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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조정래 감독은 자신을 감독이 아닌 나눔의 집 봉사자 중에 한 명이라고 소개한다. 지난 2002년 우연한 계기로 나눔의 집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인생이 달라졌다는 조정래 감독.
"제가 예전부터 국악을 취미로 했고 지금도 고수를 하고 있어요. 과거 국악인 박애리 씨와 함께 바닥소리 단체의 멤버였죠. 2002년 봄, 이 단체에서 함께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해서 나눔의 집에 처음 방문하게 됐어요. 음악으로 할머니들께 위로를 드리려고 간 것이었는데 되려 위로를 받고 왔어요. 정말 펑펑 울고 응석을 부렸죠."
이때 조정래 감독은 관객들이 '귀향'으로 접하게 된 아픈 역사의 충격을 느꼈다.
"저도 불편해하고 알려고조차 안 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을 만나 직접 듣고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죠. 그래서 그 뒤로도 꾸준히 나눔의 집을 찾게 됐고 14년을 준비한 끝에 '귀향'을 만들게 됐어요. 나눔의 집에 방문해 할머니를 단 한 번이라도 만나 뵌 사람이라면 다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별생각 없이 왔다가 저처럼 달라져서 역사를 바로잡는데 힘쓰는 일본인도 있어요."
조정래 감독은 "어떤 대단한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저는 나눔의 집 소장님, 사무국장님 등의 발끝도 못 따라간다. 감히 제가 이렇게 주목받는 게 죄송스럽다"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조정래 감독이 그간 걸어온 길은 감히 쉽게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생계를 위협받으면서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다룬 '귀향' 제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진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닥치는 대로 일해서 먹고 살았어요. 안 해본 게 없어요. 북도 치고 돌잔치·결혼식 비디오 제작으로 생계를 유지했죠. 500편이 넘는 영상을 만들었어요. 돈이 좀 모이면 제작비로 쓰고요."
그렇게 어렵게 완성된 '귀향',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대히트를 쳤지만 조정래 감독은 웃을 수 없었다.
"기쁜 적이 없어요. 한 번도 웃지 못했죠. 이제 우리 곁에는 할머니 서른 다섯분만이 살아계세요. 할머니들은 돌아가시고 있는데 그분들이 느끼는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았죠. 정말로 시간이 없어요.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계속 싸워나갈 거예요."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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