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디테일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최근 시간을 쪼개 친분이 있는 몇몇 지도자(현직을 맡고 있지 않은 야인)를 만났다. 그동안 KBL, WKBL을 취재해오면서 궁금했지만, 질문하지 못했던 것을 시원스럽게 해결하고 싶었다. 특정 팀과 선수의 영역을 벗어난 범위를 주제로 많은 얘기를 들었다.
4월 중순. KBL과 WKBL은 오프시즌이다. 한국농구의 발전을 위해 프로 16개 구단의 비 시즌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수 없이 들었다. 지금은 현장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비 시즌이 왜 중요한지 풀어냈다. 놀랍게도 그들의 결론은 마치 짠 듯이 동일했다. 키워드는 디테일이다.
▲기본기의 디테일
한국은 농구변방국가다. 대중으로부터 인기가 떨어진 지는 오래다. 하지만, 여전히 잠재력을 갖고 있다. 오리온이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서 보여줬던 한국형 스몰볼의 가능성, 척박한 토양에서 추일승 감독, 유재학 감독 등 국제적으로도 인정 받는 유능한 지도자들이 있다는 점, 여전히 최소한의 관심을 아끼지 않는 농구 팬들이 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그 반전포인트를 어떻게 끄집어내느냐가 관건하다.
출발점은 기본기다. 근본적으로 한국농구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선 개개인의 기술 향상 외에는 답이 없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지도자들은 기본기의 디테일을 얘기했다. A지도자는 "감독들이 디테일에 더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라고 했다. B지도자는 구체적으로 "수비 스텝, 드리블과 슈팅 자세부터 세심하게 다듬어야 한다"라고 했다.
왜 이 부분이 중요한지는 오리온과 KCC의 챔피언결정전이 좋은 예시를 제공한다. 당시 오리온 추일승 감독은 KCC 에이스 안드레 에밋을 막기 위해 페인트존에서 2~3중으로 서서히 압박하는 팀 디펜스를 준비했다. 일종의 새깅 디펜스와 더블 팀, 트리플 팀이 혼합된 개념이었다.
이 수비는 약점을 안고 있다. 적어도 외곽에 위치한 공격수 1~2명의 수비는 사실상 포기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추일승 감독은 수비로테이션의 세밀한 차이라고 설명했다) 오리온은 에밋이 공을 끄는 시간이 길어 외곽으로 빼주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실, KCC의 몇몇 국내선수들의 기본적인 외곽슈팅 테크닉이 떨어지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공을 잡았을 때 다음 플레이를 위한 스텝이 정확하지 않고, 공을 잡은 뒤 호흡을 가다듬고 던지는 슛에만 특화된 선수들이 있다는 점을 파고 든 것이다. KCC는 에밋의 동선 조정 및 멤버 교체로 대응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B지도자는 "추일승 감독님이 정말 준비를 잘 한 것이다. 하지만, 국제대회서 수준 높은 팀을 상대할 때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했다. 일리가 있다. 코트에 있는 5명 모두 개개인의 테크닉이 평균 이상(한국농구의 최상 수준 이상을 의미)이라면, 에이스 1명을 집중적으로 막는 전술은 한계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팀 전술은 한계가 있다. 결국 개개인의 테크닉을 끌어올려야 득점력도 올라간다"는 삼성생명 임근배 감독의 말은 마침맞다. 임 감독은 시즌 직후 평균적으로 남자선수들보다 테크닉이 더 떨어지는 여자선수들에게 슛과 드리블 기본 기술, 2대2 공격과 수비의 기초적인 움직임부터 다시 가르칠 뜻을 드러냈다. 그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KBL, WKBL 모든 팀이 집중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포털사이트에 스테판 커리(골든스테이트)를 치면 그가 경기 전 기본적인 드리블부터 착실히 연습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한국농구가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틀의 다양성, 디테일
최근 만난 지도자들은 단순히 선수들 기량 향상의 디테일만 얘기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 오리온의 프로농구 우승의 의미, NBA 골든스테이트의 질주 의미에 대해 깊숙히 생각하고 있었다. 오리온과 골든스테이트가 추구하는 농구는 전통적인 의미의 빅맨 농구 혹은 정통 농구와는 거리가 있다. 빠른 공수전환에 따른 1,2차 속공과 미스매치를 극대화, 내, 외곽을 다양하게 두드리는 공격 시스템이 돋보인다. 물론 기본적으로 이승현과 드레이먼드 그린이라는 훌륭한 골밑 수비수가 존재한다. 때문에 평균 이상의 골밑 경쟁력을 갖고 있다. 오리온의 경우 골밑 더블팀과 로테이션 시스템, 올 스위치 디펜스가 아주 정교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공격농구를 구현했다. 한국형 스몰볼이라고 말하는 관계자도 많았다. 정통 빅맨 없이 크면서도 빠른 선수들이 다양한 스타일로 득점에 가세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C지도자는 "빅맨의 골밑 포스트업과 페이스업을 막는 전술은 많다. 현대농구 트렌드는 2대2 공격과 수비"라고 했다. 최연길 칼럼니스트도 시즌 중 "올 시즌 NBA에서 센터 농구를 앞세운 몇몇 팀들이 부진했다. 우연이 아니다"라고 뒷받침했다.
여전히 대부분 KBL, WKBL 감독은 정통농구 혹은 빅맨 농구를 선호한다. 외국선수도 일단 큰 선수부터 살펴보는 게 일반적이다. 틀린 건 아니다. NBA 및 유럽에도 빅맨 농구로 좋은 성과를 거두는 팀이 있다. KBL과 WKBL도 마찬가지다. 선수구성상 빅맨을 위주로 농구를 펼쳐야 하는 팀이 있다. C지도자조차 "어디까지나 팀 사정과 선수구성에 맞춰서 결정할 일이다. 2대2와 스몰볼이 현대농구 트렌드지만, 그게 맹목적인 정답은 아니다"라고 했다.
중요한 건 다양성이다. D지도자는 "국내 지도자들이 세계적으로 트렌드가 되는 전술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해보는 건 중요한 것 같다. 지도자들도 틀을 깰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추일승 감독이 처음부터 지금의 오리온 농구로 승승장구했던 건 아니다. 그 역시 수 차례 시행착오를 경험하다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C지도자는 "일단 안 되더라도 시도해보고 안 되는 걸 깨닫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는 감독 시절 2대2 수비도 변화를 많이 줬다. 똑같이 헷지를 해도 상황에 따라 강력하게 하거나 덜 강하게 하는 디테일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과거 나이가 많은 몇몇 지도자들이 세계농구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연구하려는 치열함이 부족했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듣는다. 심지어 일부 전, 현직 감독들도 변화와 연구가 소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점에서 선수 뿐 아니라 지도자도 디테일이 필요하다. 무조건 오리온과 골든스테이트의 스몰볼을 모방하라는 게 아니다. 사고의 틀을 넓히고, 그 속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건 한국농구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비 시즌이야 말로 이런 디테일을 살 찌울 기회다.
17일부터 고양체육관에서 FIBA 심판캠프가 진행 중이다. KBL, WKBL, 대한민국농구협회 소속 심판들이 참가했다. 한국도 몇 년 전부터 이런 식의 심판 교육이 심도 있게 진행되고 있다. B지도자는 "선수, 감독뿐 아니라 심판도 디테일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FIBA 규정에 반하는 부정확한 파울 콜이 한국농구를 망가뜨린다는 말을 수 없이 듣는다. 오프시즌 심판들의 교육과 노력이 궁극적으로는 한국농구의 혁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남녀프로농구 챔프전 장면.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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