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선수들은 리그(WKBL)에서도 40분씩 뛴다."
한국 여자농구대표팀 이문규 감독에 대한 농구계의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대다수 농구관계자의 시선이 그렇다. 이 감독은 한국농구의 어른이다. 그러나 그를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진심으로 존경하는 시선을 찾아볼 수 없다.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준비과정부터 논란이 일었다. WNBA 시즌 막바지 일정과 겹치는 박지수에게 "국가에서 부르면 자기 의지로 올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아시안게임은 FIBA 대회가 아니다. 라스베가스가 차출에 응할 의무가 없었다. 라스베가스 구단에 대한 존중, 난감한 상황에 놓일 선수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었다.
작년 9월 아시아컵, 11월 프레 퀄러파잉토너먼트, 이번 퀄러파잉토너먼트를 거치면서 선수선발 및 기용, 전략 및 전술 운용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일단 선수선발 과정에서 경기력향상위원회의 의견을 거의 수용하지 않았다. 사실상 자신의 의지대로 선수들을 뽑았다. 11월 대회 이후 기량이 부쩍 성장한 박지현(우리은행)을 외면한 게 대표적이다. 김연희(신한은행), 안혜지(BNK) 역시 마찬가지.
WKBL이 퀄러파잉토너먼트를 위해 1월25일부터 정규경기 일정을 약 3주간 중단했다. 그것도 모자라 리그 중단 나흘 전(1월21일)부터 선수들을 소집했다. 이 감독이 일일이 6개 구단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리그 일정을 소화하는 동시에 진천선수촌까지 오가며 체력적으로 큰 부담을 안았다.
여기까진 감독의 주관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신 11일 인천국제공항 귀국장에서 "첫 날 3명으로 운동했다", "그 다음 날은 4명으로 운동했다"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뽑은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감독은 "선수들이 리그를 치르면서 부상을 많이 당했다"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선수층이 얇은 특성상 어느 팀이든 주축들의 부상이 골치 아프다. 다만, 구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몇몇 선수는 소속팀에서 몸 상태가 괜찮았는데 대표팀에만 다녀오면 부상이 있었다.
영국전서 박혜진(우리은행), 김단비(신한은행), 강이슬(하나은행)에게 풀타임을 맡긴 것도 벤치 멤버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물론 이 감독은 선수교체를 고민했다. 그러나 막판 체력이 떨어진 주축들을 그대로 기용했다. 플랜B에 대한 확신이 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경기흐름상 2~3쿼터에 체력 비축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부작용을 자초했다. 결국 경기막판 1점 차까지 추격 당하자 경기 후 선수들에게 "나태한 측면도 있었다"라고 했다.
"선수들은 리그에서도 40분씩 뛴다"라고 말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올 시즌 경기당 출전시간이 가장 긴 선수는 37분19초의 안혜지다. 농구에서 40분간 뛰는 선수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많지 않다. 과거와 달리 현대농구는 공수활동량이 엄청나게 많다. 로테이션이 필수다. 시즌 내내 경기당 40분씩 뛰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선수가 40분을 뛰는 건 비효율적이다.
영국전에 올인한 것도 문제가 있다. 첫날 중국이 스페인을 이겼다. 최종일에 영국이 스페인을 눌렀다면 한국, 스페인, 영국이 나란히 1승2패였다. 이럴 경우 스페인에 37점차로 진 한국이 4위로 밀려났다.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는 뜻이다. 한국은 영국을 눌렀지만, 결국 스페인이 영국을 잡아줘서 올림픽 티켓을 땄다. 영국전 승리와 별개로 올림픽 티켓 획득에는 운도 따랐다.
감독이라면 당연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영국뿐 아니라 중국까지 잡을 준비를 해야 했다. 이 측면에서 접근할 때 영국전에 사실상 주전 '몰빵농구'를 한 건 넌센스였다.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중국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감독은 "스페인은 FIBA랭킹 3위고, 중국은 8위다. 그런 수준이라면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라고 했다. 중국이 한국보다 강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작년 11월 프레 퀄러파잉토너먼트서 이긴 것도 팩트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는 아니다. 감독이 어떻게 경기서 질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말을 할 수 있을까. 이기기 힘든 상대를 이길 수 있게 준비하는 게 감독의 올바른 자세다.
이 감독이 작년 아시아컵부터 프레 퀄러파잉토너먼트, 퀄러파잉토너먼트를 치르면서 주로 활용한 수비는 지역방어였다. 대형을 조금씩 바꾸거나, 드롭이나 트랩을 섞었다. 결국 지역방어에 흥하고 지역방어로 무너졌다. 아시아컵서 한국의 지역방어에 당한 뉴질랜드가 11월 프레 퀄러파잉토너먼트서 두 번 당하지 않았다. 11월 프레 퀄러파잉토너먼트서 당한 중국이 2월 퀄러파잉토너먼트서 역시 두 번 당하지 않았다. 상대의 적응에 이 감독의 날카로운 되치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3점슛을 극대화하는 전략 자체는 좋았다. 그러나 3점슛이 터지지 않을 때 플랜B는 눈에 띄지 않았다. 박지수를 활용한 2대2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 스위치가 강력할 경우 제대로 전개하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스크린이 활발하지 않았다. 코트밸런스가 무너지거나 서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 감독은 "더 움직여" 혹은 "더 뛰어"라고 선수들을 채근했다.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디테일을 더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동안 이 감독의 행보에 뒤에서 아쉬움 혹은 서운함을 토로한 관계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 농구 팬들도 바보가 아니다. 이 감독은 "12년만에 올림픽에 나가는데 왜?"라고 반문하면 안 된다. 결과 지상주의는 예전에 끝났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과정의 정당성이다.
이제 와서 이 감독에게 "주위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라"고 말하는 것도 늦었다. 지난 2년간 바뀌지 않았던 이 감독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을까. 이제 이 문제는 대한민국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와 이사회로 넘어갔다.
이 감독의 임기는 29일까지다. 그 이후에 대한 답은 나와있다. 관례를 타파하고 상식적으로 접근하면 된다. 근본적으로 경력이 능력보다 중요한 대한민국농구협회의 대표팀 감독 선임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이문규 감독(위, 가운데), 이문규 감독과 선수들(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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