
물론 올해 배영수가 타선 도움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수도권 구단 한 투수코치는 “애버리지가 낮은 투수였다면 개막전 만루홈런 2방 충격을 극복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배영수는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베테랑이다. ‘개만두’만 아니었다면, 배영수의 평균자책점은 더 내려갔을 것이다. 시즌 막판이 되니 애버리지를 찾아간 대표적 케이스다.
두산 홍성흔도 비슷한 케이스. 올 시즌 친정팀에 복귀한 그는 출발이 썩 좋지 않았다. 시즌 초반 심판 판정에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그만큼 친정에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타율이 2할대 중반에서 24일 현재 0.297까지 올라왔다. 뜨거웠던 8월엔 3할대로 올라갔다가 요즘 조금 떨어졌지만, 14홈런 66타점도 나쁘지 않다. 전체적인 사이클을 보면 홍성흔에게 걸맞은 애버리지를 찾아간다고 보면 된다.
2012년 삼성도 흥미로웠다. 당시 삼성은 4월 7승 10패로 부진하더니 5월 초 7위까지 추락했다. 5월 마지막 날에서야 5할승률을 찍었다. 부상자가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투타밸런스가 유독 맞지 않았다. 하지만, 6월 이후 무섭게 치고 오르면서 결국 8~9월엔 선두를 독주했다. 최강전력에 걸맞은 애버리지의 회복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엔 결과적으로 작년보다도 더 고전 중이다. 정현욱, 권오준의 이탈과 부상자 속출로 객관적인 애버리지가 떨어진 결과다. 물론 최근 6연승 초상승세는 그동안 축적된 애버리지는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애버리지도 변한다, LG-넥센-박병호 사례
애버리지가 변할 수도 있다. 야구인들에게 물어보면 “한 시즌만 봐서도 안 된다. 최근 몇 년간의 성적을 보면 애버리지가 올라간 선수와 팀이 있다”라고 했다. 대표적 케이스가 넥센 박병호다. 박병호는 2005년 LG에서 데뷔한 뒤 2011년 넥센으로 트레이드 되기 전까지 애버리지가 굉장히 낮았다. 그러나 지난해 타율 0.290 31홈런 105타점을 기록했다. 올해는 타율 0.318 33홈런 105타점으로 작년보다 더 좋다. 애버리지가 낮은 선수도 한 시즌은 폭발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박병호는 두 시즌 연속 정상급 성적이다. 애버리지가 올라갔다고 보면 될 것 같다.
LG와 넥센도 흥미롭다. LG는 2002년 한국시리즈 이후 암흑기를 보내다 11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했다. 넥센도 2008년 창단 후 첫 포스트시즌 진출이 눈 앞이다. 그동안 두 팀의 애버리지는 5~7위권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엔 당당히 포스트시즌 진출 그 이상을 노리는 팀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수 차례 애버리지를 높이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다가 올 시즌 드디어 한 단계 올라섰다. 반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나섰다가 올 시즌 전력약화로 포스트시즌 탈락이 임박한 롯데, 2009년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우승 이후 이렇다 할 호성적을 거두지 못한 KIA는 최근 애버리지가 급격히 떨어진 대표적인 팀들이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냉정하게 해석했다. “넥센도, 박병호도 지금은 클래스(애버리지)를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무슨 의미일까. 넥센과 박병호가 올해 찍고 있는 성적만으로 애버리지가 올라갔다고 단정하긴 이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1~2년 바짝 애버리지를 끌어올려도, 이듬해 부진한 성적을 올리면 애버리지는 다시 깎이는 것이니 누구나 방심은 금물이다. 프로 세계의 진리이기도 하다.
[위에서부터 LG 선수들-넥센 선수들-배영수-박병호.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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