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예전보다 번트 성공하기가 어렵다.”
극심한 타고투저 시대. 타자들이 투수들을 힘과 테크닉에서 확실하게 누른다. 요즘 3~5점 차이는 큰 점수차가 아니라 박빙 승부다. 때문에 경기 후반 정말 숨막히는 1~2점차 승부가 벌어지는 경우가 잦다. 이때 감독들은 성향에 따라 번트 작전을 지시한다. 단 한 차례의 번트 결과가 승패를 좌우한다.
대량득점이 용이해진 시대이지만, 번트 작전의 가치가 떨어진 건 아니다. 오히려 번트를 잘 활용하면 대량득점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번트를 잘 대기로 유명한 SK 조동화와 선수시절 누구보다도 번트를 잘 댔던 삼성 류중일 감독은 약속이나 한 듯 “번트를 대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라고 했다. 번트를 저지하려는 작전과 움직임이 조직화됐기 때문이다.
▲ 구종 다변화
조동화는 지난 6일 인천 삼성전을 앞두고 “예전엔 번트를 성공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번트 대기가 어려워졌다”라고 했다. 조동화에 따르면, 예전엔 보내기 번트를 저지하기 위해 투수가 높은 공 혹은 몸쪽 공을 던지거나 1루수 혹은 3루수가 전진 대시하는 수준에 그쳤다. 타자는 일단 나쁜 공을 버리고 가운데로 들어오는 스트라이크만 노렸다는 회상.
그러나 최근 투수들이 던질 수 있는 공이 많아졌다. 특히 타자 입장에서 직구처럼 날아오다 홈플레이트에서 살짝 변하는 컷 패스트볼, 싱커 등을 번트로 연결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류중일 감독은 “보통 집중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투수들이 다양한 구질을 보유하면서 타자가 보내기 번트를 성공하는 게 부담스러워졌다”라고 했다. 류 감독은 선수들이 번트에 부담을 가질까봐 번트 작전을 그리 많이 구사하진 않는다.
▲ 보내기 번트, 왼손타자에게 유리하다
보통 무사 1루, 무사 1,2루 상황에서 보내기 번트를 댄다. 그런데 무사 1루에선 1루 방향으로, 무사 1,2루에선 3루 방향으로 대는 게 보내기 번트의 정석이다. 무사 1루에서 3루쪽으로 번트를 댈 경우 전진대시한 3루수가 2루를 겨냥할 확률이 높다. 반대로 무사 1,3루서 1루쪽으로 번트를 댈 경우 전진대시한 1루수가 3루를 겨냥할 확률이 높다. 공을 잡고 난 뒤의 자세가 선행주자를 잡는 데 용이해진다.
류 감독에 따르면, 왼손 타자가 1루쪽으로, 오른손 타자가 3루쪽으로 번트를 대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류 감독은 “몸쪽으로 공이 들어올 때 그걸 꺾어서 보내는 게 쉽지 않다”라고 했다. 이 기술이 좋지 않은 타자들이 보통 번트를 허공에 띄우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주자 진루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조동화는 “오른손타자가 3루쪽으로 번트를 댈 때 3루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3루수가 일부러 오른손타자가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빙 둘러서 전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때 오른손타자가 번트 타구의 속도를 줄이지 못하면 번트 실패 확률이 높아진다.
류 감독은 “보내기 번트는 왼손타자가 조금 유리하다”라고 했다. 무사 1루보다 무사 1,2루 때 주자들을 보내기가 더 어렵다. 수비수들이 시프트를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무사 1루 상황에선 수비시프트가 느슨할 경우 3루쪽으로 번트를 대더라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타자들에겐 상대적으로 무사 1,2루 상황에서 3루쪽으로 대는 번트가 부담스럽다. 왼손 타자 입장에선 그대로 툭 밀면 3루쪽으로 타구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금 유리하다는 것. 3루수의 움직임도 훤히 보인다. 조동화는 “보내기 번트는 어차피 내가 죽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댄다”라고 했다.
▲ 기습번트에도 요령이 있다
왼손타자가 몸쪽 타구를 잘 꺾어서 1루쪽으로 번트를 잘 대면 1루에서 세이프될 가능성도 높다. 조동화가 번트 달인으로 인정받는 건 보내기 번트를 착실하게 잘 대면서도 기습번트로 1루에서 살 확률도 높기 때문이다. 조동화는 “1,2간으로 번트를 댈 때는 투수 글러브만 넘기자는 마음이다”라고 했다. 또 하나. 조동화는 “1루수는 3루수보다 압박의 강도가 낮다. 거포가 많기 때문에 재빨리 전진대시하는 게 쉽지 않은 선수가 있다”라고 했다. 조동화는 타구대처의 기민함이 살짝 떨어지는 1루수가 있을 때 1루쪽 기습번트를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그라운드 사정도 중요하다. 조동화는 “일단 타구 속도를 죽이는 게 중요하다. 타구를 그라운드로 보내지 않고 흙 부분에 살짝 떨어뜨린다는 마음으로 댄다”라고 했다. 천연잔디보다 공이 잘 튀는 인조잔디 구장에서도 요령이 있다. 조동화는 “인조잔디 구장에선 바운드를 크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번트를 대야 한다. 불규칙 바운드가 일어나면 1루에서 살 확률이 높아진다”라고 했다. 실제 기습번트 성공은 야수가 불규칙 바운드 타구를 수습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 전준호와 정수빈, 자세가 좋다
조동화와 류 감독에게 번트 잘 대는 선수를 물었더니 “정수빈(두산)”이라는 대답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조동화는 “나도 번트를 좀 댄다는 말을 듣지만, 수빈이가 나보다 더 잘 댄다. 내가 인정하는 선수다. 자세가 좋다”라고 했다. 류 감독 역시 마찬가지 의견. 류 감독은 “번트할 때 몸이 홈 플레이트보다 뒤에 있으면 안 된다. 중심이 살짝 앞에 있어야 한다. 헤드가 홈 플레이트 앞으로 나와야 한다”라고 했다. 이 자세에 가장 충실한 선수가 정수빈이라는 것.
류 감독은 “그렇다고 해서 몸을 너무 앞으로 쏠리게 해서도 안 된다”라고 했다. 홈 플레이트에서 변하는 공을 번트로 연결하기 위해선 공을 끝까지 보는 자세도 중요하기 때문. 류 감독은 “사실 번트는 전준호 코치(NC)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선수 시절에 번트가 기가 막혔다”라고 회상했다. 류 감독은 “이대형(KIA)도 기습번트를 잘 댄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류 감독은 평상시에 번트 연습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 감독은 “오른손타자의 경우 오른발을 들게 한 뒤 번트 연습을 시킨다. 몸의 중심을 잘 잡기 위해서”라고 했다. 왼손타자의 경우 왼발을 들고 연습을 한다. 어떤 타구에도 몸의 중심을 잘 잡아야 번트를 잘 댈 수 있다는 게 류 감독의 지론.
조동화 역시 번트 연구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는 “작년에 2할6푼대(실제 0.256)였다. 보내기 번트만 잘 대면 타율이 더 올라갔을 것”이라고 했다. 희생번트는 타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타율이 깎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패할 경우 여지 없이 타율이 깎인다. 희생번트 자체가 자신이 아닌 주자를 위한 공격이지만, 성공할 경우 자신에게도 결국 유리하다는 의미다.
[위에서부터 조동화, 문우람, 문선재, 정수빈.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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