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기모노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공중전화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아무도 없는 현관문에서 켜지는 센서등…. ‘잔예’를 보고나면 어디선가 들리는 미세한 소리와 깜빡이는 불빛에도 소름이 돋을지 모른다.
독자에게 받은 사연으로 괴담 잡지에 단편 소설을 쓰는 소설가 ‘나’(다케우치 유코)는 어느날 건축을 전공하는 여대생 쿠보(하시모토 아이)에게 새로 이사간 아파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는다. ‘나’는 쿠보와 같이 아파트를 둘러싼 괴담을 하나씩 추적해가는데, 파고들어갈수록 더 깊은 공포의 세계와 맞닥뜨린다.
‘잔예’는 부정(不淨)을 탄 터에 재앙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일본 공포 소설의 대가로 불리는 오노 후유미의 원작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는 탐문과 취재라는 형식으로 원한에 사무친 공포의 뿌리를 찾아가는 호러 미스터리물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과거 때문이듯, 공포 역시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서 발생한 비극으로 퍼져 나간다. 이 영화는 소설가와 쿠보가 괴담 전문가들과 힘을 모아 사건을 재구성하는 플롯으로 미스터리의 흥미를 유발한다.
‘과거’를 불러내 ‘현재’의 공포를 오싹하게 전달하는 과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펼쳐지는데, 목덜미를 잡힌 채 서서히 끌려가는 기분이다. 차분한 내레이션으로 일련의 살인사건과 거리감을 두고 있던 소설가는 공포의 뿌리를 역추적할수록 스멀스멀 몸을 감싸는 불길한 기운에 사로 잡힌다.
‘골든 슬럼버’ ‘백설공주 살인사건’의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은 궁금증을 호러와 연결시키는 노련한 솜씨를 발휘한다. 잔혹한 장면 없이도 소름돋는 영화를 만들었다.
‘잔예’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홀로 있는 방에서 당했다. 방에 혼자 있을 때 ‘잔예’가 생각날까 두렵다.
[사진 제공 = 퍼스트런]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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