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최근 NBA에 의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통산 1000승을 달성했다. 역대 9번째. 10일 인디애나와의 원정경기였다. 샌안토니오는 11일 현재 33승19패, 서부컨퍼런스 7위다. 성적 자체는 좋지만, 중위권이다. 올 시즌 서부에는 강팀이 많다. 디펜딩챔피언 샌안토니오가 그렇게 조명 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포포비치 감독의 1000승은 매우 의미 있다. 그가 올해 66세의 노 감독이라서가 아니다.(NBA엔 젊은 감독을 선호하는 KBL-WKBL과는 달리 베테랑 감독이 많다.) 샌안토니오에서만 1000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1000승 이상 감독 9명 중 한 팀에서만 1000승을 거둔 감독은 단 2명. 포포비치 감독 이전에 제리 슬로언 전 유타 감독이 유일했다. 슬로언 전 감독(1221승)은 1988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23년간 유타를 이끌었다. 포포비치 감독도 1996년 샌안토니오에 부임해 20년째 달려왔다. 1997년, 1998년에 출범한 KBL, WKBL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감독 재임 기간.
▲포포비치 감독의 위대함
포포비치 감독은 1462경기만에 1000승을 거뒀다. 승률은 무려 68%. 샌안토니오는 2013-2014시즌에는 무려 62승(20패)으로 NBA 전체 승률 1위였다. 올 시즌에도 팀 던컨, 토니 파커, 마누 지노빌리 등이 주축을 이뤘고, 여전히 좋다. 최근 17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2013-2014시즌까지 무려 5차례 정상을 밟았다. 모두 포포비치 감독의 업적. 그는 감독상도 샌안토니오서만 3차례 수상했다. 포포비치 감독은 슬로언 감독이 유타에서 물러난 뒤 현역 NBA 단일팀 최장수 감독이면서 가장 찬란한 성과를 일궈냈다.
포포비치 감독은 수 많은 지도자를 키워냈다. 올 시즌 동부컨퍼런스 선두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애틀란타. 사령탑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은 포포비치 감독 밑에서 17년간 코치로 일했고, 2013-2014시즌 애틀란타를 맡았다. 부덴홀저 감독은 샌안토니오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이식, 발전시켰다. 스타 의존도가 낮고, 특유의 모션 오펜스와 조직력으로 승부하는 모습이 닮았다. 포포비치 감독이 키운 수 많은 제자들이 지금도 미국농구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KBL의 포포비치는
그렇다면 KBL 단일팀 현역 최장수 감독은 누구일까. 모비스 유재학(52) 감독이다. 유 감독은 2004-2005시즌부터 11시즌째 모비스 지휘봉을 잡고 있다. 그는 모비스에서 챔피언결정전 우승 4회(통합우승 2회), 정규시즌 우승 3회를 일궈냈다. 올 시즌에도 모비스를 선두로 이끌고 있는 유 감독은 통산 498승(384패)을 거뒀다. 2승만 보태면 KBL 최초 통산 500승 감독이 된다. 출전 경기수 1위(882경기), 승률 2위(100승 이상 거둔 감독들 중 2위, 0.565)다.
유 감독은 올 시즌을 끝으로 모비스와의 5년 계약이 끝난다. 농구계에선 이변이 없는 한 모비스와 유 감독이 앞으로도 함께 갈 것으로 본다. 그럴 경우 유 감독도 대망의 1000승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KBL이 NBA보다 경기 수가 적어서 통산 승수 쌓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유 감독도 30대 중반이었던 1998년부터 무려 18년째 감독 생활을 하고 있다. 승수에선 비교가 안 되지만, 감독 경험만 놓고 보면 유 감독도 포포비치 감독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의 베테랑이다.
무엇보다도 유 감독은 국내 최고명장으로 공인을 받았다.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철저한 조직력 농구를 펼친다. 또한, 18년간 감독을 하면서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선두 경쟁을 펼치는 SK 문경은 감독을 비롯해 여자프로농구 최강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 삼성 이상민 감독은 모두 유 감독의 프로, 대학(연세대 코치) 시절 제자다. 포포비치 감독과 유 감독은 확실히 닮은 부분이 있다.
▲더 많은 포포비치가 필요하다
감독 목숨이 파리 목숨이다. 유 감독을 제외하고 5년 넘게 한 팀을 이끄는 지도자도 거의 없다. 여자프로농구서 8년째 삼성을 이끄는 이호근 감독 정도가 유일하다. 구단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여전히 현장을 침해하는 고위 수뇌부도 많다. 또 그렇게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은 지도자가 적지 않은 것도 문제다. 이래저래 감독이 한 팀을 오래 이끌며 좋은 성적을 내는 건 쉽지 않다. 감독의 능력과 비전, 구단의 효율적인 지원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최근 KCC 허재 감독이 지휘봉을 놓았다. 허 감독은 최근 3시즌 연속 부진에 고민이 많았다. 그는 9년간 KCC를 이끌며 챔피언결정전 우승 2회를 달성했다. 그를 전술, 전략이 뛰어난 지략가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현역시절 농구천재 명성답게 젊은 선수들을 키우는 안목,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은 분명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퇴로 당분간 한국농구는 허 감독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KCC는 허 감독을 무한 신뢰했다. 그가 향후 KCC 고위수뇌부로 돌아올 가능성은 남아있다.)
KBL, WKBL에도 더 많은 포포비치 감독이 필요하다. 구단의 지원 속에 한 팀에 오래 머물며 능력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구단 고유의 전통과 역사가 생기고, 그를 따르는 또 다른 지도자가 양성된다. 그게 한국농구 발전의 또 다른 자양분이 될 수 있다. 확실히 한국농구는 지도자에 대한 많은 투자와 고민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구단들은 성적 앞에서 조급하고,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특히 베테랑 지도자를 배척하는 흐름이 있다. 심지어 대한농구협회, KBL, WKBL 모두 지도자 양성을 위한 세밀한 프로그램도, 구체적인 자격 조건도 없다. 이래서는 제2의 포포비치 감독, 아니 제2의 유재학 감독도 나올 수 없다. 매우 좋지 않은 현상이다.
[포포비치 감독(위), 유재학 감독(가운데), 유재학-문경은 감독(아래). 사진 = AFPBBNEWS,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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