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신소원 기자] "감독은 현장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자가 돼요. 사극은 더 신경써야 할 게 많아서 정신이 없었어요."
민규동 감독은 벌써 7번째 작품을 내놓는다. 보이는 건 몇 달 촬영이지만 그 내면으로는 몇 년 전부터 이를 영화화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뒤따른다. 이번 영화 '간신'은 그가 2013년 느와르 작품을 준비하려 했을 때 우연히 지하에 있던 간신이라는 소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그로부터 2년 뒤 세상 빛을 보게 됐다.
특히 그는 앞서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를 통해 처음 만난 주지훈과 다시 호흡을 맞춘 것으로 눈길을 끈다. 여기에 첫 호흡을 맞춘 김강우를 파격 연산군으로 만든 민규동 감독의 속내는 무엇일까.
▲ "김강우는 모범생, 돼지독 올라 피부병 걸렸다"
극 중 파멸의 끝을 보여주며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연산군 역을 맡은 김강우는 현장에서 모범생처럼 꼼꼼한 완벽주의자였다. 민 감독은 "워낙 연구를 많이 해왔고 작은 것까지 치밀하게 미리 고민하는 타입"이라고 말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김강우는 극 중 돼지들이 가득한 후반부 촬영에서 머리 쓰지 않고 오롯이 섬뜩한 연산군에 빙의해 수 십 시간 동안 돼지들과 함께 촬영에 임했다. "김강우가 돼지독이 올라 피부병에 걸려 극적으로 촬영을 했다"며 김강우의 근성을 칭찬했다.
연산군은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 등 작품 속에서 그려졌던 내용에서 더 나아가 섬뜩하면서도 내면의 아픔을 그림이라는 예술적 성향을 드러낸 인물로 표현됐다. 얼굴 오른쪽 눈 위에 그려진 커다란 붉은 반점은 연산군의 결핍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이는 김강우의 아이디어로 탄생됐다.
▲ "데뷔부터 본 주지훈, 가능성·한계 동시 목격"
드라마 '궁'에서 이신 역으로 데뷔한 주지훈은 2008년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 민규동 감독과 그때부터 인연이 됐다.
그 뒤로 약 6년 만에 '간신'으로 만난 주지훈의 모습은 어땠을까. "주지훈은 미리 많이 이야기하기보다는 현장성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앞서 철저하게 처음부터 모든 동작, 대사들을 민규동 감독과 약속하는 김강우와는 다른 모습이다.
"현대극에서는 괜찮을 수 있지만, 사극은 좋은 조건이 아니기때문에 미리 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었어요. 현장에서의 스타일은 김강우와 차이가 있었죠. 둘이 같이 할 때는 서로 다른 스타일이 오히려 시너지가 날 때도 있었어요. 마치 경쟁적으로 그 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죠."
민규동 감독은 주지훈에 대해 "데뷔할 때부터 알았으니까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목격했다"고 말했다. 주지훈에게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던 민규동 감독은 더 욕심을 냈고 연기의 깊은 폭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이번 작품에 간신 임숭재 캐릭터로 캐스팅했다.
더이상 어리숙한 신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고, 주지훈에게 대해 더 믿음이 생겼던 촬영 분위기를 전했다.
"영화를 통해 처음 데뷔시켰으니 제 아이같아요. 잘 커나갔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애정이 남다르죠. 힘이 좀 빠진 모습이라서 좋았어요.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모르겠는데 작은 디테일들에서 재미를 느꼈어요. 남자배우들은 뒤늦게 많이 성장을 하니까 시간이 주어진다면 좀 더 예상하지 못한 모습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 "영화 속 작은 소품까지 오케스트라 연주해야"
지난 '간신' 언론시사회 당시, 극중 설중매 역을 맡은 이유영은 힘들었던 촬영 현장을 회상하며 울먹거려 눈길을 끌었다. 극중 설중매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단희(임지연)와 극한의 대결을 펼치며 위로 향해나가는 인물로 표현됐다.
"당대 신분으로는 설중매 역할이 가장 천박한 신분이잖아요. 그래서 극중 팔목을 여러번 긋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힘든 것들을 표현하느라 그랬던 것 같아요. 이유영이라는 배우는 전작 영화 '봄'에서는 정말 밝은 캐릭터로 나왔는데 여기서는 또 다른 캐릭터를 소화해야 해서, 본인 스스로 정말 힘들어했어요."
고민이 컸던 만큼 스크린 속 그의 활약은 여느 주연배우 못지 않았다. 이제 갓 두 번째 작품이지만 '봄'에 이어 그는 충무로가 기대하는 배우로 눈길을 끌고 있다. 민규독 감독은 이유영에 대해 "끼가 굉장해서 앞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에 비해 차지연은 뮤지컬계에서는 정평이 나 있지만 '간신'으로 스크린 데뷔를 했다. 뮤지컬 '서편제'를 찾아봤다는 민규동 감독은 그 길로 당장 차지연을 찾아갔고, 차지연 또한 내용도 묻지 않고 "하게 해달라"고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해 극중 장녹수 역할을 맡게 됐다. 특히 차지연은 극의 내레이션 판소리까지 도맡아 화려한 스크린 데뷔를 앞두고 있다.
또 단희 역의 임지연은 앞서 '인간중독' 이미지를 넘어서야 하는 압박 속에 촬영에 임했고, 이에 촬영장에서 김강우와 마찬가지로 조용했고 진지했다.
"노출이 있는 작품인데 연기를 못하면 노출만 찍는 것처럼 매도를 당하니까 노출로 홍보되지 않도록 홍보사에도 많은 부탁을 했어요. 분명하게 각자 이유가 있는 캐릭터니까요. 노출보다 임지연에게 바랐던 건 여배우로서 혹독한 장면을 연기하면서도 역사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했으면, 싶었어요. 마치 '게이샤의 추억'에서 공리와 장쯔이처럼 임지연과 이유영의 관계를 만들고 싶었죠."
첫 사극 연출에 민규동 감독은 예상했던 것보다 어려웠던 점이 더 많았다고 고백했다. 작은 소품까지 오케스트라의 수장으로서 연주를 해야한다고 밝힌 민 감독은 그것을 조율하는 것이 영화를 찍는 것보다 더 어려운 숙제라고 설명했다. 결국 촬영장의 분위기까지 스크린에 담긴다는 것이 그의 연출가적 해석이었다.
현장에서 키스신 한 번이면 수염이 다 떨어져, NG가 나면 다시 수염을 붙이는 데만 30분이 걸렸고 헤어스타일 바꾸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다른 작품에서는 감독이 다음 신 구상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민 감독은 이 또한 촬영의 낭비라고 생각해 미리 철저하게 구상해오고 현장에서는 배우들을 기다리며 분위기를 조율하는 등 지난 4개월 간 남들은 모르는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21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이제야 나오는구나, 싶어요. 사극이 정말 어려운 장르라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어요. 사극 '간신'에 이어 다음 작품은 1949년도와 1954년도 각각 다른 시대극이에요. '간신'보다 더 빨리 작업하려고 했던 작품이라, 곧 작업을 하려고 해요. 하나는 액션 느와르고 하나는 드라마인데 둘다 새로운 시도가 담겨있어서 쉬워보이지 않네요."
[민규동 감독.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신소원 기자 hope-ss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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