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춘천 김진성 기자] “전자랜드 게임을 많이 봤죠. 도움이 되더라고요.”
KB 서동철 감독은 신한은행과의 플레이오프 때부터 전자랜드의 플레이오프 행보를 유심히 지켜봤다고 했다. 전자랜드와 자신이 이끄는 KB가 비슷한 면이 많다고 느꼈다. 실제 두 팀은 골밑 높이가 낮다. 대신 타이트한 수비와 속공, 외곽슛으로 승부를 보는 팀이란 공통점이 있다.
그런 두 팀이 이번 플레이오프서 나란히 선전 중이다. 전자랜드는 6강 플레이오프서 예상을 뒤엎고 SK를 3연승으로 눌렀고, 4강 플레이오프서도 동부와 1승1패로 맞섰다. SK와 동부가 KBL에서 높이가 가장 좋은 팀이라는 걸 감안하면 전자랜드의 플레이오프 행보는 매우 놀랍다. KB 역시 마찬가지. SK, 동부처럼 빅 라인업을 구축한 신한은행을 플레이오프서 2연승으로 일축했다. 22일 최강 우리은행과의 챔피언결정 1차전도 잡는 기염을 토했다. 사상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더 이상 꿈이 아니다.
▲단기전 상식을 파괴했다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은 정규시즌과 다르다. 장기레이스가 아니다. 단 1경기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낸다. 매 순간이 승부처다. 때문에 골밑 우위를 지닌 팀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남녀 프로농구 역사를 돌아봐도 단기전 승자는 결국 높이가 우세한 팀이 대부분. 그런 점에서 전자랜드와 KB의 단기전 선전은 단순한 논리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단기전 상식을 파괴하고 있다.
두 팀은 스피드로 승부를 하는 특성상 체력소모가 엄청나다. 더구나 6강(전자랜드)과 플레이오프(KB)를 거치고 올라와 푹 쉬었던 강팀들과 대등한 승부를 벌이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게 정상. 그러나 전자랜드와 KB는 아직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6강과 플레이오프 이후 상대적으로 충분한 휴식을 갖긴 했다. 하지만,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은 “이미 정규시즌을 치르면서 체력을 소진했다. 지금 쉰다고 해서 회복되진 않는다”라고 했다. 유 감독의 말은 결국 전자랜드와 KB가 체력저하 속에서 플레이오프에 돌입해 높이가 앞선 팀들을 상대로 체력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 하지만, 실전에서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엄청난 전투력과 응집력으로 약점을 메워내고 있다.
두 팀의 선전 덕분에 이번 남녀프로농구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은 명승부가 속출했다. 전자랜드는 SK에 3연승을 거두는 과정에서 팬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동부와의 4강 플레이오프 2차전서 패배했으나 3쿼터 막판 18점까지 뒤진 스코어를 4쿼터 막판 5점차까지 추격했다. KB는 신한은행, 우리은행과의 박빙 승부를 연이어 버텨냈다. 높이를 앞세운 신한은행, KB와 비슷한 컬러인 우리은행 모두 KB에 무릎을 꿇었다.
▲철저한 준비와 내구성 향상
그냥 이뤄진 기적은 없다. 전자랜드와 KB의 선전은 철저한 준비가 뒷받침된 결과. 유도훈 감독이 비 시즌 철저히 개인기량 향상에 집중하는 건 유명하다. 개개인에게 명확한 동기부여를 통해 성장 기준점을 제시한다. 그에 따라 팀을 만들고, 세밀한 전술전략을 준비한다. 평상시부터 찰나의 틈을 뚫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쏘는 무빙 3점슛을 연마해왔다. 플레이오프 스타로 떠오른 차바위의 활약은 우연이 아니었다. 프로 입단 후 살을 빼고, 수비 테크닉을 키운 결과다.
서동철 감독은 정규시즌 때 지역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높이가 앞선 팀을 상대로 더블 팀과 트랩 디펜스로 대항했다. 지역방어는 박스아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리바운드 약세가 극대화될 수 있다. 그러나 서 감독은 신정자를 영입한 신한은행을 상대로 비장의 무기 1-1-3 지역방어를 꺼내 들었다. “시즌 막판부터 준비했는데 실전서는 플레이오프까지 쓰지 않았다”라고 했다. KB가 신한은행을 무너뜨린 건 결국 이 지역방어의 대성공이 결정적 원동력. 높이가 약한 특성상 골밑에 3명을 배치, 제공권을 강화하면서 앞선에서 활동량이 많은 홍아란과 노련한 변연하를 믿었다. 그런 서 감독은 매치업이 맞아떨어지는 우리은행과의 챔피언결정 1차전서는 맨투맨으로 상대의 기세를 꺾었다.
플레이오프를 치러보면서 내구성이 자연스럽게 향상됐다는 평가도 있다. 전자랜드는 6강 플레이오프 경험이 가장 많은 팀. 유 감독은 “우리가 큰 경기 경험이 동부보다 더 많다”라고 했다. 실제 동부 허웅, 두경민, 박병우는 플레이오프가 처음이다. 그러나 전자랜드 대부분 선수는 단기전서 유의미한 경험을 많이 해봤다. 단기전서 높이가 월등한 팀들을 상대로 처절히 깨지면서 교훈을 얻었고, 자연스럽게 단기전 승부처를 극복하는 요령을 익혔다. KB 역시 높이가 앞선 신한은행을 격파한 경험이 엄청난 도움이 됐다. 신한은행을 상대로 쌓은 내구성을 매치업에서 밀리지 않는 우리은행을 상대로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전자랜드와 KB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승부의 세계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또한, 철저한 준비와 엄청난 전투력이 있으면 지더라도 박수 받을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알려줬다. 남녀 대표팀도 국제무대서 전자랜드, KB와 같은 처지. 높이는 물론 테크닉도 대부분 국가에 뒤진다. 전자랜드와 KB의 선전은 남녀대표팀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위에서부터 전자랜드, KB 선수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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