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비주얼에 대해서는 자신 있다."
영화 '경성학교'의 이해영 감독의 자신감은 허언이 아니었다. '경성학교'는 근래 본 작품 중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손꼽을 만한 영화다. 반면 스토리를 표현해 내는 방식은 관객에 따라서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경성학교'는 일제강점기 중에서도 민족말살통치기에 놓였던 1938년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주란(박보영)은 계모 손에 이끌려 외부와 단절된 경성의 한 기숙학교로 전학을 온다. 주란의 일어 이름은 시즈코로, 학교를 떠난 학생 중 한 명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에게 배척당한다. 이런 그에게 다가와주는 사람은 오직 연덕(박소담)과 교장(엄지원)뿐이다.
연덕과 가까워지며 학교생활에 적응해가던 주란은 사라진 소녀를 목격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의문을 품게 된 주란은 사라진 학생들과 같은 이상증세를 겪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영화는 전혀 다른 색을 띠게 된다.
'경성학교'의 전반부는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시선을 앗아간다. 고증에 상상력을 가미한 영상들은 보는 즐거움을 극대화시킨다. 여기에 병약 미소녀로 등장하는 박보영의 모습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음을 빼앗아가기 충분하다.
후반부 반전이 일어나면서부터 '경성학교'는 극명한 노선을 타게 된다. 황국의 신민으로서 제일 중요한 건 겅강한 신체라고 강조하는 이 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의 멀리뛰기로 신체 능력을 가늠하는데, 박보영이 멀리뛰기를 할 때 슬로우모션이 걸리기 시작한 후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 어떤 이들은 실소를 지을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색다른 영화의 등장을 환영할 수도 있다. "컬트적이라기보다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한 것 같다"는 이해영 감독이지만 대중적이기 보다는 컬트적으로 느끼는 관객들이 대다수일 듯하다.
스토리 자체는 있을 법 하다. 스포일러라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실화를 영화화 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럴 듯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초현실적 에피소드들이 간혹 실소를 안긴다. "관객들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장르가 계속 변화하고 다른 온도와 질감으로 다음 신이 변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봐줬으면 좋겠다. 영화가 사람을 놀라게 해서 놀라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과 다른 장르로 펼쳐지는 것에 놀라면서 봤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변이 얼마큼 통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와는 별개로 여배우들이 제 역량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영화가 등장했다는 점은 반갑다. 진폭이 큰 주란을 연기해 낸 박보영은 충무로를 대표하는 20대 여배우의 저력을 보여준다. 대척점에 서 있는 교장 역의 엄지원 역시 엄청난 권력과 비밀을 간직한 교장의 미스터리함과 폭발하는 감정들을 소름끼치게 쏟아낸다.
특히 주목할 만한 인물은 뉴페이스들이다. 첫 상업영화를 선보일 뿐 아니라 첫 주연을 맡은 박소담은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의 미스터리와 무게감을 책임진다. 이 영화는 (주연배우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지만) 동성애 코드, 학교 배경, 여학생들의 대거 등장, 공포스러운 분위기 등 여러 면에서 '여고괴담'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데 '여고괴담' 시리즈가 여배우들의 등용문이 됐던 것처럼 주란을 싫어하는 유카 역의 공예지, 서늘한 비주얼과 발작을 일으키는 신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주보미 등이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케 한다. 오는 18일 개봉.
[영화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 포스터와 스틸.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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