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이다.
삼성이 12일 목동 넥센전서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했다. 선발포수 이지영과 백업포수 이흥련이 모두 경기 중 대타로 교체됐다. 그러자 최형우가 8회 포수 마스크를 썼다. 2013년 8월 23일 두산전 이후 10개월만의 포수 출전. 포수 최형우는 백정현, 심창민과 호흡을 맞춰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삼성은 넥센에 패배했으나 포수 최형우 가능성을 확인한 건 수확이었다. 류중일 감독이 평소 강조한 ‘멀티포지션’이 부각된 사례이기 때문.
류중일 감독은 야수가 멀티포지션을 소화하는 걸 선호한다. 그럴 경우 경기 중반 이후 박빙승부 때 활용폭이 넓어진다. 또한, 류 감독은 이날 경기처럼 비상상황서 긴급하게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류 감독은 1군 엔트리에 포함되는 포수 2~3명이 경기 중 모두 교체되거나 부상으로 뛸 수 없을 때 활용 가능한 카드를 일찌감치 준비해왔다. 만약과 최악을 가정한 삼성의 꼼꼼한 준비가 드러나는 대목.
▲ 포수대체 1순위 최형우 2순위 박석민
삼성 포수대체 1순위는 최형우. 그는 2002년 2차 6순위를 통해 삼성에 입단했다. 최형우는 입단 당시 포수였다. 전주고 시절에도 포수를 했다.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았다. 최형우는 2005년까지 1군서 단 6경기에 나선 뒤 방출됐다. 경찰청에 입대한 최형우는 본격적으로 외야수로 변신했다. 2008년 삼성에 재입단한 뒤 외야수로 승승장구했다.
그래도 류 감독은 2011년 부임 이후 틈틈이 최형우에게 포수 훈련을 시켰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게 했다. 최형우는 포수 훈련을 받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이날 실전서도 백정현, 심창민의 공을 척척 받아냈다. 볼배합이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이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대부분 변화구를 고루 뿌렸다. 최형우를 믿고 투구했다. 최형우의 블로킹은 꽤 안정적이었다.
류 감독 역시 “포수로서 합격점이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오면 포수로 쓰겠다”라고 했다. 물론 최형우가 평상시에도 1군 백업 정도로 마스크를 쓸 수준은 아니다. 4번타자에게 지나친 수비부담을 안기는 것도 쉽지 않다. 때문에 비상 상황이 아니라면 최형우가 마스크를 쓸 일은 없을 것이다. 류 감독으로선 최형우가 실전서 1이닝 정도 마스크를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듬직하다.
류 감독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최형우마저 포수로 나설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해 박석민에게도 종종 포수 훈련을 시킨다. 박석민은 체격이 크지만, 대단히 날렵하다. 3루수로서 경쟁력이 있는 이유 역시 강습타구를 잘 걷어내고 어깨가 강하기 때문. 다만, 최형우보다는 아무래도 기본기가 약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비상상황이 아니라면 실제로 포수로 경기에 나설 가능성은 극히 낮다.
▲ 대체 포수의 긍정효과
대체 포수가 있다는 건 선수단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전문 지명타자로 뛰고 있지만, 2000년대 후반까지 포수로 활동했던 두산 홍성흔은 일전에 “오랜만에 공을 받아주니까 좋더라”고 했다. 당시 두산은 광주 원정 중이었는데, 경기 중 주전포수 양의지가 부상을 당했고 백업 김재환이 교체되면서 불펜에서 공을 받아줄 포수가 없었다.
보통 불펜에서 몸을 푸는 구원투수의 공은 전문 불펜포수가 받아준다. 이닝 교대시 투수의 연습투구를 받아주는 역할 역시 전문 불펜포수 혹은 저연차 백업포수가 맡는다. 그런데 당시 두산의 사정이 여의치 않자 홍성흔이 기꺼이 나서서 투수들의 공을 받아줬다고 한다. 홍성흔은 지명타자라서 팀이 수비에 임할 땐 어차피 덕아웃에 앉아있는다.
그런 홍성흔이 오랜만에 캐칭을 하면서 팀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후문. 홍성흔은 심지어 “공을 받아주고 나서 타석에 들어서니까 몸이 훨씬 가벼웠다”라고 했다. 단순히 불펜에서 투수의 공을 받는 것도 적지 않은 체력이 소모된다. 홍성흔은 갑작스럽게 땀을 뺀 뒤 타석에 들어서자 몸이 가벼워지면서 타격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팀에도 보탬이 되고 분위기도 좋아진 것.
최형우와 박석민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아주 가끔씩 마스크를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포수들과 투수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비상사태 대비는 물론이고, 팀 케미스트리와 일체감을 끌어올리는 데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최형우에게 마음껏 변화구를 뿌린 심창민도 이닝 종료 후 입가에 알 듯 말듯한 미소가 번졌다. 이런 사소한 부분도 삼성의 경쟁력이다.
[포수를 한 최형우. 사진 = 삼성라이온즈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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