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많이 졌다."
'만수'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정규시즌 통산 504승을 거뒀다. 단연 KBL 최고 승수. 감독으로 300승을 채운 농구인도 4명(전창진, 김진, 신선우)에 불과한 걸 감안하면 유 감독이 얼마나 많이 이긴 감독인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유 감독의 통산 승률도 독보적인 1위일까. 그렇지는 않다. 유 감독의 정규시즌 통산 승률은 0.566. 전체 6위다. 100승을 넘긴 감독으로 한정해도 4위. 어째서 역대 가장 많이 이긴 감독의 통산 승률이 1위가 아닌 걸까. 그건 유 감독이 많이 이긴만큼 많이 졌기 때문이다. 유 감독은 통산 387패를 기록 중이다. 놀랍게도 통산 최다패. 통산 최다승을 자랑하는 유 감독도 알고 보면 통산 최다패 감독이다.
▲많이 졌다
최근 유 감독이 프로에서 가르친 수 많은 제자들 중 세 번째 프로감독이 탄생했다. 조동현 KT 감독. 유 감독은 13일 한국농구대상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았는데, '만수'로 불리는 비결에 대한 현장 사회자의 질문이 나오자 곧바로 "많이 졌다"라고 했다. 유 감독은 "깨지고, 밟혀보면서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러면서 많이 배웠다"라고 했다.
유 감독은 이미 정규시즌서만 무려 891경기를 지휘했다. 이 역시 역대 최다. 891경기서 504승을 거두기 위해 387패라는 대가를 치렀다. "많이 졌다"라는 유 감독의 말은 정확한 사실. 387패가 없었다면, 당연히 504승도 없었다. 유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3연패 직후 "지면서 배웠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기록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깨져야 배운다
유 감독은 조 감독에게 한 마디를 해달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조 감독도 많이 져봐야 한다. 실패를 해봐야 나중에 자신만의 농구를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어 "조 감독은 선수 시절(1999-2000시즌 SK 빅스) 내가 뽑았다. 준비를 하고, 하지 않고는 본인이 알아서 하는 것이지만, 이제까지 해온 것만큼만 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덕담을 건넸다.
유 감독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시간 투자를 많이 하는 친구"라고 조 감독을 극찬했다. 조 감독은 유 감독과 감독-선수관계였던 SK 빅스-전자랜드 시절이나, 감독-코치 관계였던 모비스에서도 한결같았다. 화려하게 빛나진 않았지만, 묵묵히 뒤에서 주연들을 뒷받침하는 소금같은 역할을 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 속에서도 철저한 몸관리로 선수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모범적인 코치생활로 유 감독에게 인정을 받았다.
다만, 감독은 또 다르다. 정규시즌서 돌풍을 일으키다가도 막상 플레이오프만 되면 유 감독에게 잡히는 초년병 감독이 많다. 그만큼 큰 경기 경험과 연륜에서 유 감독과의 두뇌싸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유 감독은 지난 17~18년 감독생활을 통한 특유의 벤치 운영 노하우와 순간적인 감각, 몇 수 앞을 바라보는 시야와 임기응변능력 등에서 젊은 감독들을 압도한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신세기, SK 시절 겪은 수많은 쓰라린 패배들. 당시 유 감독의 신세기-SK는 대부분 시즌 중, 하위권을 맴돌았다. 유 감독도 당시 베테랑 감독들에게 깨지면서 배웠다. 어쩌면 지금 경험이 적은 젊은 감독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유 감독에게 지면서 배우는 게 당연하다.
▲조언을 구하라
유 감독은 시상식 현장에서 조 감독에게 "주변으로부터 조언을 얻는 것도 좋다"라고 했다. 유 감독 역시 혼자만의 힘으로 여기까진 온 건 아니다. 그는 정규시즌 500승 달성 당시 "최희암 감독님 밑에서 코치(연세대)로 일하면서 원칙과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라고 했다. 또한, "사실 롤 모델은 방열 회장(대한농구협회)님이다. 나를 가르쳐주신 스승"이라고 했다. 유 감독 역시 방 회장에게 많은 걸 얻고 배웠다. 한국농구가 예전과 같지 않지만, 유 감독을 비롯해 여전히 유능한 지도자가 곳곳에 있다. 그들의 노하우를 조금씩 배우는 것도 조 감독의 역량이다.
좋은 감독, 명장 소리를 듣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유 감독도 '만수'라고 불리기 전 숱한 실패를 겪었다. 초보 사령탑 조 감독을 비롯해, KBL, WKBL 초년병 감독들 역시 실패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들 개개인의 경험과 노력도 중요하고, 구단의 뒷받침 역시 중요하다.
[조동현 감독(왼쪽)과 유재학 감독, 조동현 감독(가운데, 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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