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고척돔 김진성 기자] "삼성은 너무 이기려는 마음이 강했다."
정말 즐기는 자를 당해낼 수 없는 것일까. 디테일한 분석과 대응이 정면충돌하는 포스트시즌, 특히 한국시리즈는 그 수준이 최고조에 이르는 무대다. 그러나 숫자와 당일 컨디션만큼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개개인의 마인드 혹은 멘탈이다.
과하게 긴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긴장을 풀어서도 안 된다. 큰 경기일수록 더욱 냉정하게 임하되, 단순하면서도 편안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런 점에서 와일드카드결정전을 시작으로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까지 거쳐 한국시리즈에 오른 '가을야구 베테랑' 두산은 저력이 있다.
그런데 두산의 한국시리즈 경기력은 확실히 KT에 비해 한계가 보인다. 와일드카드결정전부터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투수력의 에너지 소모가 심각한 수준으로 보인다. 타자들도 그 여파로 스윙이 무디다. 결국 1~3차전을 모두 내주고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외부에서 바라보는 두산은 여전히 예사롭지 않다. '가을야구 DNA'가 뿌리 박혔다. 두산 왕조 멤버 상당수가 타 구단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뉴 페이스들은 남아있는 왕조 멤버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특유의 그 감각을 흡수한 듯하다.
이번 포스트시즌서 두산을 상대한 키움 이정후도, 삼성 강민호도 "두산은 즐기면서 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특히 강민호는 최근 KT 포수 장성우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롯데 출신으로 막역한 두 사람은 최근 전화통화를 했다.
강민호는 장성우에게 "우리 삼성은 너무 이기려는 마음이 강했고, 두산은 조금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너희도 편하게 해라"고 했다. 롯데에서 데뷔해 FA 계약을 두 차례나 했고, 올 겨울 또 한번 대박도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정작 강민호는 2004년 데뷔 후 한 번도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다. 삼성은 올해 6년만에 가을야구를 했으나 플레이오프서 두산에 힘 한번 쓰지 못하고 2패로 무너졌다.
한국시리즈가 간절한 강민호에게서도 두산 선수들보다 동료 삼성 선수들의 이기려는 마음이 앞서 경직된 모습이 보였다. 2010년대 초반 삼성 왕조 멤버들 중 현재 삼성에 있는 선수는 오승환, 구자욱, 김상수, 박해민 정도다. 그나마 김상수를 제외하면 페넌트레이스 5연패 기간 내내 있었던 선수들도 아니다. '뉴 삼성'은 왕조 DNA를 잃지 않은 두산에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두산을 3승으로 압도 중인 KT에는 어떤 일이 있어난 것일까. 장성우는 17일 한국시리즈 3차전을 앞두고 "올 시즌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정규시즌 1위를 할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있었나.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다"라고 했다.
실제 올 시즌에 들어가기 전 KT를 우승 후보로 꼽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KT는 이강철 감독 체제에서 서서히 전력을 극대화해왔다. 2020년 플레이오프를 통해 처음으로 가을야구도 했다. 두산만큼 가을야구 DNA는 없지만, 투타 짜임새에선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이런 부분이 모여 창단 첫 통합우승에 1승만 남겨뒀다. 장성우는 "우리 선수들이 SSG와 시즌 마지막 경기서 긴장을 많이 했다. 그 경기서 이기고 삼성과 타이브레이크 게임을 하는데 오히려 긴장을 안 했다. 그때의 경험이 한국시리즈까지 작용하는 것 같다. 두산과 작년에 플레이오프를 치러 보면서 조금 편한 것도 있지 않나 싶다"라고 했다. 이강철 감독 역시 삼성과의 1위 결정전 승리가 선수들 사기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결국 KT는 이번 한국시리즈서 지친 두산보다 더 편안하게 경기를 풀어간다. 물론 데이터, 시프트 조절, 투수 운용 등 여러 구성원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이 노력한 덕분이다. 하지만, 지금 KT 선수들이 정말 한국시리즈를 편안하게 치르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장성우는 "번트 사인이 났는데 안타가 되는 등 경기가 잘 풀리는 듯한 느낌이다. 분위기도 살고 즐겁게 느껴진다. 야구가 잘 풀리면 재미도 있다"라고 했다. 한국시리즈를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베테랑 포수 강민호의 고백과 덕담대로, 지금 KT는 한국시리즈를 즐기고 있다. 지친 두산보다 더. 그래서 무섭다.
[강민호(위, 가운데), 장성우(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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