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이후광 기자] “제 응원가가 프로야구 톱3에 들지 않았나요?”
(창간인터뷰①에 이어) 아기곰이란 별명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정수빈이 어느덧 20대 끝자락에 섰다. 참으로 바쁘게 달려온 20대다. 데뷔 첫해부터 1군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10시즌을 쉬지 않고 달렸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남들에게 뒤처지지도 않았다. 꾸준함으로 버텨온 20대 청춘이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는 정수빈에게 20대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정수빈은 망설임 없이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의 추억을 회상했다.
▲2009년 SK와의 플레이오프, 조명탑이 야속해
조명탑은 정수빈의 야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설물이다. 외야수에게 조명탑은 종종 포구의 방해물로 작용하나 정수빈은 유독 그 기억이 강렬하다.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고졸 신인이었던 정수빈은 85경기 타율 .264 3홈런 활약에 힘입어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승선했다.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서 롯데를 꺾고 2위 SK와 플레이오프서 맞붙었다. 두산은 1, 2차전을 모두 승리로 장식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눈앞에 뒀다.
3차전은 팽팽했다. 경기는 1-1 연장 승부에 돌입했다. 10회초 1사 2루서 SK 박재상이 우측 외야로 공을 띄웠다. 당시 우익수로 나섰던 정수빈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지만 조명탑이 시야를 가리며 공이 글러브를 벗어났다. 2루 주자 박정환이 여유 있게 홈을 밟았고, 박재상은 3루까지 도달했다. 통한의 조명탑이었다. 2승으로 앞서고 있던 두산은 3차전을 허망하게 내주며 3연패로 가을을 마감했다. 정수빈에게 뼈아픈 기억이었다.
정수빈은 “그걸로 지금까지도 욕을 듣고 있다”라고 웃으며 “그때는 조명에 들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 해도 잡을 수 없다. 조명에 들어가는 각도나 타이밍이 너무 잘 맞아 누가 와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정수빈은 “장점일 수도 있는데 난 뭘 해도 크게 주목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기억을 잘 해주신다. 실수든, 잘했던 것이든 모두 크게 주목을 받는다”라며 “프로는 잘하면 칭찬을 받고 못 하면 욕을 듣는 게 당연하다”라고 했다. 정수빈은 6년 뒤 손가락 부상에도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며 신인 때의 아쉬움을 한 번에 털어냈다.
▲2018년 다시 만난 SK
정수빈이 9년 만에 가을 무대서 다시 SK를 만났다. 이번엔 플레이오프가 아닌 한국시리즈 맞대결이 성사됐다. 두산은 더 이상 도전자가 아니었다. 2위 SK에 14.5경기 차 앞선 압도적 정규시즌 챔피언이었다. 제대 후 ‘경찰청에서 온 용병’이란 별명을 얻은 정수빈의 각오는 남달랐다. 신인 때의 아픔과 3년 전 MVP의 영광을 모두 떠올렸다. 그리고 앙헬 산체스를 상대로 8회 극적인 결승 투런포를 쏘아 올리며 4차전의 영웅이 됐다.
정수빈은 “2015년 기억을 살렸다. 오히려 큰 경기는 덜 긴장하고 긴장을 해도 그게 재미로 다가온다. 사실 가을야구는 보너스 경기라 생각한다. 못 하는 게 당연하다. 잘하면 좋은 것이라는 마인드로 임한다”라며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플레이가 나온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세계청소년대회 때도 잘했던 기억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산체스에게 홈런을 친 순간도 다시 세세하게 들어볼 수 있었다. 정수빈은 “홈런을 노리고 들어갔다. 그래야 방망이도 잘 나오고 주눅 들지 않는다. 안타가 나올 확률도 높아진다”라며 “마침 정확한 타이밍에 방망이가 나와 홈런이 됐다. 산체스가 강속구 투수라 반발력도 이용했다”라고 했다. 홈런 후 평소보다 과했던 세리머니에 대해선 “원래 표현을 안 하는데 그때는 너무 좋았다. 나도 모르게 그런 세리머니가 나왔다”라고 웃었다.
특히 이 홈런은 짧게 쥔 배트로 담장을 넘겼기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정수빈은 “제대하고 바로 방망이를 짧게 잡았는데 크게 화제가 안 됐다”라고 웃으며 “경찰청에서는 이렇게 짧게 잡지 않았다. 많은 시도를 해봤는데 결국 나는 길게 잡으면 안 되는 사람이란 걸 느꼈다. 길게 잡으면 공은 물론 멀리 나가겠지만 난 멀리 친다고 메리트가 있는 선수가 아니다. 컨택과 출루에 특화된 선수라 장타에 대한 욕심은 버렸다”라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추억 속으로 사라진 ‘날려라 날려 안타~’
정수빈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키워드는 응원가다. 응원가에 관한 저작권 문제가 불거지기 전 정수빈의 응원가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응원가였다. 미국 록 그룹 비치보이스의 서핑USA를 ‘날려라 날려 안타, 두산의 정수빈’으로 개사해 많은 호응을 얻었다. 여성 팬들이 선창하면 남성 팬들이 뒤를 이어 ‘안타 정수빈’을 크게 외쳤다. 기자는 정수빈의 응원가가 잠실구장 인근 삼성역까지 울려 퍼지는 걸 직접 경험한 바 있다.
정수빈도 응원가에 대한 기억이 강렬했다. 그는 “프로야구 거의 톱3 안에 드는 응원가가 아니었나요?”라고 과거를 회상하며 “사실 저작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어쨌든 타석에서 응원가가 상당히 크게 들렸던 기억이 난다”라고 했다. 정수빈은 올해 새로 만들어진 응원가도 나쁘지 않다. 그는 “새 응원가도 괜찮은 것 같다. 사실 응원가를 열심히 불러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확실히 큰 힘이 된다”라고 팬들을 향해 감사함을 표현했다.
정수빈은 20대를 “행복한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5라운드로 프로에 입단해 첫해부터 1군 엔트리에 들며 결국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됐다. 화려하진 않지만 수비상, 한국시리즈 MVP 등 트로피도 제법 모았다. 정수빈은 “많은 일이 있었다. 데뷔 첫 경기도 기억에 남고,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 잘했던 기억도 난다. 당연히 한국시리즈 MVP 때도 기뻤다”라며 “이제는 성적으로 보여드리고 싶다. 팬들에게 신뢰를 주는 선수가 되고 싶다”라고 희망찬 30대를 기원했다.
[정수빈. 사진 = 잠실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마이데일리 DB]
이후광 기자 backligh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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