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스페인은 강했다. 그 동안 세계와의 격차를 좁혔다고 믿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한 두 가지로 1-6 대패를 설명하기 어렵다. #개인기량 #전술부재 등 모든 면에서 스페인에 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 교체로 투입된 이재성, 주세종 등 K리그 출신들이 보여준 가능성은 희망으로 남았다. 슈틸리케 감독도 “만약 결과만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선수들에게 자신있게 라인을 높이라고 강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뒤로 물러서야 했다. 하지만 그건 내 철학이 아니다. 평가전은 많은 것을 실험하고 다른 경기 때보다 과감하게 가져갈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결과만 생각하면 미래를 놓친다. 그리고 내 철학과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때로는 승리보다 패배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슈틸리케 접근법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세운 4-2-3-1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주장 기성용의 파트너로 한국영이 나섰다. 슈틸리케는 부임 후 상대에 따라 4-2-3-1과 4-1-4-1를 번갈아 사용했다. 전자는 수비에 무게를 둔 선택이고, 후자는 공격 강화를 위한 변화였다. 그리고 객관적인 전력서 앞선 스페인을 상대로 더블 볼란치를 배치했다.
경기 전 기자회견서 슈틸리케 감독은 “스페인을 상대로 전방 압박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뒤로 물러서 거친 파울로 끊고 역습하는 대신 기존에 강조했던 ‘압박’과 ‘소유’를 스페인전에서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자연스레 전체적인 압박의 라인이 높았다. 특히 원톱과 2선뿐만 아니라 기성용, 한국영까지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태희의 움직임도 흥미로웠다. 아시아 무대에서 남태희의 수비적인 역할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남태희는 스페인의 홀딩 미드필더인 브루노 소리아노를 자주 압박했다. 이것이 슈틸리케 감독의 지시였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의도된 행동으로 보였다.
문제는 압박이 하나의 팀으로 일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반 15분까지는 효과가 있었다. 전반 8분 남태희가 끊어낸 공은 손흥민의 슈팅으로 이어졌다. 기회를 잘 살렸다면 선제골을 넣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자주 상대를 놓치거나 패스를 쉽게 허용했다. 슈틸리케의 생각도 같았다. 그는 “전반 15분까지는 우리의 플레이를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스페인의 기술이 우위에 있는 걸 확인했다. 그 시간 이후 실수가 나오면서 결국 실점까지 했다. 첫 실점 이후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많이 흔들린 것 같다”고 인정했다.
#왜 4-0-5-1이 됐나
실제로 전방에 원톱 황의조를 포함한 공격수 4명과 기성용, 한국영까지 전진하면서 미드필더와 포백 수비 사이에 드넓은 공간이 발생했다. 스페인은 이곳을 매우 잘 이용했다. 특히 다비드 실바는 한국의 압박에서 자유로웠다. 우측에 있던 실바는 수시로 중앙으로 들어와 공을 소유했다.
원톱 알바로 모라타도 마찬가지였다. 모라타는 전방에 머물지 않고 순간적으로 내려와 한국 센터백 홍정호와 김기희를 유인했다. 그리고 그곳을 마누엘 놀리토 혹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실바가 파고들었다. 모라타는 측면에서도 뛸 수 있을 정도로 침투가 빠르다. 기성용, 한국영이 압박을 위해 전진할 때 홍정호, 김기희가 마음껏 올라가지 못한 이유다. 그로인해 한국의 4-2-3-1은 마치 4-0-5-1처럼 보였다.
실점 장면을 복기해보자. 실바의 프리킥은 모라타가 한국의 벌어진 공간에서 공을 잡은 과정에서 발생했다. 브루노는 편안한 상태에서 모라타에게 패스를 전달했다. 이전까지 브루노를 압박했던 남태희는 순간적으로 손흥민과 위치가 바꾼 상태였다. 하지만 손흥민은 브루노를 압박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성용, 한국영은 이니에스타. 세스크 파브레가스에 시선을 빼앗겼다. 한국은 이처럼 미드필더와 포백 사이의 간격이 너무 쉽게 벌어졌다.
#김진현의 악몽
실바의 프리킥 실점 후 김진현 골키퍼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이전까지 스페인의 슈팅을 잘 막아냈던 그는 공을 잡은 과정에서 실수를 연발했다. 스페인전 대패가 김진현 혼자의 잘못으로 볼 수는 없지만 6실점의 절반 이상이 그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 또한 사실이다. 세계적인 명문 구단들이 골키퍼 영입에 수백억을 투자하는 건 어느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골키퍼 포지션이 갖는 중요성이 크다는 얘기다.
전반 32분 김진현은 장현수의 헤딩 백패스를 잡다 놓쳐 두 번째 골을 허용했다. 공을 잡으려는 시도가 나쁘진 않았지만 터치라인 밖으로 걷어내는 게 더 안전한 선택처럼 보였다. 후반 5분에도 김진현의 판단 미스다. 기본적인 위치 선정에서 실패하며 모라타에게 헤딩골을 내줬다. 그밖에도 김진현은 몇 차례 공을 놓치며 추가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스페인은 강했다
기량 차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상대는 근 10년간 가장 많은 메이저대회를 제패한 축구 강국이다. 올 시즌 유럽축구대항전에서도 스페인 클럽이 강세가 두드러졌다. 레알 마드리드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했고 세비야는 유로파리그를 가져갔다. 한 마디로 대세다. 슈틸리케는 “스페인 대표팀을 TV를 통해 꾸준히 지켜봤다. 그래서 그들의 강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본 스페인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강팀이었다. 당연히 한국보다 우위에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차이가 클 줄은 몰랐다”고 했다.
물론 환경적인 부분도 감안해야 한다. 상대는 유로2016을 앞두고 한창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반면 한국은 최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신문선 명지대학교 교수는 “유럽에서 뛰는 해외파 선수들이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컨디션이 극도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것이 핑계가 될 순 없다. 애초 유럽 원정이 그러한 피로를 감안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사진 = 대한축구협회]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