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극심한 타고투저다.
9일 현재 리그 타율은 0.282, 리그 평균자책점은 4.91이다. 역대 리그 타율이 가장 높았던 1999년(0.276)을 뛰어넘는다. 리그 평균자책점도 1999년(4.98)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올 시즌은 사상 최고의 타고투저 시즌이었던 1999년과 맞먹는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이다. 두 자릿수 득점은 기본이고 경기 후반 역전극과 연장전 승부도 많다. 4시간을 넘어가는 경기가 허다하다.
극심한 타고투저를 놓고 여러 분석이 뒤따르고 있다. 외국인타자의 가세, 타자들의 수준 업그레이드와 투수들의 한계, 특급 투수들의 해외 진출, 투수 헤드샷 퇴장 부담으로 인한 몸쪽 승부의 어려움, FA 대박을 노리는 타자들의 엄청난 집중력 등이 제기된다. 중요한 건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다. 야구 팬들과 현장 야구인의 시선은 미묘하게 엇갈린다.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의 차원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 재미있는 야구인가 질 떨어지는 야구인가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과연 극도의 타고투저 야구가 재미있는 야구일까. 아니면 질 떨어지는 야구일까. 팬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구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작년보다 올 시즌 관중 동원 사정이 조금 좋아졌다고 한다. 2년만의 700만 관중 회복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일단 화끈한 타격전이 많은 팬을 야구장으로 끌어 모은 건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관중 입장에선 경기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화끈한 승부가 흥미롭다.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화끈한 타격전의 이면 속에서 야구의 품질을 논하는 사람들이 있다. NC는 7일 목동 넥센전서 24-5로 대승했다. 그것도 6회까지만 24점. 김 감독은 8일 경기를 앞두고 7일 경기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했다. 선수들의 화끈한 타격에 대해 지나치게 칭찬을 하면 곧 대량 실점한 넥센 마운드에 대한 실례라는 의미. 김 감독은 매우 조심스럽게 “점수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도 좋지는 않다. 야구에 맞는, 야구다운 점수가 나와야 한다”라고 했다.
점수가 많이 나오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투수의 제구난조로 인한 볼넷, 야수들의 실책성 플레이가 분명히 섞여있다. 여기에 가끔 심판의 애매한 판정이 나오면 더욱 공격 시간이 길어진다. 결국 화끈한 타격으로 마무리 되지만, 그 과정을 살펴보면 질 떨어지는 플레이가 섞인다는 게 야구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사실 야구를 깊게 바라보는 팬들은 일찌감치 이런 점을 걱정했다.
▲ 마운드 운영의 어려움, 수수방관인가 현실론인가
확실한 건 투수들이 타자들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투수들은 예전에 비해 다양한 구질로 중무장했지만, 타자들이 결국 극복해낸다. 이러면서 팀내에서 A급 투수와 B급 투수의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 A급 투수들의 경우 겨우 타자들을 요리하지만, B급 투수들은 그럴 역량이 없다. 결국 시즌을 운영하는 감독들의 경우 A급 투수들에게 더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재 9개구단은 대부분 11~12인으로 투수 엔트리를 구성했다. 선발, 주요 불펜 보직 투수들과 소위 말하는 추격조 투수들의 기량 차는 예전보다 더 커졌다는 게 야구인들의 지적이다.
경기 초반부터 타격전이 벌어질 경우 때로는 승부가 일찍 갈릴 수가 있다. 이럴 때 감독들은 고민에 빠진다. “좀 더 좋은 투수로 바꿔서 승부를 걸까?” “아니면 그대로 승부를 포기해야 할까?” 7일 목동 넥센-NC전이 대표적 사례. 넥센은 당시 5-24로 대패했다. 넥센은 1회부터 6회까지 6,3,5,2,6,2점을 실점했다. 1회부터 2-6. 2회 종료 이후엔 2-9였다. 사실상 승부는 2회에 끝났다. 그러자 넥센 염경엽 감독은 선발 문성현을 빼고 3회에 윤영삼을 마운드에 올렸다.
윤영삼도 NC 타선에 난타를 당했다. 4이닝동안 12점을 내줬다. 염 감독은 이를 지켜만 봤다. 3회~6회가 진행되면서 점수 차는 하염없이 벌어졌다. 이를 두고 일부 팬들은 불편한 시선을 보냈다. “왜 프로가 경기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느냐?”였다. 팬들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팬들 입장에선 감독이 윤영삼을 투입한 뒤 승부에 대해 수수방관한 것처럼 보여졌을 수 있다. 팬들은 맥 없이 무너지는 게임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현장에서도 나름의 사정은 있다. 그 경기는 사실상 승부가 일찌감치 넘어간 게임. 넥센이 조상우 한현희 손승락 등 필승조를 넣으면 추가실점을 막을 순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뒤집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필승조를 투입할 경우 경기는 경기대로 지고, 마운드 소모만 컸을 수 있었다.
염 감독은 8일 목동 NC전을 앞두고 “팬들에겐 정말 죄송하다. 하지만, 감독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팀 내에서도 투수들의 기량 차가 크다. 정예투수는 한정됐다. 당연히 장기레이스에서 효율적인 활용을 할 필요가 있다. NC 김경문 감독조차도 “승산 낮고 뒤진 게임서 좋은 투수들을 소모하긴 어렵다”라고 염 감독의 결정을 존중했다. 당장 1경기가 아닌 128경기를 바라봐야 하는 감독 입장과 팬들의 입장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
▲ 해결책은 없나
팬들은 확실히 타고투저를 좋아한다. 그러나 타고투저만큼 투고타저 또한 흥미롭다. 야구의 진수는 투수전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다. 과거 많은 관중을 모았던 시즌을 살펴보면 투고타저 시즌도 많았다. 결국 타고투저 속의 맹점을 보완하면서도 관중들을 만족시킬 수도 있다는 의미. 지금의 타격전이 약간 수그러들더라도 야구는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다. 야구인들이 지적하는 질 낮은 플레이가 줄어들면 더더욱 그렇다.
결국 투수들의 기량이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팬들에게 새로운 흥미를 안겨줄 수 있다. 감독들의 마운드 운영에서 나오는 팬들의 불편한 시선 역시 줄어들 수 있다. SK 김광현은 “타고투저 속에서도 평균자책점 1점대, 2점대를 찍는 투수들이 있지 않나. 투수들이 좀 더 잘 던지면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과거 국내야구는 타고투저와 투고타저 현상이 번갈아 일어나면서 발전해왔다. 결국 이번에도 투수들과 지도자들이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단기간에 투수들의 기량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한편으로 한 투수코치는 “투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고려해봐야 한다”라고 했다. 극심한 타고투저. 한국야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잠실구장(위, 가운데), 목동구장(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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