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일명 '공손한 손바닥'이다.
포수가 경기도중 1루심과 3루심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타자의 체크스윙 여부를 확인하려는 목적이다. 왼손타자가 타석에 있을 경우 3루심에게, 오른손타자가 타석에 있을 경우 1루심에게 손가락을 가리켜 체크스윙을 확인한다.
포수는 타자의 체크스윙 여부를 빨리 파악해야 다음 볼배합 사인을 투수와 원활하게 주고 받을 수 있다. 혹시 2S 이후 체크스윙으로 인정된 순간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이 적용될 경우 재빨리 후속동작(공을 쥐고 타자에게 태그 혹은 1루수에게 송구)을 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일부 포수는 체크스윙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루심 혹은 3루심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을 펼치지 않고 손을 위로 들어 돌리는 시늉을 한다. 물론 대부분 포수는 팔을 쭉 뻗고 심판에게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체크스윙 여부를 확인한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렇게 야구를 배웠다.
▲공손한 손바닥
그러나 두산 양의지의 체크스윙 확인 동작은 조금 다르다.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심판에게 손가락을 겨누지 않고 손바닥을 내밀어 확인한다. 이른바 '공손한 손바닥'이다. 양의지는 "올 시즌 초반부터 그렇게 한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간판포수가 그렇게 하니 박세혁 등 백업포수들도 체크스윙을 확인할 때 심판에게 손가락을 겨누지 않고 손바닥을 내민다.
물론, 양의지를 비롯한 두산 포수들도 작년까지는 심판에게 손가락을 가리켜서 체크스윙 여부를 확인해왔다. 그러나 올 시즌부터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포수출신 김태형 감독도 "그게 훨씬 더 보기 좋다. 요즘에는 다른 팀 포수들도 그렇게 하더라"라고 했다. 심지어 "의지는 글러브로 팔을 받쳐서 손바닥을 내밀기도 한다"라고 웃었다.
▲심판들은 야구선배다
지난 2월 두산의 일본 미야자키 스프링캠프.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해 방문한 박정원 구단주가 김승영 사장, 김태형 감독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이런저런 얘기 도중 포수들의 체크스윙 확인 제스처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당시 박 구단주는 포수들이 1루심 혹은 3루심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슬쩍 언급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 프로야구 심판은 선수들의 야구 선배다. 박 구단주는 야구 후배가 경기도중 선배에게 손가락을 가리키는 게 예의범절에 썩 마침맞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후 선수단에 자연스럽게 구단주의 생각이 전해졌고, 양의지를 비롯한 포수들도 손가락을 겨누는 대신 손바닥을 정중히 내밀면서 체크스윙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내미는 동작은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다. 선수들이 야구선배인 심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자는 차원이다.
프로스포츠는 선, 후배 계급을 떼고 치르는 전쟁이다. 때문에 경기도중 지나치게 선, 후배 관계에 몰입, 기세 싸움에서 밀릴 이유는 없다. 신경전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다만, 지켜야 할 선은 지키는 게 옳다. 몸에 맞는 볼 이후 투수가 타자에게 손을 들거나 고개를 살짝 숙여 미안함을 표시하는 것 정도는 신경전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예의를 갖추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포수의 체크스윙 확인도 비슷한 논리로 해석하면 된다.
▲심판 "그렇게 배려해주니 고맙다"
지난달 28~30일 두산-NC 3연전에 투입된 한 심판에게 양의지를 비롯한 두산 포수들의 체크스윙 확인동작 변화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 심판은 "글쎄, 경기 도중이라 자세하게 보지는 못했다"라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야구선배인 심판에 대한 존중과 예의 차원에서 손바닥을 내미는 동작으로 바꿨다고 하자 "그렇게 배려해주니 야구선배로서 고맙다"라고 했다.
사실 심판들은 포수들의 손가락 제스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 심판 역시 "원래 포수들은 그렇게 해왔다. 체크스윙을 확인할 때 나에게 손가락을 겨누는 걸 기분 나쁘게 생각한 적은 없다. 신경을 쓰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래도 그는 취지를 듣더니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한편, 양의지를 비롯한 두산 포수들이 1루심과 3루심에게 예의를 갖추고 배려한다고 해서 판정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다. 심판은 "그런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면서 "야구 후배의 배려를 선배로서 고맙게 생각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어쨌든 양의지의 조그마한 변화와 매너 있는 행동이 보기 좋은 건 분명하다.
[양의지. 사진 = 두산 베어스 제공,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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