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울산 김진성 기자] "웃긴 일이지."
11일 오리온을 잡고 시즌 첫 단독선두에 오른 모비스. 유재학 감독의 해석은 간단했다. "웃긴 일이지"라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뜻. 이어 "1위가 쉬운 건 아니다. 기분도 좋다. 유지하고 싶다. 하지만, 올라올 팀들은 올라온다"라고 분명히 언급했다.
이미 잘 알려졌지만, 유재학 감독은 올 시즌 모비스를 리빌딩 하고 있다. 리카르도 라틀리프와 문태영이 삼성으로 이적했고, 양동근은 국가대표팀 차출로 1라운드를 뛰지 못했다. 그 사이 전준범, 김수찬 등을 집중조련, 1~2년 뒤에 우승에 재도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모비스는 리빌딩과 함께 성적도 잡아내고 있다.
▲'웃긴 일이지'의 의미
유 감독의 "웃긴 일이지"는 모비스의 단독선두 등극을 이해할 수 없고, 상대 팀들의 악재에 따른 운이 섞였다는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긴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모비스는 분명 지난 시즌보다 객관적 전력이 떨어졌다.
그리고 강력한 경쟁자들은 더 많아졌다. 실제 몇몇 팀들은 악재를 겪으며 승수쌓기에 약간의 손해를 본 것도 사실이다. 2위 오리온은 애런 헤인즈가 복귀만 하면 언제든 선두를 공략할 수 있는 전력이다. 2라운드까지의 질주로 입증이 끝났다. 하지만, 헤인즈가 없는 동안 2승6패로 추락하며 2위로 내려앉았다. 유 감독은 "헤인즈가 다칠지 누가 알았겠나"라며 오리온의 불운을 짚었다.
3위 KGC인삼공사는 객관적 전력만 놓고 보면 흠 잡을 구석이 없다. 개막 4연패로 뒤늦게 시동이 걸린데다, 갑작스럽게 오세근이 불법도박으로 이탈했다. 하위권으로 추락했으나 오세근의 복귀, 마리오 리틀의 KBL 적응, 대표팀을 경험한 이정현의 성장, 부상자들의 컨디션 회복 등 호재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며 선두권을 위협하고 있다. 유 감독은 KGC가 결국 선두로 도약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유 감독의 논리에 따르면 KGC는 시즌 초반 덜 챙긴 승수로 모비스에 '잠시' 뒤졌을 뿐이다.
유 감독은 동부가 단신 빅맨 웬델 맥키네스를 영입하자 "잘 뽑았다"라며 치고 올라올 것을 예감했다. 결국 동부는 맥키네스 합류 후 치고 올라왔다. 김주성과 윤호영마저 제 컨디션을 찾으면서 골밑이 리그 최상위급으로 격상했다. 실제 동부는 모비스도 힘으로 눌렀다. 그 경기서 윤호영이 허리에 부상하며 쉬고 있지만, 윤호영만 회복되면 다시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꾸준히 성장하는 모비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리온, 동부 등은 팀의 객관적인 호재와 악재에 따라 페이스 등락 폭이 심하다. 반면 모비스는 시즌 초반부터 꾸준한 페이스다. 시즌 초반 7경기서 승패를 반복하며 3승4패로 주춤했지만, 이후 8연승-2연패-4연승-1패-3연승을 기록 중이다. 2연패가 고작 한 차례였다.
이 부분은 의미가 있다. 모비스의 객관적인 전력이 지난 시즌보다 떨어졌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고, 결국 실전을 거듭하면서 전력을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 감독이 올 시즌 중점을 둔 부분은 국내선수들의 성장. 모비스는 2~3번 포지션이 취약하다. 대표적인 선수가 전준범. 모비스 이도현 사무국장은 "예전에 준범이가 2경기 연속 잘했던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올 시즌은 확실히 다르다"라고 했다. 실제 전준범은 올 시즌 성장했다. 유재학 감독은 "출전시간이 늘어나면서(송창용의 부상으로 주전으로 출전)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를 알고 움직인다"라고 했다. 공격에선 슈팅 기복을 줄였고, 수비력도 많이 향상됐다. 2일 동부전서 패배했지만, 유 감독은 "그날 준범이가 윤호영의 골밑 공격을 거의 완벽하게 막아냈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수비력이 좋지 않았던 전준범 성장의 증거.
속공가담이 좋은 김수찬은 슛, 패스, 드리블 등 기본적인 기량이 올라오면서 출전시간이 조금 늘었다. 김영현은 공격력은 눈에 띄지 않지만, 수비력은 좋아서 기회를 얻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개개인의 테크닉이 조금씩 좋아졌다. 유 감독이 개개인에게 세밀한 상황에 따른 움직임, 대처법 등을 반복훈련 시킨 결과다. 이렇게 경기력을 끌어올린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 경기상황에 따른 역할 부여를 확실하게 한다. 결국 개개인의 성장을 통해 팀 경기력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물론, 유 감독은 "리오 라이온스가 부상으로 시즌아웃되고 아이라 클라크를 데려온 건 행운이었다"라고 했다. 외곽 성향의 라이온스 대신 빅맨 클라크의 가세로 모비스 전력은 더욱 탄탄해졌다. 클라크는 골밑에서 버텨내는 수비력이 좋고 내, 외곽에서 한 방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행운도 철저한 준비와 절묘하게 결합되면서 더욱 빛난다.
반면 다른 팀들은 크고 작은 악재가 있을 때마다 팀 자체가 휘청거린다. 물론 모비스 역시 양동근이나 함지훈이 부상으로 빠지면 흔들리게 돼 있다. 그러나 유 감독 중심으로 항상 플랜B, C를 준비하고 실전서 부작용을 거쳐 끊임 없이 업그레이드를 노리는 게 고무적이다. 그 결과 돌발악재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 예를 들어 유 감독이 미리 전준범의 기량을 끌어올리지 못했다면 송창용의 어깨 부상 이후 모비스는 크게 흔들렸을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모비스는 상대 팀들의 악재를 딛고 단독 1위에 올랐다. 유 감독 말대로 운도 섞여있지만, 모비스의 철저한 준비 결과라고 봐야 한다.
유 감독은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함지훈, 클라크, 빅터가 함께 골밑에 있을 때 공간활용이 원활하지 않아 공격이 뻑뻑해지는 부분, 시즌 초반부터 재미를 봤던 2-3 변형 드롭존에 대한 상대 팀들의 적응 등 고민이 많다. 이런 요소들이 다른 팀의 상승세와 맞물려 모비스의 순위하락을 진행시킬 수 있다는 게 유 감독 생각.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났던 유 감독의 준비성과 수년간 걸쳐 정립된 모비스 특유의 위기관리능력을 감안하면 모비스가 선두싸움서 쉽게 밀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웃긴 일이지"라는 유 감독의 말은 결국 모비스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모비스 선수들. 사진 = 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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