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요즘 여자프로농구 질이 너무 떨어진다."
최근 농구관계자들에게 자주 듣는 얘기다. 사실 수 년 전부터 들었던 얘기이기도 하다. 확실한 건 올 시즌 여자농구의 품질저하가 예년보다 좀 더 심각하다는 점. WKBL 현직 지도자들도 "지난해보다 올해 눈에 띄게 경기력이 좋지 않다"라고 진단했다.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 전 경기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경기서는 도저히 프로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민망한 장면이 속출했다.
23일 신한은행-KDB생명전은 올 시즌 남녀프로농구 통틀어 최악의 경기였다. 신한은행이 54-48로 이겼지만, 접전이 아닌 최악의 졸전. 이날 양팀은 턴오버 31개를 합작했다.(신한은행 20개, KDB생명 11개) 신한은행이 잡은 리바운드 51개는 WKBL 역대 한 팀 최다 리바운드 신기록이었지만, 그만큼 양 팀의 슛 실패가 많았다는 의미다. 실제 신한은행은 야투 61개 중 20개, KDB생명은 야투 64개 중 20개만 성공했다. 심지어 KDB생명은 자유투도 10개 던져 4개만 성공했다.
▲구체적 예시
경기력 저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 것일까. 예를 들어보자. 농구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패스다. 여기서 말하는 패스는 특급 포인트가드의 감각적인 어시스트를 말하는 게 아니다. 상대의 기본적인 마크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최소한의 패턴 플레이를 수행하기 위한 기본적인 패스를 의미한다.
여자프로농구를 자세히 보면 맨투맨인데 느슨한 경우가 많다. 스크린을 받은 선수가 빈 공간으로 빠져나가면, (스크린을 제대로 걸어주는 선수도 많지 않고, 스크린 수비가 제대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지 않다) 반대 쪽에서 공을 잡은 선수가 빈 공간으로 이동한 선수에게 제 때 공을 넣어주는 게 맞다. 그러나 제 때 패스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공격 작업이 뻑뻑해지고, 턴오버 확률이 높아진다.
외국선수가 골밑에서 치열한 몸싸움 끝에 좋은 위치를 선점한다. 하지만, 공이 제때 들어가지 않는다. 뒤늦게 공이 들어오면 그 외국선수는 다시 드리블을 하며 좋은 위치를 잡기 위해 몸싸움을 한다. 그 사이 더블 팀이 들어오고, 슛 타이밍을 잡기 어려워진다. 어쩌다가 슛을 시도해도 성공확률은 떨어진다. 그 선수 역시 빈 공간의 선수에게 제대로 공을 주지 못해 공격이 뻑뻑해진다.
한 현직 지도자는 "그만큼 시야가 좁다는 뜻이다. 빈 공간에 서 있는 선수가 뻔히 보이는 데 공을 제때 주지를 못한다"라고 했다. 부작용이 생긴다. 수비하는 입장에선 공을 잡은 상대 에이스에게 극단적인 더블팀을 시도한다. 대신 더블 팀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로테이션(더블 팀에 가담하지 않은 선수들이 한 명 더 많은 상대 공격수들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한 움직임)과 리커버(더블 팀에 가담했던 선수가 다시 자기 마크맨에게 돌아가서 막는 것)는 굳이 제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지도자는 "어차피 빈 공간으로 공을 못 주는 걸 알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더블 팀을 한다"라고 했다. 비슷한 의미로 스크린을 당한 뒤 극단적으로 스위치를 하는 경우도 많다. 미스매치가 발생해도 공격수들이 그 곳으로 공을 주지 못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때문에 여자농구를 자세히 보면 수비수가 슈팅능력이 떨어지는 선수를 극단적으로 버리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골밑이나 미드레인지 부근에서 오픈 찬스를 잡은 선수가 공을 제때 잡아도 부정확한 슛으로 관중의 실소를 자아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비수 한 명만 붙어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손쉬운 레이업 슛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
결과적으로 이런 부분은 여자농구의 국제경쟁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격뿐 아니라 수비의 품질마저 저하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런 식(극단적인 더블 팀)으로 수비하면 국제대회서는 십중팔구 무너진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또 하나. 이 관계자는 "우리은행의 1-2-2, 2-1-2 하프코트 존 프레스(상대 코트에서부터 지역방어를 실시한다. 곳곳에 함정을 설치, 공을 잡은 사람에게 강하게 압박하는 수비)는 분명 위력적이다. 하지만, 공격수들이 제때 패스를 못하고 우물쭈물하기 때문에 당하는 경향도 분명히 있다"라고 했다. 이 수비가 WKBL에선 3~4년째 우리은행의 주무기로 통하지만, 막상 KBL에선 어느 팀도 사용하지 않는 건 이유가 있다. 여자선수들의 볼 핸들링과 패스능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뜻이다.
▲암울한 현실
기본적으로 여자선수들은 남자선수들보다 운동능력과 테크닉이 떨어진다. 체력적, 심리적인 부분에 의해 경기력이 흔들릴 때도 많다. 몇 년 전부터 1990년대~2000년대 여자농구 황금기를 이끌었던 베테랑들이 하나, 둘 은퇴하면서 세대교체가 가속화됐다. 그러나 젊은 선수들은 예전 베테랑들의 기량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다는 게 지도자들과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여자농구의 저변은 허약해지고 있다. WKBL이 저변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건 고무적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여중, 여고에서 선수 부족으로 주전 1명이 5반칙 퇴장하면 4명으로 경기를 치르는 건 흔한 일이다. 그들 중에서 개인기로 득점을 홀로 이끄는 에이스들이 결국 WKBL에 대거 입성한다. 또 다른 프로지도자는 "중, 고등학교 때 해결(득점)만 했던 선수들이다. 패스능력이 떨어지고, 수비의 기본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라고 했다. 결국 기존 주전과 백업의 간극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리빌딩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1990년대 아시아 여자농구는 한국, 중국, 일본의 춘추전국시대였다. 이후 중국이 앞서나가긴 했지만, 그 간극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과 일본, 중국의 수준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또 다른 한 관계자는 "한국은 그 자리 그대로인데 일본과 중국은 점점 앞서가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대만과 태국도 (한국을)다 따라왔다. 이미 청소년 레벨에선 박빙승부"라고 크게 우려했다. 한국은 내년 6월 13일부터 19일까지 프랑스 혹은 스페인에서 열리는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에 참가한다. 그러나 여자농구의 암울한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면 단지 리우올림픽 티켓이 중요한 건 아니다.
현재 그나마 선두 우리은행의 경기력이 괜찮은 수준이지만, 과거 통합 6연패했던 신한은행,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우승을 밥 먹듯이 했던 삼성생명처럼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다. 여자선수 특성상 기복도 심할 수밖에 없고, 선수층이 얇아 빡빡한 일정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도 맞다. 하지만, 적어도 프로경기 후 '돈 아깝다'라는 팬들의 반응이 나와선 안 된다.
단순히 선수 한 명, 지도자 한 명의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는 문제다. 일단 여자농구 인프라 개선을 위한 농구협회와 WKBL의 중, 장기적 플랜수립과 실천이 필요하다. 그리고 WKBL에 몸 담은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뼈를 깎는 각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도자들의 지도 방식, 선수들의 시즌 준비 과정도 짚어봐야 한다.
[여자프로농구 경기장면. 사진 =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