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초연이 대박나면 재연에 새로 합류한 배우에겐 부담이 생긴다. 좋은 작품이기에 대박이 났고, 그래서 더 욕심이 생길만 하지만 그래도 부담감에 더 무게가 쏠린다. 기존 관객들에게 캐릭터가 구축된 상황에서 새로 합류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고, 초연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있다.
배우 이석은 달랐다. 연극 '유도소년' 재연 합류 당시 부담보단 자신에게 집중했다. 지난해 극단 '간다' 10주년 퍼레이드 작품 중 하나였던 '유도소년'은 매진 행렬에 연장 공연까지 이어지며 '대학로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이같은 폭발적인 인기에 재연에 합류한 이석은 부담보다 기대감이 더 컸다.
'유도소년'은 슬럼프를 겪고 있는 전북체고의 유도선수 경찬이 엉겁결에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출전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피끓는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그리며 1997년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해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극중 코치 역을 맡은 이석은 최근 인터뷰에서 "'간다' 멤버기 때문에 지난 시즌 초고가 나왔을 때 대본을 받았는데 당시 영화 '강남 1970' 촬영중이라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었는데 이번 재연에 합류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실 초고를 받아봤을 때는 '유도소년'이 이렇게까지 잘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거칠고 완성도가 떨어졌거든요. 근데 더 아쉬움을 느낀 부분은 그걸 완성시키는 첫번째 과정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게 진짜 재미거든요. 초연 배우들 어려움이긴 한데 그 희열을 새로 합류한 멤버들은 모르죠.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어서의 치열함이 있어요. 뭔가 하루 하루 서로 불안하고 그러면서도 공연을 기다리면서 딱 완성 됐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 있는데 그걸 못 느낀게 좀 아쉬워요. 그게 어떻게 보면 소중한 작업 시간이었는데.."
그렇다면 간다 단원으로서 바라본 초기 '유도소년'은 어땠을까. 처음엔 많이 암담했단다. 초연 배우들의 멘붕 현장을 지켜봤으니 당연하다. '되겠어?', '어떻게 된 거야', '망한 거야'라고 했을 정도. 그럼에도 감탄했던건 점점 더 시야를 넓혀 가는 연출의 내공이었다. "그런 고민들이 내공의 차이인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처음엔 암담했는데 웬걸요. 좋은 쪽으로 계속 바뀌고 습득을 하다 보니 간다의 효자 상품이 됐어요. 저도 초연 때 공연을 보니까 박수를 쳐주고 싶더라고요. 공연을 보면서 '내가 저거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유도소년'은 박수를 쳐주고 싶게 하는 작품이었죠. '내가 꼭 안 해도돼. 정말 훌륭해. 잘 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런 생각."
초연 과정을 지켜보고 재연에 합류하게 된 이석이 맡게 된 역할은 코치. 이재준 연출은 이석에게 "너는 그냥 코치야"라고 했다. 이석이 소화할 수 있는 색깔을 연출의 시선으로 정확히 판단한 것. 이석은 경찬과 민욱의 로맨스가 탐이 나기도 했지만 연출의 판단을 믿었다.
"코치는 작품의 베이스가 된다고 생각해요. 코믹할 땐 코믹하지만 유도 코치로서는 정확하게 중심을 잡아 가죠. 그런 면에서 참 매력 있어요. 제가 막 화낼 때 찬물을 확 끼얹고 객석이 싸해지는 것에 쾌감을 느껴요. 싸해져야 그 다음에 또 웃기는 포인트가 잘 사니까. 웃고 호응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냥 코치만 보고 공연할 때가 재미있어요. 공연의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는 생각을 혼자 해요."(웃음)
초연 당시 과정을 봐왔던 그에게 재연 합류에 대한 부담은 없었을까. "그 부담이란게 초점이 어디 있느냐의 문제인데 지금 나이도 서른다섯이고 간다에서 작품을 하면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내가 할 것들에 대해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고 강조한 그는 "작품에서 내가 해야될 것들, 코치가 해야될 것들에 집중하게 되지 부담에 대한 기준의 사실 모호하다"고 고백했다.
"그런 거에 대한 부담을 느끼거나 아니면 괜한 욕심을 내는 시기는 좀 지난 것 같아요. 이번에 새로운 팀 배우들 다 내공이 있는 배우들이에요. 이전 팀을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우린 우리의 공기로 '유도소년'을 만들고 오로지 각자 해야할 것들에 집중했죠. 쫓기거나 부담감이 별로 없었어요. 부족하든 넘치든 우리만의 뭔가가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죠. 역할과 나, 작품과 나 '일대일' 관계로 생각했어요."
그렇게 '유도소년'에 뛰어든 이석은 초반 복싱과 유도 연습에 매진했다. 한달간 꾸준히 체육관에 나갔고 연습실 와서도 무술 감독과 함께 운동에 집중했다. 단 두달 배운 것이 티나면 안되는 역할이기에 더 노력했다. 초짜처럼 보이긴 싫었다. 해나가는 것에 대한 묘한 재미도 느꼈다.
서로간의 합도 중요했다. 특히 이석은 경찬 역 배우들을 때리는 장면을 연기해야 하기에 호흡에도 신경 썼다. 연습 당시를 회상하기 시작한 이석은 함께 코치 역을 맡은 양경원 이야기를 꺼내며 흥분했다.
"양경원과의 스파링에서 처참히 무너졌어요. 툭툭 가볍게 시작했는데 나중엔 엄청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한 3일 간 것 같은데.. 어떻게 2주 정도 배운 애를 이렇게 때릴 수 있어요? 경원이가 평소엔 매너 좋고 선한데 어떤 악한 게 있어요. 응어리가 있나봐요.(웃음) 공연 중엔 서로 정확히 약속을 해서 해야 돼요. 하다 보면 흥분이 되니까 더 위험해질 수 있거든요. 사실 경찬 역 중 박훈, 박해수는 동갑인데 (홍)우진이 형은 아무래도 형이고 내가 좀 무서워 하는 게 있어서 신경 쓰이는 게 있더라고요. 처음엔 제가 생각했던 것 강도보다 너무 약하게 때려서 몸짓이 엄청 이상하게 되더라고요."
연기부터 운동까지. '유도소년'은 이석에게 참 많은 것을 신경 쓰게 한다. 그 신경 쓰이는 작업이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에 더 도전 정신이 생긴다.
"운동이면 운동, 드라마면 드라마. 배우가 잘 해야 보는 사람도 흥미로워지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더 집중력이 필요하죠. 매트 위에서 여러가지 상황들이 있는데 배우가 그 때 그 때 잘 해야 재밌지, 어설프면 위험해질 수 있어요. 세상 세상 이렇게 허접해 보일 수가 없어요.(웃음) 그게 부담이자 재미인데 큰 무대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호흡들을 관객들이 눈 앞에서 느끼니까.. 땀을 뚝뚝 흘리는 배우들을 관객들도 조용히 보고 있어요. 그게 참 뭉클해."
5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공연시간 115분. 02)744-4331
[배우 이석, 연극 '유도소년' 공연 이미지. 사진 = Story P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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