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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배우에게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깊이가 있다.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느낌이라는 게 있다. 이를 관객들에게, 혹은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느냐가 그 배우, 나아가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뮤지컬배우 최현선은 참 깊이가 있는 배우다. 참 편하게 말하는데 그 안에 자기 중심이 있다.
그렇다고 무겁고 어렵게 말하지도 않는다. 자기만의 고집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배우로서 가지고 가야할 부분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잡고 무대에 오른다. 그래서일까.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배우들은 최현선의 메리에 대해 '따뜻한 메리'라고 입을 모은다.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최현선의 따뜻함이 또 다른 메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1926년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그라첸 박사의 대저택 화재사건으로 인한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에 얽힌 네 남매와 사건 이후 사라진 유모의 이야기를 그린 심리 추리 스릴러 뮤지컬이다.
사건의 용의자이자 4남매의 유모인 메리 역을 맡은 최현선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거의 7년만에 돌아온 소극장 무대다. 뮤지컬적인 노래보단 연극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을 해보고 싶었고 가까이 부딪쳐 보고 싶었던 게 컸다. 현재 적응 중이다"고 입을 열었다.
▲ "작품 본적도 없는데 대사 하다 눈물 펑펑"
초반 최현선이 '블랙메리포핀스'를 접했을 때 주위에서는 노래가 워낙 없는데 괜찮냐고 물엇다. 하지만 이는 최현선을 더 솔깃하게 했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가 최현선의 생각. 노래를 좋아하고 부르는 것도 좋아하지만 뮤지컬배우에게 있어 그게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그녀다.
최현선은 "김다현 배우 아이 돌잔치에서 서윤미 연출님을 만났는데 갑자기 '메리 생각 없냐'고 물으셨다. 작품을 본적이 없지만 오디션을 한 번 보기로 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디션을 봤다"며 "희한한게 처음에 '메리를 기억해' 부분을 즉흥적인 대사를 하면 노래하는 거였는데 자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대사를 하다 뜬금없이 너무 슬픈 거다"고 밝혔다.
그는 "'그래도 자야지' 하다가 할 말이 없어 어떡하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나서 막 울었다. 연출님도 놀라셔서 '우는 거 의도적인 거냐. 뭐 알고 지금 이러는거야?'라고 물었다"며 "그땐 작품을 본적이 없는데 울었던 거다. 이후 대본을 보는데 의미 있는 장면이더라. 제일 밝은 장면이기도 하면서 감정 변화를 디테일하게 가야 하는 장면이니 나도 설명 듣고 놀랐다. 왜 눈물이 났을까"라고 고백했다.
연습이 시작된 후에도 눈물은 계속 났다. 대본을 읽고 작품을 대하니 그 상처가 더 크게 다가왔다. 메리의 등장신이 많지 않아 고민도 많이 됐고, 아무래도 초, 재연이 있는 작품이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도 조절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감정적으로 소모도 많았고 멍하게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빨리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게 됐고, 상대 배우들을 더 믿게 됐다. 그렇게 따뜻한 메리가 탄생했다.
"연습 중 런을 돌 때 공연에서는 할 수 없는 감정 과잉 상태였다. 등장해서 아이들을 보는 순간 무너지는 거다. 런이 아니었으면 주저 앉고 싶을 정도의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요'라고 노래를 시작하는데 대사 하나 하나가 너무 슬펐다. 노래를 못할 정도로 울었는데 컷 하지 않고 계속 가라고 했다. 근데 나와서 정신 차리니 너무 창피했다. 이런 저런 합을 맞춰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리도 감당하기 힘들었을텐데 왜 이렇게 이성적이게 해야만 하나 흔들리기도 했다. 그런 것들을 잡아 가는 것들이 어려웠다."
▲ "내게 보여준 믿음에 대한 크기를 많이 생각한다"
대본을 읽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고 연습 중에는 더 슬픈 마음을 다잡지 못했을 만큼 메리에게 빠진 최현선이지만 사실 많지 않은 등장, 그 안에서 영역을 찾는 것은 힘었다. 전혀 몰랐을 때는 괜찮았는데 작품에 대해 알게 되고, 관객들의 기대가 모아지니 그 때부터 부담감도 커졌다. 하지만 쿨한 성격 덕에 '어쩔 수 없지 뭐. 정말 진심으로 최선을 다할 수밖에'라는 생각으로 더 메리와 가까워져 갔다.
최현선은 "사실 '그 공연 재밌냐'고 물어보면 자신있게 재밌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그냥 처음부터 따라가서 보면 뭔가 느끼는게 있겠지. 우리 작품 재밌냐고 묻는 네가 더 신기한데?'라고 얘기한다"며 "아무래도 캐스트가 많아 경우의 수가 많다보니 다 다르다. 정말 많이 보고 느끼려 한다. 사실 뒤에서 지켜보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을 온전하게 느낄 수는 없다. 때문에 아이들의 전사, 메리가 이렇게까지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 연결고리를 더 찾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 아이들이 내게 보여준 믿음에 대한 크기를 많이 생각한다. '날 믿어' 대사를 할 때 진짜 못 하겠더라. 너무 미안하고 큰 죄책감이 든 거다. 눈물 흘리는 배우들을 보면 그 마음이 더하다"며 "사실 나는 헤르만 같은 성격이라 즉흥적인 것도 많고 감성적이다. 그러다 보니 참게 되고 복잡미묘한 표정이 나오게 된다. '따뜻한 메리'라고 해주는데 워낙 배우들끼리 알던 사이라 더 그런 것도 있다. 팀워크가 좋을 수밖에 없다. 보듬고 달려오는 거라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내가 생각보다 나이가 어려 오빠들을 보듬는게 힘들긴 했는데 점점 아이들처럼 느껴졌다. 보고 있으면 그냥 미안하다. 아이도 없고 결혼도 안 했지만 모성애가 느껴진다. 특히 마음이 동하는건 안나와 요나스다. 요나스가 제일 많이 기억을 하고 있고 제일 어려 더 보듬어준 시간이 많아 돈독하다고 생각한다. 안나는 여자로서의 부분이 있다. 근데 모두에게 미안하다. 한스 역시 제일 이성적이고 형아라는 이유로 어찌 보면 메리를 대신해주지 않나. 무너지고 힘들어 하는게 너무 안됐다. 부모님들이 느끼는 첫째에 대한 짠함이 있다. 헤르만 역시 그 사이에 있으니 또 미안하다. 항상 미안한 생각밖에 없다."
▲ "사람 냄새 나는 배우가 되고싶다"
'블랙메리포핀스'는 아이들만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메리 역시 트라우마를 갖고 살게 되는 인물.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고 원치 않은 상황을 결국 마주하게 되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그런 면에서 배우들은 자신의 트라우마, 혹은 이를 극복하는 과정 등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있다.
최현선 역시 그렇다. 약 5년 전 체력적으로 힘들어 슬럼프가 왔던 때가 기억난다. 그는 "갑자기 다 하기 싫고 다 귀찮았다. 노래도 그렇게 좋아하는데 하기 싫더라. 그때 왜 그랬는지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이 한꺼번에 다가왔다"며 "잘 해낼 수 있을까,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 서른 되기 전 과도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때 잠시 무대에서 내려와 보이스코칭을 하면서 스태프 입장이 됐었다. 근데 하다 보니까 '저기서 나는 이렇게 할텐데'라는 생각도 들고 '왜 쓸데 없는 슬럼프를 겪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뒤에서 보다 보니까 많은 그림들이 그려지고 스태프들에 대한 감사함도 알게 돼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을 다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슬럼프를 이겨냈다. 그땐 배우를 그만 할까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진짜 심각했는데 자연스럽게 풀렸다. 이후 좀 더 사람 냄새 나는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켜졌다."
'블랙메리포핀스' 역시 최현선에게 변화를 가져다 줬다. 노래로 특화됐던 최현선에게 더 연기적인 고민을 하게 했다. 온전하게 그 안에 있는 공기를 느끼게 해줬고, 내 것도 잘 하면서 잘 섞이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했다. 많이 느끼고 부딪치고 싶었기에 '블랙메리포핀스'가 주는 의미는 더 크다. 노래와 연기를 더 단단하게 같이 가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더 강해졌다.
"뭔가 거듭나고 싶다. 다들 좋은 배우가 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 만큼 나 역시 힘들고 어려워도 좋은 배우, 사람 냄새 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어느 자리에서든 거기에 맞는 배우가 되고 싶고 흡인력 있는 배우가 되고 싶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튀지 않고 서로 섞여서 자기 몫을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한편 최현선이 출연하는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오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아트원 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다.
[뮤지컬배우 최현선,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공연 이미지컷. 사진 = 아시아브릿지컨텐츠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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